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탐방(115)-수한면 동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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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탐방(115)-수한면 동정리
  • 송진선
  • 승인 2008.01.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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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 자연 마을이 모여 하나로 뭉쳐진 곳
시골의 마을 이름 속에는 그 마을의 역사가 담겨있다. 마을 이름의 어원도 담겨있다. 행정구역 명칭으로 부르는 이름보다 더 정감을 더한다.

그래서 행정구역 명칭을 놔두고도 많은 사람들이 종종 자연마을 명을 부르기도 한다. 디지털 시대 아날로그를 사랑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수한면 동정리도 촌스럽지만 정감을 주는 마을이름이 있었다. 메지랭이, 새터, 듭푸골, 지금은 상 동정, 중 동정, 하 동정 이렇게 불린다.

마을 이름이 오동나무와 우물이 있어서 동정(桐井)이라 불렀다고 전해지지만 자연마을 명을 보면 우물과 오동나무가 있어서 동정리라 했다는 어원과는 전혀 연관이 없다.

동정초등학교, 지금의 비림박물관이 위치한 곳이 바로 메지랭이 마을이다. 동정 저수지 정상 쉼터에서 만나는 고개 이름도 바로 메지랭이 고개이다. 옛날에 폐촌됐다가 동정국민학교가 생긴 후 다시 마을이 형성됐다고 한다.

그런데 왜 메지랭이라고 불렀을까? 마을이 들어앉은 자리가 꼬리 긴 새의 자웅(雌雄)이 앉아있는 형국이라고 하는데 마을이름에서는 새의 어원이 들어있지 않다. 메지랭이라는 말은 아마도 ‘머귀(오동의 고어)’와 ‘랑이’를 합해 머귀랑이, 머귀랑이 하다 머기랭이 머기랭이 했을 것이다.

그리고 길이가 길다라는 표현을 연세가 높으신 어르신들은 질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처럼 머지랭이 머지랭이 하다 메지랭이로 변한게 아닐까 나름 추측해본다.

메지랭이 마을에서 국도 25호선 건너편에 있는 마을이 새터말이다. 이곳에는 동정 보건진료소가 신축돼 이전했고 또 도로변에 휴게소와 식당이 있는 등 새터말 규모가 점차 커지고 있다.

이밖에 물이 고이면 물바다를 이룬다는 듭후골(평포)에도 5가구가 거주했으나 고속도로가 지나가면서 마을이 모두 편입돼 5가구 모두 마을을 떠났다.

나머지 상 동정은 상 차정리 건너편에 위치해 하고 있다. 25번 국도를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 주민들이 아니고는 상동정리를 차정리로 착각하게 할 정도로 차정리와 가깝고 동정리와는 상당히 떨어져 있다.

이렇게 동정리는 메지랭이 하 동정 13가구, 새터말 중동정 21가구, 상 차청리 맞은편에 위치한 상 동정 11가구 합해서 45가구에 90여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마을 이장은 조규철(48)씨가 맡고 있고 노인회장은 박희준(79)씨, 부녀회장은 이영순(53)씨, 새마을지도자는 강창훈(50)씨가 맡고 있다.

# 3개의 마을이지만 단합은 최고
온 주택들이 한 곳에 운집해 있는 것이 아니고 마을과 마을 사이의 거리가 상당하다. 그래도 각기 다른 행정구역이 아닌 동정리에다 1, 2리로 나뉜 것도 아니고 단일 마을 명을 쓴다.

과연 단합이 잘될까 혹시 자연마을 간 각종 사업을 먼저 가져가려고 힘 겨루기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아니라고 한다. 각기 다른 마을이지만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로 돕는다고 한다.
2007년 12월29일 동정리 마을 동회를 가졌다. 이날 수입과 지출에 대한 보고와 함께 2년 임기를 다한 조규철 이장이 더 이상 이장직을 수행하기가 어렵다며 사임했다.
하지만 동네 주민들이 다시 조규철 이장의 연임으로 몰아갔다. 상당수의 마을이 이장 임기를 다하면 경쟁자들이 나서서 투표를 실시해 후임 이장을 뽑는 것이 다반사다.

투표를 실시해 이장을 선출하는 것이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고 경쟁이 되면 어쨌든 당선이 되기 위해 운동을 하게 되고 또 투표에서 된 사람은 좋겠지만 떨어진 사람은 기분이 안 좋기 마련이다. 그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골이 생길 수도 있다.

동정리는 이같이 투표라는 절차없이 재 추대를 했다는 것을 보면 여러 마을로 이뤄졌지만 단합, 화합에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 경로당 운영의 모범 선례
동정리의 여러 자랑거리 중이 하나가 바로 모범적인 경로당 운영일 것이다. 마을 소유의 부지가 없어서 당시 노인회장을 맡았던 고 박준달옹이 현재의 부지를 청주 백대인씨로부터 무료로 사용승낙을 받아 1986년 3월 66㎡(20평) 규모로 신축했다.

21년 된 건물이지만 튼튼해 보인다. 동네마다 제일 번듯하게 지어진 집이 경로당일 정도로 벽돌 집 경로당은 아니지만 역사가 느껴진다.

경로당 입구에는 주민들이 자랑하는 공적비가 있다. 이 공적비는 노인회 활성화 및 지역사회 봉사에 큰 공적을 남긴 전 노인회장 고 박달옹씨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노인회에서 세운 것이다.

