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디기 힘든 고통을 안고 살아온 2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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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디기 힘든 고통을 안고 살아온 25년
  • 보은신문
  • 승인 2007.1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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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가운데, 커다란 상처를 안고 살아온 회남면 분저리 송 인 옥 할머니
25년을 가슴속에 묻어 두었던 이야기를 풀어내려니 숨이 가쁜가 봅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녀가 풀어놓은 이야기에 가슴 한 켠이 메어져 옵니다.

견디기 힘들었을 텐데···

지나온 세월을 이야기하는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무채색입니다. 아직도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얼굴엔 병색이 남아 있었지만 환하게 웃는 그녀의 표정만큼은 편안해 보입니다.

25년이란 세월을 그녀는 몸 한가운데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채로,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부여 안고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보은군 노인장애인복지관의 도움으로 그녀는 기나긴 고통의 끈을 떼어낼 수 있었습니다.

코끝이 시리도록 매서운 바람이 불던 11월의 마지막 날에 청주 성모병원에서 그녀를 만났습니다.

이야기를 풀어놓는 그녀의 눈가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고, 결국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한 눈물 한 방울이 볼을 타고 흘러내립니다.

올해 73의 송인옥(회남면 분저리) 할머니. 너무도 힘들었던 그녀의 삶 속으로 들어가 봤습니다.

# 시련의 시작
시간은 25년 전으로 올라갑니다.
배가 많이 아팠다고 합니다. 어느날인가는 하도 배가 아파서 밤새 아픈 배를 움켜쥐고 울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병원을 찾을 생각은 하지도 못했습니다. 먹고 살기도 힘들었지만 마땅한 교통편이 없던 그때, 보은읍까지 나오는 길은 그녀에겐 너무도 먼 길이었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습니다.
버스를 타고 회인면에서 집으로 돌아가려던 중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주위에 있던 마을사람들의 도움으로 청주에 있는 병원을 찾게 됐습니다.

의사선생님은 “간에 돌이 배겼다”며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다행히 수술을 잘 마쳤지만 그녀는 병원을 나설 수가 없었습니다. 50만원이라는 병원비를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3달.
“집을 장만 하려고 저축한 돈”이라며 남편이 이웃에게 병원비를 얻어와 간신히 병원을 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배 위에 박혀있던 두 개의 호스는 그대로였습니다.
호스를 빼내고, 접합수술을 해야 했지만 남편의 죽음과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니는 아이들 때문에 배 위에 박혀있던 호스를 떼어 낼 여유조차 갖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3년이 지났습니다.
늦었지만 배 위에 박혀있는 호스를 빼내기 위해 서울에 있는 큰 병원을 찾았고, 감당하기 어려운 수술비 때문에 호스만 빼낸 채 접합수술도 없이 그냥 집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 배 위에 뚫린 커다란 구멍
배 위에 뚫린 커다란 구멍은 기저귀로 둘둘 말아 막았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는 고무줄로 꽁꽁 묶었지요. 하지만, 내장과 연결돼 있던 그 구멍에서는 노란 체액은 물론 음식물까지 흘러나와 하루에도 몇 번씩 기저귀를 갈아야 했습니다.

배 위에 뚫린 커다란 구멍 주위는 금새 헐고, 피도 맺혔지만 그녀는 아픔을 참고 일어서야 했습니다. 남편이 떠난 자리를 메우기 위해, 다섯명의 자녀는 물론 시아버지와 조카들까지 먹여 살리기 위해 그녀는 아픔을 이기고 일어서야 했습니다.

쓰리고, 따가울 때는 얼굴에 바르는 크림을 발라보기도 했고, 여름에는 땀띠약을 바르며 그렇게 아픔을 이겨냈습니다.

배부르게 먹어본 것이 언제인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조금이라도 많이 먹거나 짜고, 매운 음식을 먹으면 3, 4일은 고생을 해야 했습니다.
매일 밥상에 차려지는 김치도 그녀는 20여 년 동안 입에 대 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 새로운 삶을 꿈꾸며
11월21일. 청주 성모병원에서 그녀는 꿈에 그리던 접합수술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그렇게 먹고 싶어했던 김치를 먹었습니다.

조금은 걱정이 됐는지 물에 씻고, 씻어 조금만 입 안에 넣어보았다고 합니다.
“이제는 뱃속이 매운 것이 아니라, 입속이 매워 못 먹겠다”며 함박웃음을 지어보입니다.
 25년을 괴롭혀 왔던 배 위에 뚫린 커다란 구멍은 잘 치료됐다고 합니다.

이제 곧 퇴원할 날만을 기다리는 그녀가 하고 싶은 일이 참 많았습니다.
제일 먼저 삼겹살에 고추장을 듬뿍 찍어 한입에 넣어보고 싶다고 합니다.
기름지고 매운 음식을 먹어보지 못해서인지 가장 먼저 맛있는 음식이 생각나나 봅니다.
그리고 큰 은혜를 입은 만큼 이제는 함께 나누는 삶을 살고 싶다는 희망을 얘기했습니다.
“지금까지 그 큰 고통을 안고 살면서 나보다 더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래도 난 움직일 수는 있지 않느냐’라며 내 자신한테 물으면서요. 큰 도움을 받은 만큼 베풀며 살아가겠습니다.”
밝은 웃음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그녀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류영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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