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탐방(107)- 내속리면 삼가1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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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탐방(107)- 내속리면 삼가1리
  • 송진선
  • 승인 2007.07.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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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 얻은 보은대추의 진원지
저수지를 치마폭에 담고 앉아 있는 듯한 마을이다. 삼가리는. 내속리면이지만 갈목재를 이용하기보다는 외속리면 장안으로 서원계곡을 따라 삼가터널을 거쳐가는 것이 훨씬 편하다.

농촌 주민들의 발이라고 할 수 있는 시내버스도 상판에서 갈목을 거쳐 갈목재를 넘어 삼가리에 닿는 것이 아니라 외속리면에서 삼가터널을 통과해 삼가리에 닿는 노선으로 운행되고 있다. 그래서 쉽게 생각하면 외속리면으로 행정구역을 조정해달라고 요구할 법도 한데 주민들은 이를 요구하지 않는다.

현재 내속리면 구역이기 때문에 면사무소 가기도 불편하고 속리중학교까지 통학하기도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만약 외속리면 구역이라면 면 행정보기도 편하고 중학교는 보은중학교나 보은여중으로 학군이 조정되지 않을까.

군내에서도 오지로 손꼽히는 이곳은 삼가1,2리를 포함해 삼가5개동이라고 일컫는데 그 중심에 삼가1리가 있다.

삼가저수지 위쪽, 주변에 있는 마을인데 삼가리 말고 삼가1·2, 대목, 만수, 구병리까지 삼가 5개동이라 일컫는 이곳을 가기 위해 삼가1리부터 크게 3개의 삼거리가 자리하고 있다.

그 첫째가 삼가1리 느티나무 앞 삼거리로 삼가1리 들어오는 곳과 대목리로 가는 곳, 만수(구병)리로 가는 곳이 있고 또 하나는 초원슈퍼 앞으로 만수리로 통하는 입구와 구병리로 향하는 곳이 있으며 마지막 세 번째는 삼가초등학교 앞으로 경북 동관으로 향하는 곳과 구병리로 향하는 곳이 만나는 곳이다.

지명지에는 보은과 경북 상주, 경북 문경으로 통하는 세갈래 길이 있어서 삼가리라 했다고 한다. 그러나 길의 갈래가 있는 경우 삼거리, 사거리라고 하지 삼가리, 사가리 라고는 하지 않기 때문에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마을 이름을 잘못 정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그러나 어쨌든 삼가리는 원래 삼가저수지가 축조된 곳에 마을이 형성돼 있었다고 한다. 마을에 돌배나무가 많아서 임경업 장군이 속리산에서 수련을 할 때 마을 뒷산인 형제봉에서 바라본 마을이 온통 하얀 돌배 꽃으로 뒤덮여 장관을 이루자 이에 감탄해 이화동이라 불렀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 삼가리를 이화동이라 부르는 사람은 없고 다만 삼거리라고는 부르는데 삼거리는 삼은 한자를 쓰고 거리는 한자가 아닌 우리말을 그대로 써서 ‘삼거리’가 아니라 하천에서 마을지명의 어원을 찾을 수 있다.

경북 동관에서 내려오는 물줄기와 대목리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바로 이화동이라 불리던 마을에서 냇물이 합수돼 삼계촌(三溪村), 즉 삼거리가 된 것이다. 따라서 위에서 마을 이름이 잘못 정해졌다고 하는 주장에 합리성을 더해본다면 삼가리는 삼계리라 해야 맞을 것 같다.

삼거리(삼계촌)는 1962년 저수지가 축조되면서 현재의 삼가1리와 삼가초등학교가 있는 마을인 삼가2리로 분구되었다.

이번 호에 소개할 삼가1리는 이종성 (63)이장과 정팔근(77) 노인회장, 전호성(49) 새마을지도자, 이명숙(62) 부녀회장이 33가구 70여명의 주민들과 함께 오순도순 정답게 사는 마을을 이끌어 가고 있다.


# 농촌공사 땅에 살고 있어
옛날 저수지가 담수되기 전만 해도 삼가리는 전체 200여호에 1천여명이 거주하는 내속리면에서 가장 큰 마을이었다.

지금 내속리면 내에서는 그래도 농지가 조금 있다고 하는 하판이나 북암 들보다 훨씬 넓었으며 비옥해 농사도 잘됐다고 한다. 저수지 축조로 비옥했던 땅은 모두 수몰됐고 겨우 집터만 확보해 빠져나왔다.

그때 상당수의 삼거리 주민들이 전답과 가옥에 대한 보상을 받아 삼거리를 떴다. 그러나 보상받은 돈이 적어 도시로 나가도 변변한 집 한 칸 마련하기 어렵거나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고향을 등지지 않은 적은 수의 주민이 남아 내 땅도 아닌 농촌공사(당시 수리조합) 소유의 땅에 집을 짓고 농사를 지으며 현재의 마을을 이루고 있다.

이들이 농토를 일구고 있는 농토는 옛날 땅도 넓고 비옥했던 땅을 가졌던 때 농지로 쳐주지도 않았던, 화전이나 다름없었던 곳이다.

그래도 주민들은 농촌공사에 일정액의 임대료로 내며 살고있다.
주민들은 현재 농지로 사용하고 있는 곳과 집터는 지목상 저수지 부지이지만 사실상 담수되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주민들에게 불하해줄 것을 바라고 있다.

