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탐방(105)-산외면 원평리
산악지대로 알고 있는 산외면에 이렇게 들이 넓은 곳이 있는가 싶게 원평리는 들이 넓은 평야지대다.들이 넓으면 벼농사를 많이 짓겠거니 하고 생각하지만 원평리는 벼농사보다는 밭작물이 대부분이다.
인삼부터, 과수, 고추, 담배, 콩 등 넓은 들판은 이들 작물로 빼곡히 들어차 있다.
논농사를 많이 지으면 크게 노동력이 많이 필요로 하지 않지만 밭작물은 이와 반대로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오늘 풀을 뽑고 돌아서면 그 자리에서 다시 풀이 올라오고 먼저 뽑은 자리에서는 벌써 키가 큰 풀들이 고랑을 가득 채운다.
그래서 논농사 짓는 사람들이 자전거로 논 한바퀴를 휙 돌고 병이 왔나 보고, 물 고나 보고 가끔 논둑에 풀을 깎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이렇게 논농사를 짓는 사람은 품이 많이 들지 않는 대신 소득이 낮고 밭농사가 많은 사람은 품은 많이 드는 대신 소득이 벼에 비해 훨씬 높다.
아마 밭농사를 짓는 것이 힘들어도 벼농사보다 더 많은 돈을 만지는 재미에 올해만 담배농사 하고 내년에는 그만둬야지 해도 내년 되면 다시 담배 농사 준비를 하나보다.
원평리가 바로 그 짝이다. 밭이 워낙 많아 한가롭게 노는 주민을 찾아볼 수가 없다.
보통 햇살이 뜨거운 여름 한 낮에는 시원한 느티나무 아래 주민들이 모여 담소도 즐기고 낮잠도 자는 모습을 보지만 원평리에서는 볼 수가 없다.
나이가 많으나 젊으나 마찬가지다. 고소득을 올리기 위해 모두가 열심히 일한다. 원평리 마을을 위해 이찬희(62) 이장, 공경환(75) 노인회장, 이관수(47) 새마을지도자, 곽순임(59) 부녀회장이 봉사자로 일하고 있다.
# 1913년까지 면소재지
상원평, 하원평으로 이뤄진 원평리는 마을의 모양새로 보아 면적도 크고 경사가 급하지도 않으며 평평한 것으로 보면 소재지로서 딱 이었다.
그 때문인지 일제 때 원평리에는 면사무소도 있었고 소학교도 있었고 지서도 있었으며 상행위가 이뤄지는 장도 섰었던 면소재지였다.
그러나 지금 면사무소가 있었던 곳이나 학교가 있었던 곳, 지서가 있었던 곳, 장터, 주막거리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옛날 어른들로부터 저 곳에 학교가 있었고 저 곳에 지서가 있었다, 저곳이 장터였다고 전해 들어 알고 있을 뿐이다.
특히 싸리재를 경계로 하고 있는 청원군 계원리 주민들도 싸리재를 넘어 원평 장을 이용했을 정도로 장의 규모가 컸다고 한다.
면소재지가 1913년 구티리로 옮기면서 원평 장은 없어지고 구티장이 섰는데 계원리 주민들이 싸리재를 넘어 원평리를 거쳐 구티장에 다녔다.
원평이 이같이 장이 섰던 것은 아마도 조선시대 관리와 행인들의 숙식을 제공하던 축원(杻院)이 있었던 곳이었기 때문으로 자연스럽게 일제시대 때 면 소재지가 됐던 것이다.
그래서 마을 규모도 당시에는 면내에서 규모가 큰 마을에 속했다고 마을 어르신들을 회고했다.
옛날 세 벙어리가 살아서 또 세 부자가 우애있게 잘 살았다고 해서 삼부평(三富坪)이라 부르고 있는 상원평만 해도 20여호, 원들 마을인 하원평은 60여호로 80가구가 넘었다. 지금은 상원평 12호, 하원평 36호 총 48호 120여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 초대 보은군수 배출
원평리에 소재한 원평교회가 내년 100주년이 된다. 보은군에서는 창리에 있는 주성교회 다음으로 역사가 깊다. 보은에 규모가 제일 크다고 할 수 있는 보은교회도 있지만 역사만큼은 이들 시골교회에 뒤진다.
옛날 교회가 마을에 들어왔다는 것은 그만큼 서양문물을 다른 마을보다 더 빨리 받아들인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기독교가 서양종교이기 때문에 봉건주의적 사고에서 전환하고 자녀교육에도 일찍 눈을 뜰 수밖에 없다.
보은군 초대군수를 배출한 것도 이 마을의 사회적 환경에 연유하지 않을까. 이는 지금도 마을의 큰 자랑거리다. 초대군수 안광국씨는 1946년1월12일 취임해 그해 7월13일까지 6개월간 재임했다. 현재 안광국 초대군수 친인척은 모두 원평리를 떠나 연고가 없다고 한다.
