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탐방(114)-삼승면 천남3리(삼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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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탐방(114)-삼승면 천남3리(삼승이)
  • 송진선
  • 승인 2007.12.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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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승이’에서 있는 척 하지 마세요
천남3리 자연 마을 명으로는 삼승이, ‘삼승이’를 취재하기 위해 마을을 찾았을 때 막 시내버스에서 내린 예닐곱 명의 할머니들이 마을 안으로 가신다.

한 할머니는 무거운 짐을 머리에 이었다. 보은장날이겠구나, 아니 원남 장날인가 보다 생각하고 서서 할머니 일행을 차에 동승해 마을 안으로 들어왔다.

겨울만 되면 함께 밥도 해먹고 담소도 나누는 주민 화합의 장소인 경로당. 천남3리도 당연히 그렇겠거니 했다. 그런데 아니다. 경로당에 사람이 없다. 다들 어디를 갔을까?

그들은 사과 수확을 끝내는 동시에 다시 사과밭으로 갔다. 1년 내내 사과밭에서 사는 것이다.

내년 봄까지 사과 전지전정을 모두 끝내야 하는 농가들은 수확은 모두 끝냈지만 마음이 바쁘다.  그리고 아직 팔지 않고 다다 놓기만 한 사과 선과도 해야 하고 포장해서 대전공판장 등에 내기도 해야 하고 얼마나 바쁜지 모른다.

천남3리는 총 23호에 63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김춘선(58) 이장과 이상준(74) 노인회장, 송낙호(47) 새마을지도자가 마을의 중심인물로 활동하고 있다.

특별히 현안사업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지만 그래도 꼽는다면 마을 들어오는 입구가 응달이 져서 눈이 오면 봄이 돼야 녹을 정도다.  그래서 얼음길 불편을 느끼는 주민들은 현재의 콘크리트 대신 아스팔트 포장을 원하고 있다.

# 왜 삼승이일까
천남3리는 천남1리 즉 성남에 속했으나 마을 규모가 커지자 1975년 7월 천남3리로 분리된 것이다. 마을 뒷산인 삼승산의 제일 높은 봉우리인 매봉 아래 자리잡은 첨남3리 원래 마을 이름은 삼승이이지만 사투리로 ‘삼싱이’라고 한다.

지명에는 어원이 있는데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통폐합하면서 마을 이름도 상당부분 어원을 따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천남리는 당시 각동(角洞) 즉 각골과 상석남리(上石南里), 하(下)석남리 일부를 병합해 오덕천 남쪽이 되기 때문에 천남(川南)리라 했다. 마을 이름 속에서는 원래 갖고 있었던 의미가 완전히 없어진 셈이다.

다행히 옛날 지명이 그대로 불리고 있는데 천남3리인 삼승이도 옛날 지명이 그대로 불리고 있는 사례다.

삼승이는 보은군 지명지에 의하면 새뜸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에 강씨, 이씨, 신씨 등 세 사람이 터를 잡아 마을을 이뤘다고 해서 불려진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

그러나 김춘선 이장은 삼승이는 천남3리를 가리키는 지명으로 지명지에 나오는 강씨는 각골에 터를 잡고 있다며 강씨, 이씨, 신씨가 터를 잡아 마을을 이룬 것이 아니라 은진 송씨, 경주 이씨, 밀양 박씨가 터를 잡아 삼성이(三姓伊)이라 했다가 삼승(三升)이가 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경주 이씨는 천남5리의 50%를 차지 집성촌이고 또 옛날부터 시향을 지내러 오는 집안을 보면 현재 마을의 집성을 이루고 있는 경주 이씨와 은진 송씨, 밀양 박씨라며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어느 것이 맞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지역의 역사이기 때문에 고증을 통한 바로잡음이 필요할 것이란 생각이다.

# 10여호는 억대 소득 올려
천남3리도 주 작목이 사과이다. 전체 10여호가 사과농사를 짓는다.  가장 많이 짓는 이명희씨는 사과 재배 경작지가 1만4천평이 넘고 송낙호씨도 1만평이 남는다고 한다. 이 마을에 사과작목이 처음 들어온 것은 1975년경이다. 당시 신현필씨와 이상묵씨, 이상희씨 등이 재배를 시작해 마을에 확산됐다.  낮과 밤의 온도차이가 크는 등 보은군의 지역적인 조건으로 인해 천남3리에서 생산된 황토사과도 품질이 우수해 서울 양재동 물류센터에서는 최고의 품질로 인정받고 있다.