마을회관이나 경로당 부지 또한 농촌공사 소유의 유지이기 때문에 지은 지 오래돼 새로 지어야하지만 부지가 없어 새로 페인트를 칠하고 일부 보수해서 사용하는 것으로 그치고 있는 형편이다.

# 콩 팥 생산 으뜸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한 저수지에 문전옥답과 살던 집까지 내줬으면서 정작 삼가리는 벼농사를 전혀 짓지 않는다. 밭 밖에 없다. 눈앞에 호수가 펼쳐져 있어 물걱정 없이 벼농사를 지을 수 있는 조건이지만 논이 없는 것이 정말 아이러니다.

대신 화두골이라 불릴 만큼 옛날 삼가리는 화전을 일궈 농사지은 콩, 팥 옥수수의 생산량이 군내 최고였다.

농사를 많이 지은 농가는 80㎏ 가마로 100가마를 거둬들였고 못해도 4, 50가마는 수확했다. 보은 장날이면 장사꾼들이 쌀을 가지고 와서 주민들에게 쌀을 주고 콩, 팥 등으로 교환해갔는데 잘날 이곳에서 나가는 콩 팥 등이 군용차(주민들은 이를 스리쿼터라고 불렀다)로 가득 찼을 정도로 양이 매우 많았다고 한다.

70년대 화전이 정리돼 농지규모가 크게 줄었지만 삼가리는 지금도 여전히 콩과 팥 등 잡곡과 옥수수, 또 고랭지 배추, 양배추, 고추와 감자를 재배해 소득을 얻고 있다.

그러나 올해는 한창 꽃이 피어 감자가 통통하게 여물어야 할 시기에 우박이 내려 예년에 비해 알이 더 작고 썩는 피해도 입었다. 주민들은 우박피해를 입지 않았다면 올해같이 감자 값이 좋았을 때 돈 좀 만졌을 텐데 하고 아쉬워 하지만 그래도 다른 지역의 것보다 값을 더 쳐줘 이에 위안을 삼고 있다.

# 보은대추 명성의 진원지
옛날 보은 토종 대추는 지금 보은대추로 알고 있는 개량종보다 크기는 작지만 껍질이 얇고 과육이 많고 맛이 달아 전국 어느 대추와 비교해도 품질이 우수해 임금님에게 진상했었다고 한다.

지금도 임금에게 진상한 보은대추라고 널리 홍보하지만 사실상 옛날에 보은대추는 내속리면과 마로면을 중심으로 많았고 그중 삼가리 대추(토종)는 군내에서도 최고로 쳤었다고 한다.

6∼70년까지만 해도 벼를 보관하는 곳간이 있듯이 삼가리에는 집집마다 대추를 보관하는 곳간이 별도로 있었고 보통 20∼50가마 정도를 수확했을 정도로 대추 고지였다고 한다.

이종성 이장은 “우리가 어렸을 때만 해도 대추를 수확하면 가마솥에 대추를 푹 고아 진액으로 만들어 항아리에 담아놓으면 겨우내 들며 나며 대추 진액을 먹었는데 달고 맛이 좋았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그 많던 대추나무는 삼가저수지 축조로 수몰되고 또 화학비료가 나오면서 퇴비 대신 화학비료를 사용해 대추나무는 빗자루병에 걸려 그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현재 대추고지였던 삼가리에도 토종대추나무는 전호성 새마을지도자 집에 2그루가 남아있을 뿐이다.

마을 주민들은 보은대추의 진원지였던 명성을 되찾기 위해 4, 5년전 박종호씨가 다시 19,835㎡(6천평)에 대추나무를 식재해 수확하고 있으며 올해는 황태연씨가 대목리에 9,917㎡(3천평)을 식재했다.
주민들은 옛날부터 삼가리는 대추고지였기 때문에 대추농사가 잘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수변도로 확장 절실
삼가저수지 수변도로 확장은 삼가리 주민뿐만 아니라 삼가 5개동 전체 주민의 소원이다.
현재 이 도로는 과거 매표소가 설치됐던 곳까지는 2차선으로 도로가 확장됐지만 삼가1리 마을 구간만 아직 차선이 없다.

더욱이 도로선형은 직선이 아닌 커브 구간이 많아 양쪽에서 차량이 올 경우 피하기가 어려워 자칫 충돌 사고의 위험도 크다. 거의 매일 이 도로를 이용해야 하는 주민들은 도로확장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마을 내 소공원을 조성해 관광객들이 찾는 이곳의 경관을 아름답게 조성해주길 바라고 있다.

만수리 입구 초원슈퍼를 가기 전에 위치한 다리 위 하천은 저수지 담수지역이긴 하지만 만수계곡 하류로 여름철 피서객들이 많이 찾는다.

주민들은 이곳 도로변의 유휴부지에 작은 공원도 조성하고 또 차량을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을 만들면 도로경관 조성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밖에 삼가리는 관광객이 많이 찾지만 현재 휴대폰 016 기지국이 없어 불편을 겪는다며 016 기지국 설치도 바라고 있다.

이와 함께 삼가리 주민들의 최대 숙원사업이라고 하면 아마도 집터와 토지 소유주인 농촌공사에서 집터와 농지를 경작자 및 실제 살고 있는 주민들에게 불하해주는 것이다.

모든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조상 대대로 내려온 고향을 지키며 사는 주민들은 아직 내 앞으로 집터 하나 마련하지 못한 실정이다.

다른 동네에 비해 매우 적은 농지이지만 그래도 농사가 비교적 잘되는 작물만 골라 겨우 소득을 올리며 살고 있는 순박한 주민들의 소원이 하루빨리 이뤄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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