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자 이런 거 먹을 줄 아나 모르겠네! 송기자 온다고 해서 민물고기 잡아 매운탕 끓인 것인데 맛있는가 먹어봐요. 우리 입에는 맛있는데, 자! 소주도 한잔 하구!”
산대1리 모정마을을 찾은 날 주민들이 나름 손님접대(?) 한다고 소박한 상차림을 해놓으셨다. 이미 동네 어르신들은 매운탕을 안주로 소주를 마시고 계셨다.
상차림이야 방바닥에 매운탕 끓인 냄비를 놓고 젓가락과 숟가락, 식당에서 볼 수 있는 엽차 잔, 그리고 ○○소주병들이 전부다. 소박하고 투박하지만 정감어린 농촌 어르신들의 인심이 엿보인다.
소주잔이 엽차 잔이다. 잔이 크다고 해도 마실 수 있을 만큼, 부담이 되지 않을 양 만큼 따르면 되지만 엽차 잔에 소주를 받으려니 부담스럽다. 어르신들이 손수 끓였다는 매운탕을 먹었다. 고추장을 풀어 얼큰한 게 입에 맞다. 민물고기와 양념이 잘 밴 무를 골라 안주로 먹었다. 접대를 잘 받은 날이다.
농한기인 겨울철이면 앞 냇가에서 고기를 낚아 매운탕을 끓여 경로당에 먹곤 한다는 산대1리는 26가구 52명의 주민들이 김연성(62)이장과 김창래(75) 노인회장, 김년옥(46) 부녀회장, 구각림(44) 지도자와 함께 그 어느 때보다 여유있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 꾸구리, 다슬기가 살아있다
기자 접대용으로 내놓은 매운탕도 마을 앞 하천에서 잡아올린 민물고기로 끓인 것이다. 하천을 달천이라 부르는데 속리산에서 발원해 충주를 거쳐 한강에 이르는 물줄기다. 하천 폭도 넓고 물도 맑아 다양한 민물고기가 서식하고 있다.
주민들은 꾸구리, 참마주, 가산피리, 올갱이(충청도 사투리이다. 표준어는 다슬기) 등 다양한 민물고기가 살고 있다고 전했다. 전에는 끓이거나 찌지 않고 회로도 먹었을 정도였다니 그야말로 생태하천인 셈이다.
특히 오염이 안된 곳에서만 산다는 이곳 올갱이는 마을 주민보다는 외지인들이 더 많이 잡아가는데 청원군 운암 쪽 달천보다 이곳이 더 많아 괴산 사람들까지 찾는다고 한다.
시중에서 생물 올갱이 가격이 밥공기로 하나 가득 채우지 않고도 1만원은 받는다. 중국산 및 북한산 냉동 올갱이도 1㎏에 1만원한다. 이렇게 올갱이 가격이 비싸고 또 간에 좋다고 알려지자 올갱이를 채취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 올갱이 씨가 마를 정도라고 한다. 이곳도 늦가을까지는 밤이면 올갱이를 잡는 사람들이 켜고 있는 플래시 빛으로 꽃밭을 이룰 정도다.
생명의 보고요 젖줄인 달천은 80년과 98년 큰 수해를 입었다. 80년 수해 때에는 하천 가에 살던 한 주민이 떠내려가는 단지를 건지기 위해 물가에 다갔다가 순식간에 밀려 내려오는 물에 의해 휩쓸려 사망하기까지 했다.
98년 수해에도 하천 제방 유실로 농경지가 크게 유실돼 엄청난 피해를 입었었다. ‘자라보고 놀란가슴 솥뚜껑보고도 놀란다’고 비가 많이 오면 가슴이 두근거리지만 98년 수해 이후 하천도 넓히고 제방공사도 튼튼하게 해 다소 위안을 삼고 있다.
주민들에게 피해를 줬던 달천은 여름철이면 피서를 위해 찾는 주민들이 많다.
하천 바닥에 자갈 등이 깔려있어 텐트를 치고 놀기에 적격인데다 산대리 마을 앞쪽에 보까지 설치돼 있어 물놀이하기에 좋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하천 제방 공사와 산대교를 재시공하면서 다리 위치를 바꿔 과거보다는 이용객들이 다소 감소했다.
# 교통요충지였다
수량이 풍부하고 생태계가 살아있어 유원지로도 이름난 산대1리는 면 소재지는 아니지만 산외면 중심에 위치한 교통요충지였다. 산대1·2리, 길탕1·2리, 중티, 오대, 가고, 이식1·2리, 어온리, 원평마을을 하나로 아우르고 있었다.
그래서 이 마을에 보건진료소가 있었고 학교도 있었으며 정부수매 양곡창고도 있었다. 선거도 이 마을에서 치렀을 정도였다.
그러다 인구 감소로 학교는 폐교되고 정부 수매도 구티리 농협창고에서 하고 선거도 산외초등학교에서 치른다. 그래도 아직 진료소는 계속 유지돼 주변마을 주민들의 건강지킴이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전에는 가고방향이나, 원평방향, 중티방향의 시내버스가 산대1리를 경유해 주민들이 진료소를 이용하기가 편리했다.
하지만 최근 시내버스 노선이 변경하면서 중티·길탕1·2리나 이식·어온 방향은 산대1리쪽으로 운행을 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산대1리 보건진료소를 이용하던 주민들이 구티 보건지소나 보은에 있는 병원을 이용하기 때문에 진료소 이용 주민이 현격히 감소했다.