임금님에게 진상해 예부터 알아주던 보은대추를 새해 청와대에 진상해 보은대추의 진가를 다시 한 번 전국에 떨치게 됐는데 그런 보은대추를 2농가가 재배한다. 그것도 대규모이다. 비가림 재배시설까지 설치해 개화기 안정적인 수정은 물론 여름철 아무리 비가와도 열과 현상이 없는 등 최고 품질이 대추를 생산하고 있다.

또 한 집에서 4, 50마리 이상 한우를 사육하는 한우 전업농이 3농가이고 4개 농가는 한우도 10마리 이상 사육하며 사과농사도 짓고 논농사도 하는 복합영농 농가이다.

벼농사를 짓는 사람도 2, 3만평을 경작하는 대농들이다.
이렇게 천남3리는 23호 밖에 안될 정도로 마을은 단출하지만 이중 10여 가구는 1억 이상 소득을 올리는 부농들이다. 그 중에서도 사과를 재배하는 두 농가는 2억 소득이 넘는다고 한다.

돈이 되는 작물을 재배하느라 농한기가 따로 없이 사철 바쁘게 사니까 소득도 높고 주민들도 풍족한 삶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농촌에서 돈이 되는 작물을 선정해 열심히 재배하면 도시생활보다 더 풍요롭게 살 수 있는 것이다. 농업으로 억대 매출을 올렸다고 전부 순 수입은 아니고 이중 농자재 값에 융자금 갚고 인건비 등을 제해야 하지만 그래도 엄청난 금액이 순 수입으로 떨어진다.

회색 콘크리트 건물 숲에서 숨이 턱턱 막히는 매연 공기를 마시며 밤이 돼도 별 하나 찾아볼 수 없고 사람들에게 치이고 차에 치여 살며 1년 5천만원 버는 도시민들에게 절대 비할 바가 아니다.

# 바빠도 책임은 다 맡아
오전 9시면 근무를 시작해 저녁 6시가 퇴근시간인 직장인과는 달리 농민들은 출퇴근 시간 없이 집을 나서는 시간이 출근시간이요, 집에 들어오는 시간이 퇴근시간이다. 아침 밥 먹기가 무섭게 과수원으로 달려가 하루 종일 일하고 집에 돌아오는데 해도 해도 끝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사과농사 짓는 사람들은 놀아도 사과밭에 가서 놀아라 라고 할 정도.

특히 4, 5월 꽃을 따주고 과일솎기를 할 때가 제일 바쁜데 그 때는 옆집에 무슨 일이 있는지도 모르게 일에 정신 없이 매달린다.

이렇게 일에 치여 사는데도 분야별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니까 면내 각 단체의 책임 다 맡고 있다.

김춘선 이장은 그래서 마을 주민들이 서로 바쁘니까 잘 만나지도 못한다고 한다.

바쁘니까 이 마을에는 아직 부녀회장이 없다. 무슨 얘기냐 하면 남편들이 마을에서든, 면내에서든 대부분 책임자를 맡고 있으니까 부인이라도 내 집일을 해야 한다며 부녀회장을 맡지 않는 것.

부녀회장을 하면 회의에 참석해야 하고 교육에도 참석해야하는 시간을 뺏기기 때문에 할 수가 없다는 것이 현재 이 마을 젊은 부녀자들의 항변이다. 그래도 사과 교육 등 영농교육에는 열성적으로 참여한다. 어쨌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기는 좋았다.

# 지역민 출향인 화합
마을에서는 매년 3월 첫 째 주 일요일에 출향인을 초청한 화합의 잔치를 개최한다. 마을을 천남1리에서 분구됐을 때보다 현재 마을에 남아있는 가구 수나 주민 수보다 나가있는 사람이 더 많아 출향인 초청 잔치에는 모두가 한마음이 돼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도시생활에 젖어있는 출향인들은 고향에서의 추억을 되새기며 향수를 달래고 지역민 또한 그들이 돌아올 고향을 지키고 있다는 자부심이 크다.

그래서 중앙교수를 지낸 신문철씨가 고향을 지키고 있는 주민들에 대한 보답이라도 하듯 1천500만원을 들여 마을 주민들이 사용했던 우물터에 정자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이렇게 출향인과 지역민과 유대관계를 잘 맺으면 서로 편이 되어 줘서 든든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출향인들도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이 고향인데 늘 한결같이 따뜻하게 맞아주니 서먹하지 않고 어제 집 떠났다가 돌아온 것처럼 묻어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쇠할 대로 쇠한 마을은 다시 사람들이 넘쳐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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