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량법 개정으로 길이는 자(척)에서 m와 km로, 무게는 근이나 관에서 g, kg으로, 부피는 되나 말에서 ㎥, ℓ로, 넓이는 평, 단보에서 ㎡로 표기하도록 정부 시행령이 내려진지 오래된 것 같다.
국제화 시대에 걸맞는 도량형 표기법이란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긴 세월 동안 몸에 익숙하게 사용했던 경험으로 땅 300평 하면 얼른 머리에 짐작이 오는 반면 900㎡라 하면 계산이 잘 떠오르지 않는 것은 오랜 생활습관 때문일 것이다.
물 20ℓ하면 얼마나 되는지 잘 못 알아듣지만 물 한 말하면 바로 머리에 그 양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농촌에서 농사를 짓는데 필수적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농약이다. 우리의 농촌에는 살충제, 살균제, 영양제, 입제, 수화제, 분말제 등 수십 가지의 농약들이 있다.
그리고 그 농약들의 포장제에는 내용물에 대한 설명이 깨알처럼 자세하게 적혀있다. 하지만 늙은 농부들이 읽기에는 돋보기를 써도 힘들 정도다.
농약방에서 농약을 구입할 때 농약사에게 그냥 물어보고 사는 것이 통례이지, 그 내용에 대한 설명서를 읽어보고 구입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제초제면 병뚜껑 한 개에 물 한 말을 섞어 쓰라고 하면 그것으로 구매가 성립되고, 농약사는 병 표면이나 봉지 표면에다 ‘물 한 말에 병뚜껑 한 개’라고 큰 글씨로 써준다.
만약에 이렇게 써주지 않으면 다음 사용 시에 깜박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대략 농약병에 씌여있는 것을 보면 △살충제(수화제) 200g - 물 20ℓ에 13g 사용 △식물전멸제초제(액제) - 물 20ℓ 당 50㎖ 사용 등 물과 약 사용량을 표기하고 있다.
문제는 20ℓ, 13g, 50㎖ 등 이런식으로 나누어 쓰기에는 우리 농촌 실정에서는 계량하는 기구도 없을 뿐 아니라 몸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농약방에서 물 한말에 약 한 스푼, 물 한말에 병뚜껑으로 2개와 같이 이렇게 적어주는 것이 훨씬 편하게 느껴지고 실제로 그렇게 사용하고 있다.
물론 농약제조법령으로 명시돼 있기에 자세하게 깨알처럼 설명서를 표기해 놓았겠지만 시골 농부들에게는 ‘풀 죽이는 약’, ‘바랭이, 쑥, 갈대, 망초대 죽이는 풍약’, ‘물 한 말에 병 뚜껑 한 개를 타서 쓰면 됨’이란 글씨를 커다랗게 표시해 주면 구입하기도 편하고, 사용하기도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세상을 거꾸로 가는 발상이라고 말 할수도 있겠지만 편하고 쉬운 방법을 쫓는 것이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읽어보지도 않는 읽지도 못하는 설명서를 깨알처럼 많이 적어야만 하는 것일까?
그냥 ‘풀 죽이는 약’이라는 농약사의 설명만 듣고 구입하는 것이 우리 농촌의 현실이다.
이병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