진료소를 방문했던 환자들도 교통불편으로 진료소를 나오지 못하게 되자 진료소장이 직접 방문 진료를 해야 하기 때문에 진료소를 비우는 예가 많아졌다.
길이 어긋나 진료소장이 방문진료를 간 날 진료소를 찾은 환자들은 소장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거나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등 환자들의 불편이 커졌다.
이같은 주민들의 불편이 계속되자 진료소 운영협의회(회장 정외식, 산대1리)는 보은군에 시내버스 노선을 원래대로 해줄 것을 건의하기까지 했지만, 현재로 봐서 노선 변경은 사실상 어려울 전망이다.
시내버스 노선변경으로 교통이 불편해 진료소를 찾는 사람들이 과거보다 크게 줄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산대1리는 오대리, 가고리, 원평리 주민들이 거쳐가는 경유지이다.
주민 화합의 장인 경로당을 거쳐가는 인근 마을 주민이 하루 7, 8명에 달한다. 이들은 이 마을 주민들과 함께 점심식사도 한다.
이들은 돼지뼈도 사오고 동태를 사오기도 하고 집에서 시래기를 가져오기도 한다. 산대1리 주민들은 이들과 함께 점심을 해서 먹는 등 서로 어울려 친목을 다지고 있다.
이렇게 경로당을 주민 화합의 장으로 만들고 있는 산대1리 주민들은 한가지 원칙을 정했다.
농협 마트에서 소주를 병당 1천원에 사오면서 경로당에서 마실 때는 병당 300원씩 수수료를 붙여 적립해놓는 것이다.
이 돈으로 반찬재료도 사고 경로당에 필요한 소모품도 구입하는데 얼마 전에는 주방 바닥에 깔판을 사서 깔았다. 왜냐하면 여자 회원들이 한자리에 오랫동안 서서 설거지를 하면 발바닥이 아프다며 푹신한 걸로 깔판을 사달라고 주문을 해 그동안 모아놓은 돈으로 기분좋게 여자회원들에게 인심까지 썼다.
농사철이 돌아오면 서로 내 집 일하기 바빠 이웃집에서 무엇을 하나 돌아다 볼 여유도 없는데 농한기인 겨울 한 철 이렇게 경로당이라는 한 집에 다같이 모여 도란도란 얘기도 나누고 맛있는 거 해서 함께 나눠먹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도와준다. 울도 담도 없는 농촌 마을의 풍경이 그려진다.
# 테마공원사업에 희망걸어
논보다 밭이 많아 일거리가 많은 산대1리는 과거 담배가 주작이었다. 담배농사를 짓지 않는 농가가 없을 정도로 담배고지였다. 그러다 담배를 심었던 그 밭에 충남 금산 사람들이 인삼포를 조성했다.
5년씩 임대를 받아 인삼을 재배한 금산사람들은 산외면 지역에서 대부분 큰 돈을 벌었다.
이렇게 5년 임대가 끝나자 산외면 주민들이 인삼 재배기술을 배워 자경을 시작했다. 담배를 재배했던 것보다 훨씬 소득이 높았다.
집집마다 빚이 있는 집이 한 집도 없을 정도로, 넉넉하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경제적 여유가 생긴 산대1리에 경사가 생겼다.
바로 올해부터 농촌테마공원 조성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행하게 된 것. 3년간 국비 25억원과 도비 12억5000만원, 군비 12억5000만원 등 50억원이 투입되는 이 사업은 ‘전통’을 테마로 전통정원, 하천 생태학습원, 대추정원, 허브정원, 철쭉정원 등을 조성해 마을경관을 아름답게 가꾼다는 계획인데 다리건너 정자를 설치한 곳까지 대추터널을 만든다.
또 마을 둥구나무 주변의 사유지 등을 매입해 휴게소를 만드는 등 공원을 조성하고 산대1리에서 산대2리로 넘어가기 전 임야와 밭에는 철쭉 공원을 조성하고 외모정에서 2리 입구까지 황토길을 조성한다.
이같은 사업계획이 알려진 후 주민들은 마을경관이 아름답게 꾸며 지면 도시민들이 머물 수 있는 농촌지역이 되지 않을까 기대를 하고 있다.
도시민들이 마을에 머물면서 농사체험도 하고 농촌 경관도 감상하고 휴식도 취할 뿐만 아니라 농민들이 생산한 농산물도 구입해 가는 등 농촌관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
여기에 산대1리는 건강 장수마을 사업 신청도 했다. 최 장수 어르신인 이재우(83, 유근국씨의 어머니)할머니를 비롯해 마을 전체 주민 52명 중 60세 이상인 고령자가 44명에 이를 정도로 장수어르신이 많다.
올해는 선정이 안될 수도 있으나 선정되면 다슬기가 많이 서식하고 있는 지역적 여건을 이용해 다슬기 양식장을 만들어 더 많은 사람들이 다슬기를 잡을 수 있게 한다는 것.
또 현재는 겨울철 점심 한끼만 경로당에서 해결하고 있는데 혼자 생활하는 고령의 노인들은 끼니를 챙겨먹는 것도 벅차기 때문에 거르는 경우가 많아 2, 3년 후엔 3식을 모두 경로당에서 해결하도록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생활개선자금 1억원을 확보해 고추장, 된장 가공공장을 건립할 계획도 갖고 있는 산대1리 주민들은 새롭게 탄생할 마을 모습을 그리며 기대에 부풀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