“애 낳고 사는 모습을 보니 기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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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낳고 사는 모습을 보니 기뻐요”
  • 박상범 기자
  • 승인 2008.10.03 14: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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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서 딸 만나러 온 팜익나옥·무엔티화 부부
▲ 내북면 대안리로 시집온 팜티리우를 만나기 위해 지난 9월 26일 베트남에서 친정부모님이 오셨다. 저녁 7시경 남편이 퇴근해 돌아오자 저녁도 잊은 채 온가족이 모여 앉아 다정하게 가족사진을 찍었다. 팜티리우씨가 꼭 찍고 싶어했던 사진이었다.

만 3년, 햇수로 4년이 지났다. 갓 스무살의 어린 딸을 멀리 이국땅에 시집보내고 잘 살고 있는지, 손녀 둘을 어떻게 생겼는지, 4년의 시간을 한숨과 그리움 속에서 지났다.
오고 싶어도 쉬이 올 수 없는 길. 딸자식과 손녀들을 보고 싶은 마음에 며칠 밤잠을 설쳐가며 기다렸고, 5시간의 지루한 비행과 또 5시간의 버스를 타지만 힘든 줄 몰랐다.
지난 30일 오후 5시경 베트남에서 시집보낸 딸을 만나기 위해 보은을 방문한 팜익나옥·무엔티화 부부와 딸 팜티리우(24)씨를 만나러 내북면 대안리를 찾았다.

#친정부모의 사랑은 베트남도 마찬가지
가을은 가을인가 보다. 대안리로 가는 국도 19호선 양쪽에 하얗고 빨갛고 노랗게 핀 코스모스가 ‘가을꽃은 코스모스가 최고다!’면서 하늘하늘 거리고, 그 너머에는 누렇게 익어가는 벼들이 ‘올해는 풍작이요!’하고 말을 건넨다.

대안리에 가까워지자 산속 곳곳에 밤송이가 벌어지고, 단감들이 붉은 색을 띠어 간다.
마을입구에 들어서자 어느 집 앞에서 외국인으로 보이는 중년남자가 유모차를 이리저리 밀고 다니고 있다. 한 눈에 팜티리우 씨 친정아버지임을 짐작 할 수 있었다.

외손녀를 유모차에 태우고 밀고 다니는 모습이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인생 늘그막에 손자·손녀를 키우고 돌보는 재미로 살아가는 우리네 부모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볍게 목례를 전하고 집으로 들어서며, ‘팜티리우 씨’를 불렀다.
출발 전 전화를 한 탓인지, 팜티리우 씨가 얼른 알아보고 반갑게 맞아준다. 작은 손녀를 등에 업은 친정어머니도 뒤따라 나오시고.
결혼이민자가족지원센터에서 나온 정귀자 선생님과 상담 중이었단다. 많은 도움을 받고 있는 듯 했다.

집에 있던 가족들을 소개시켜 준다. 시어머니 김귀임(76)씨, 친정아버지 팜익나옥(53)씨, 친정어머니 무엔티화(53)씨, 큰 딸 남의정(3), 작은 딸 남유정(1) 그리고 신랑 남상호(46)씨는 아직 퇴근 전이란다.

먼저 팜티리우 씨에게 친정부모님을 만난 소감을 물었다.
“너무 좋아서 펑펑 울렀다. 아무말도 못하고 엉엉 울기만 했다” “아버지는 시집오기전보다 살이 빠지셨는데 공장일과 농사일을 같이 하시느라 빠지신 것 같고, 어머니는 매일 20명이 넘는 공장직원들 식사준비로 고생을 많이 하고 계신다”라며 며칠전 부모님을 만난 소감을 전했다.
4년만에 딸을 만난 소감을 묻자, 친정어머니가 나선다.
“만족하지는 않지만, 사는 곳이 괜찮아 보인다. 딸도 건강하게 아이 둘을 낳고 잘 살고 있는 것 같다”고 말을 했다.