공적비의 주인공인 고 박준달 옹은 마을 노인회장 직은 수 십 년 간 수행하면서 가장 모범적인 경로당을 운영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생전에 그는 노인회원들과 함께 산에서 직접 싸리나무를 채취해 매년 싸리비를 만들어 보은군청, 교육청, 경찰서를 비롯 수한면사무소, 우체국, 보건진료소, 한전 등 군과 면의 각 기관에 기증했다.

나무 대신 기름보일러 등을 사용하고서는 산림이 우거져 젊은이들도 입산하기가 어려울 정도였지만 노인회원들은 경로당 운영에 음으로 양으로 많은 도움을 주고있는 기관에 뭔가 보답을 하고 싶어 싸리나무를 채취해 빗자루를 제작해 기증한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휴경 농지에는 수수를 재배해 수수를 수확하고 남은 수숫대를 이용해 수수 빗자루를 만들어 팔기도 했다.

박준달 옹이 수 십 년 간 노인회장을 하면서 잡담하고 화투나 치는 경로당이 아닌 생산적인 일을 독려해 노인회의 건전한 풍토를 조성하고 노인회의 자립기반도 다져 놓았다.

이같이 열성적으로 노인회를 운영해 지난 92년 3월에는 보건사회부 장관으로부터 모범 경로당으로 인정을 받고 그 해 12월에는 모범적인 자치활동으로 우수 경로당 상인 보건사회부 장 상을 수상했으며 이외에도 보은군수와 보은경찰서장 등으로부터 상장과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동정 노인회는 이같이 박준달 옹이 닦아놓은 자립기반과 봉사정신을 이어 받아 앞으로도 꾸준히 그 뜻을 계승 발전시켜 나갈 것을 다짐하며 93년 1월 공적비를 건립했다고 한다.
지금은 고 박준달 옹의 아들인 박희군(79)씨가 노인회장직을 맡고 있다.

# 소재지 아니면서 면의 중심
국도 37호선과 국도 25선을 중심으로 지역이 분리된 수한면은 소재지가 특별히 없다고 할 정도다. 면사무소와 우체국, 농협이 소재하고 있는 후평리가 소재지이지만 동정리도 후평리 못지않는 면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다.

보건진료소가 위치해 있고 지금은 폐교돼 비림 박물관으로 변했지만 동정 국민학교가 있었다.

동정리 뿐만 아니라 차정리, 질신리, 오정리, 장선리, 산척리, 율산리 등 마을 주민들이 이용하고 있는 보건진료소는 물리치료기, 발 마사지 기 등이 있고 연로한 노인들은 감기에 걸려도 쫓아오고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아파도 쫓아와서 주사도 맞고 물리치료도 받는다. 동네 이런 시설이 있으니까 여러모로 좋다고 칭찬일색이다.

수한초등학교 부설 간이학교로 운영되다 1946년 승격된 동정국민학교는 고 박기종(5대 국회의원) 옹이 부지를 희사해 학교를 세우게 됐다. 학교 건립 기성회에서 송덕비를 건립해 그 뜻을 기리고 있는데 학생들에게 배움의 전당역할을 했던 동정국민학교는 한때 오전반 오후 수업 반으로 나눠 공부를 했을 정도로 학생들로 북적였다.

박영직(73) 할머니는 “19살 때 성리에서 시집을 왔는데 그 때는 다 부서져 가는 판자 집 같았는데 그 이후 지금의 모습으로 학교를 지었어. 49살인 우리 큰아들이 이 학교에서 배우고 보은으로 나가 중학교를 나왔지. 고마운 학교여”하며 당시의 학교 모습을 기억했다.

한집에서 많게는 4,5명이 다니기도 했으니 학교는 좁은데 동정, 차정, 오정, 산척, 질신1·2구, 율산1·2구, 장선리와 옥천군 안내면 방하목 2반까지 학구의 아이들이 모이면 얼마나 많았겠느냐며 운동회 때는 엄마들은 구경할 곳이 마땅치 않아 학교 옆 산에서 구경을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다 이농현상으로 인해 젊은이들이 줄고 취학아동이 적어 결국 ·1997년 분교로 격하된 후 폐교됐다.

지금은 비림박물관(관장 허유, 2002년 개관)이 들어서 비속에 글씨를 새긴 비림전시관과 해양전시관(패류 100점, 산호 65점), 731부대 마루타 자료 전시관, 서화, 도자기·벼루 등을 전시해 일반에 공,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어느 농촌이마 마찬가지지만 동정리도 노인들이 대부분이어서 소득형편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젊은이를 주축으로 다양한 소득작물 재배를 시도하고 있다.

과거 담배와 고추를 주작으로 했다가 오이와 배추를 전환해 소득을 높였고 지금은 더덕, 사과 농사도 많이 짓고 한우도 대규모로 사육하고 있다.

과거 동정학교 학구단위 마을 주민들과 함께 작목반을 조성해 재배기술을 공유하는 주민들은 유통시장을 개척하는 등 공동대응으로 시장출하에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특히 동정리 특유의 흑토에서 생산된 농작물은 품질이 우수해 대전, 청주 등 농산물 시장에서 인정을 받고 있으며 고가에 출하돼 농가 수입 증대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마을 어른들은 솔선수범하고 청년회가 마을의 모든 일을 처리해 나가고 재외 출향인들의 애향심이 돈독해 마을을 위한 일이라면 앞장서고 있는 동정리. 보은평야의 젖줄인 동정저수지의 넘실대는 물결만큼이나 주민들은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늘 준비하며 비상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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