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로면 김순자씨의 ‘내가 사는 이야기’
상태바
마로면 김순자씨의 ‘내가 사는 이야기’
  • 보은신문
  • 승인 2008.04.04 16: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려움 이기고, 희망을 꿈꾼다

아사달 글꼬학교에 다니는 김순자(60)씨는 전라도 신안군에서 살다 18세 되던 해에 부모형제와 이별하고 보은군 마로면으로 시집을 왔다.

남편은 하반신을 못쓰는 장애인이었다. 처음 시집을 왔을 때 김순자씨는 너무나도 기가 막혀서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살자니 고생이고, 그렇다고 이대로 떠나자니 신랑이 불쌍하고···.”

김순자씨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사는 게 지옥이었다. 하루에도 열두번씩 고향으로 가고 싶은 마음을 참고 살다보니 가슴은 새까맣게 타버려 한 줌 재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힘들게 살다보면 저 하늘에 별님이 알아 주겠지, 또 달님이 알아 주겠지 하며 살았죠.”

멍든 속을 달래면서 김순자씨는 소도 키우고, 예쁜 아들, 딸 두 남매에 정을 붙이고 사는데 어느날 여덟살 된 딸을 가슴속에 묻었고, 이어 세 살된 아들도 가슴속에 묻고 말았다.

“정말 미칠 것만 같았어요. 미친 듯이 집을 나가서 어딘지도 모르고 헤메고 다니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니까요.”

고달픈 몸을 달래면서 살다가 40살이 되어 아들을 다시 얻게 됐다.

그런데 금쪽 같이 키운, 불면 날아갈 것 같고, 쥐면 터질 것 같아 하면서 키운 아들이 효자였다.

바깥 구경도 못하고 사는 남편을 위해 대전에서 오토바이도 사가지고 왔고, 남편은 오토바이를 타고 세상 구경을 했다. 보은장에도 왔다가고, 그렇게 좋아했다.  

그렇게 십여년을 세상구경을 하다가 뒤늦게 얻은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이 되던 해에 남편은 하늘나라로 떠났다.

글에 눈을 뜨다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고 60평생을 살아온 김순자씨는 4년전부터 글꼬학교에 다니며 글에 눈을 뜨게 됐다. 먼 길을 열심히 다닌 끝에 한글날을 맞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글짓기 대회에서 대상을 받게 됐다.

당시 김순자씨는 글을 읽게 된 자신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해 냈다.
[오십육년, 고단한 내 인생 낫 놓고 ㄱ자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인연이 되어 만난 한글학교, 바쁜 틈틈이 시간을 내어 눈을 뜨려 합니다. 이제는 낫 놓고 ㄴ자도 알았구요. 반지를 보고 ㅇ자도 알았습니다. 김순자, 이게 내 이름이구요. 박희남, 이게 내 금쪽 같은 아들 이름입니다. 내일은 물어보지 않고 버스를 타고 장도 보고, 가벼운 걸음을 내 딛을 것입니다.]

글을 배우면서 김순자씨는 이제 웃음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효자 아들은 지난해 충남대학교에 장학생으로 합격을 했다.

캄캄한 허공속에서 눈을 감고 60평생을 살았지만 이제는 세상을 다 볼 수 있고, 안내판을 읽어가며 고향에도 걱정없이 갈 수가 있게 됐다.

지금은 금쪽 같은 아들을 나라에 충성하는 군인으로 보내 놓고 씩씩하게 살고 있다. 아사달 학교에 행사가 있으면 떡을 준비해 함께 나눠먹는 나눔도 실천하고 있으며 함께 공부하고 있는 어르신들과 행복의 웃음꽃을 피우고 있다.

오늘도 김순자씨는 글꼬학교 어르신들과 열심히 한글을 익히고 있다.

글꼬학교 임재선 어르신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