진짜로 그렇게 말을 했는지, 통역을 하는 팜티리우 씨가 제대로 전달을 하지 않은 것인지, 친정어머니의 표정은 그렇게 밝아 보이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알고 보니, 친정 부모님은 베트남 하노이에서 직원 20명 정도를 두고 봉제공장을 하는 비교적 중산층 생활을 하고 있단다. 시집오기 전보다 크게 나아진 것이 없으니, 친정어머니 입장에서는 표정이 어두울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시집간 딸을 걱정하고 숟가락 하나라도 더 쥐어 보내려는 것이 친정어머니의 마음 아닌가.
한국의 친정어머니나 베트남의 친정어머니나 그 마음은 매 한 가지인가 보다.
팜티리우 씨와 친정어머니를 번갈아 쳐다보니, 두 사람 모두 눈시울이 빨게 지는 것 같다.
얼른 팜티리우가 나선다. 부모님들이 가족들을 위해 많은 선물을 가지고 오셨다고 자랑이다.
시어머니와 신랑을 위해 목걸이를 가지고 오셨고, 손녀들을 위해 목걸이, 반지, 귀걸이 그리고 봉제공장 사장님답게 손녀들의 옷을 직접 만들어 오셨단다. 직접 재단까지 해 가지고. 또한 베트남 쌀국수, 죽염 등 반찬, 그리고 팜티리우가 좋아하는 베트남 떡까지.

팜티리우 씨와 한참 대화 중인데, 슬그머니 일어난 친정아버지가 재(베트남 녹차)를 타가지고 오셨다. 향과 맛이 강한 것만 빼면 우리의 녹차와 비슷했다.
녹차 한잔을 마시고 어두워지기 전에 사진을 찍었다. 손녀들을 꼭 안고 찍는 모습에서 딸과 손녀에 대한 사랑을 엿 볼 수 있었다.

#친정부모님 한국의 관광지, 보은의 문화를 접하다
이번에 팜티리우 씨의 친정부모님의 방문은 바르게살기 충북협의회(회장 이광희)가 주최한 ‘다문화가정 친정부모 초청사업’으로 이루어졌다.

보은에 오기 전 서울과 청주 등을 다니며 한국의 관광지를 둘러보았다.
서울에서 청와대, 경복궁, 청계천, 남산 한옥마을, 동대문, 63빌딩, 국회의사당을 둘러보았으며, 한강 유람선도 타봤다.
청주에서는 충북도청 방문, 청남대, 문의문화재단지, 고인쇄박물관, 청주박물관, 청주KBS, (주)한국도자기 등을 관람했다.
친정아버지는 “한국사람들이 친절하고 너무 좋은 것 같다. 여러 곳을 다녀 보니 모두 좋았고, 특히 대통령이 살고 있는 청와대가 인상이 깊었다”면서 관광소감을 전했으며, 또한 “베트남처럼 날씨가 덥지 않아 살기가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속으로 답을 해 드렸다. “1월에 보은에 한번 와 보시지요!”라고...
보은에 여러 곳도 방문을 했다. 속리산을 물론 읍내 재래시장도 방문을 했다.
친정어머니는 시장을 본 소감으로 “베트남 시장에는 중국산 물건이 많은데, 한국에는 거의 없었다. 질 좋아 보이는 물건들이 많이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중국과 국경을 같이 하고 있어, 베트남에는 중국산 공산품들이 많이 있는 모양이다.
또한 친정어머니는 “베트남에서는 물건 흥정을 하다가 사지 않으면 상인과 손님이 종종 싸우게 되는데, 보은의 재래시장에서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없었다”며 두 나라의 차이점을 전했다.
순간 솔직해 지기로 했다. 베트남처럼 하루종일은 아니지만, 한국 재래시장에서도 첫 손님이나 오전 10시 이전에 물건을 사는 손님은 물건값 흥정을 잘 하지 않고, 적당한 값에 사주는 관습이 있다고.

시장 이야기를 하던 중 저녁 6시가 넘은 것을 알고 팜티리우 씨가 저녁을 준비한다. 남편이 들어오는 7시경 저녁식사를 하려는 가 보다.
갑자기 한국음식에 대한 친정부모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팜티리우 씨는 “친정아버지는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입맛에 맞아 잘 드신다. 그러나 친정어머니는 음식이 입맛에 잘 맞지 않아 하신다”며 “매운 음식, 특히 마늘이 들어간 음식은 전혀 못 드신다”면서 밥은 입맛에 맞는지 잘 드신단다.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나고 친정아버지를 위해 정귀자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삶아 놓은 돼지고기가 언뜻 보인다.
2일에는 정 선생님 도움을 받아 청원군 미원면에 있는 미동산수목원으로 나들이를 갈 예정이다.

#팜티리우는 현모양처, 어려운 시집살이에도 꿋꿋
저녁준비가 다 되어 갈 무렵, 남편 남상호 씨가 퇴근을 했다.
산불감시요원으로 근무하는 그는 장인장모님을 만난 소감에 “결혼 후 베트남에 가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었다. 오랜 만에 뵙게 되어 기쁘고 반가웠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팜티리우 씨가 귀뜸을 해 준다. 친정부모님이 보은에 온 지난 26일 남편과 친정아버지하고 울었다고.

남편은 미안한 마음에, 친정아버지는 안타까운 마음에 그랬을 것이라는 짐작이 든다.
팜티리우 씨는 “부모님이 걱정하실 까봐, 그동안 전화통화할 때 어렵게 사는 것에 대해 말 못했다”면서도 “처음에 시집와 애기가 없었을 때는 고향생각과 부모님 생각을 많이 했지만, 지금은 딸 둘과 하루종일 씨름하느라 정신없다”라며 고향과 부모보다는 현실이 더 중요하고 소중하다는 속내를 들어냈다.

이에 화답하듯 남편은 “사는 모습을 보셨다시피 경제적으로 잘 살지 못해 미안한 마음으로 장인장모님의 이해를 바라며, 하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행복하게 살겠다”며 “내가 가진 것이 없고 시어머니까지 모시고 있어 집사람이 고생이 많고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 나역시도 그동안 많이 먹던 술도 줄였고,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이번에 오시게 되어 집사람은 나보다 더 마음이 아팠을 것이다. 못 살아도 팜티리우에게는 뭐든지 다 해주고 싶은 마음이다”라며 부인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다.
이율배반이다. 가진 것이 없는데, 무얼 얼마나 다 해줄 것인가.
하지만 사랑은 물질만은 아닌 것. 부인을 위해 무엇이든 해주고 싶고, 그녀를 아끼고 사랑한다는 그의 마음만은 부자였고 진심으로 와 닿았다.

그녀는 어려운 집안 살림을 위해 틈틈이 마을 농사일을 거들고 번 돈으로 보태고 있다.
집으로 들어올 때 이웃에서 가져다주었다는 밤들이 마당 귀퉁이에 한 바구니 있는 것을 본 생각이 난다. 열심히 사는 그녀를 위해 이웃주민들의 배려일 것이다.

#그녀의 밝고 긍정적인 생각에 희망의 미래가
팜티리우 씨는 힘들고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항상 밝고 긍정적으로 생활을 하고 위아래를 잘 공경하며 시어머니와 가족을 잘 보필하는 현모양처라 할 수 있다.

결혼이민자가족센터 박달한 대표는 “팜티리우씨는 한국생활에 빨리 적응하기 위해 2006년과 2007년 센터에서 운영하는 한글교실에 빠지지 않고 꼭박꼭박 참석할 만큼 한글을 배우려는 열의가 높았다”면서 그녀의 긍정적인 생각에 대해 설명했다.

결혼이민자가족센터 황혜민 사회복지사는 “어려운 시집살이와 시댁식구들의 차별로 인하여 힘든 생활을 했었으며, 이로 인해 주위에서 분가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들도 나왔었다”라며 “그러나 마음 따뜻한 팜티리우는 시어머니를 혼자 두면 불쌍하다고 분가를 원하지 않았다”면서 그녀의 밝고 따뜻한 마음을 칭찬했다.

10월5일 베트남으로 돌아갈 때 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미리 물었다.
친정 부모님들은 “싸우지 말고 힘들더라도 참고 살어, 애기들 잘 키우고 신랑하고 행복하게 잘 살어!”라고 해주고 싶단다.  그 부모에 그 딸인 것 같다.
늦게 퇴근한 신랑 때문에 전체 가족사진을 찍지 못했다. 팜티리우씨가 이제 남편이 돌아왔으니, 가족사진을 찍어 달란다.

시어머니, 친정아버지, 친정어머니, 남편, 큰 딸, 작은 딸 그리고 그 옆에선 팜티리우.
그 가족들이 보여준 따뜻한 사랑을 고스란히 사진에 담아보려 무던히도 애를 썼다. 열의 행복 중 하나라도 제대로 담아보려고.
쉽지가 않다, 역시 사랑과 행복은 피부로 느껴야 하는 것인가 보다!

돌아오는 길이 어느덧 컴컴해 졌다. 자동차 불빛속에 양쪽 길가에서 무언가 하얗게 빛을 발하고 있다.
아! 아까 대안리 가는 길에 보았던 그 코스모스다. 낮에도 밤에도 쭈욱∼ 그 곳에서 서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던 것이다. “이쁘다!, 아름답다!”
내 기분을 알았을까, 봉계삼거리에 다다르자, 빨갛던 신호등이 파랗게 변해준다.
덕분에 속도를 늦추지 않고 그대로 지나치며, 이런 생각을 해본다.
“팜티리우 가족의 앞길에 저렇게 파란 신호등만 켜져, 그녀의 행복이 쭈욱∼ 계속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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