# 소득 작물재배로 고소득
밭 기반정비까지 했을 정도로 원평리는 논보다는 밭이 많다. 더욱이 벼농사로는 소득이 없자 주민들은 논에 고추도 심고 담배도 심고 인삼도 심었다. 벼 991.74㎡(300평)에서 얻는 소득보다 이들 작목을 재배해 얻는 소득이 월등히 높기 때문에 벼농사는 식량을 확보하는 수준에 그치고 대신 밭작물을 식재해 농가당 소득을 높이고 있다.
탄부 들(坪)과 크게 비교된다. 탄부들은 그 넓은 땅에도 논이라는 이유로 벼농사만 짓지 밭작물을 식재해 소득을 조금이라도 더 높이려고 하지 않는다. 일부농사에서 과수원도 조성하고 시설하우스도 설치했고 일부는 인삼포로 임대를 내줬을 뿐 벼농사가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러니 땅은 넓지만 그 안에서 얻는 소득은 밭작물을 많이 재배하는 마을과 비교했을 때 적을 수밖에 없다.
원평리는 예로부터 알아주는 담배고지였다. 과거 보은군은 어느 마을 할것없이 담배농사가 주를 이뤘는데 원평리는 특히 다른 마을과 비교했을 때 월등히 많이 심었다.
담배농사로 자식 공부도 시키고 생활도 하고 과거 담배는 농가마다 효자 농작물이었던 셈이다.
지금은 이장 이찬희씨와 이도희씨, 이관수씨, 황인수씨 4농가만이 하고 있다. 그런데 재배하고 있는 양을 보면 입이 벌어질 정도다.
이장 이찬희씨는 30단, 이도희 씨와 이관수씨는 25단, 황인수씨는 20단을 재배하고 있다. 1단이 1천322.32㎡(400평)인데 30단이면 3만9천669.6㎡(1만2천평)이다. 엄청난 면적이다.
옛날 ㎏당 2천원, 3천원에 불과하던 담배수매가가 지금은 ㎏당 9천원으로 올라 담배농사는 농가의 큰 소득원이 되고 있다.
더욱이 담배 후작으로 많이 재배하고 있는 검정콩, 두부콩 등 콩작물도 가격이 크게 올라 담배를 심은 곳에서 거둬들이는 콩으로도 농가마다 큰 수입을 올리고 있다.
그런가 하면 산외면은 인삼을 재배하는 농가가 많은데 원평리에는 3농가가 있다. 이들은 담배농사를 짓다 인삼으로 작목을 전환했는데 인삼농가들이 자신들의 땅 외에 다른 지역의 땅을 임대해 농사를 짓는 것과 같이 이들도 군내 각 마을의 땅을 임대해 인삼을 심고 있다.
보통 5년생 인삼 수확을 위해 처음 인삼을 재배하기 시작했던 5년간은 수입이 없었지만 지금은 엄청난 수입을 얻고 있다. 거기다 재배경력도 쌓이고 기술수준도 높아지고 우수한 품질의 인삼을 생산해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또 한우도 사육하고 사과, 복숭아 등 과수작목, 고추로 집집마다 소득을 높이고 있다.
#군내 대표적인 피서지
80년대 마을이 온통 물바다가 돼 하원평은 그 때 거의 다시 집을 지었을 정도로 큰 피해를 입었고 98년 수해에도 큰 해를 입은 원평리는 달천 하류로 하천에 물이 풍부해 여름철이면 피서객들로 북적댄다.
지난 96년에는 보은군에서 기암괴석과 맑은 물이 어우러지는 상원평, 삼부평리고 하는 곳에 소규모 휴양지를 조성해 여름철 피서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기존 천혜의 자연환경에 편의시설을 확충해 여름철 휴양단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 원평유원지는 가족 및 단체를 수용하기에 적지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솔밭사이로 2㎞가량 뻗어 있는 계곡과 그 사이로 펼쳐진 모레 밭은 여름휴가를 보낼 수 있는 공간으로 충분하다. 휴양단지 안에는 대형주차장과 화장실 등을 갖춰 여름철 휴양지로는 손색이 없다.
또한 농구, 족구 등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시설과 공터가 마련돼 단체 탐방객들에게 화합의 장소로도 각광받고 있어 많은 직장인들의 단합대회 장소로 이용하고 있다. 특히 원평유원지에는 한꺼번에 1백여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대형천막을 갖추고 있어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다. 원평유원지가 다른 유원지와 다른 점이 있다면 시골의 정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다는 것이다.
주변이 농작물로 신록을 이루고 있으며 하천의 수심이 깊고 낮음이 적절해 보트도 탈 수 있고 낚시도 즐길 수 있다. 여름철이면 더위를 피해 온 인파들이 만원을 이룬다.
# 무인단속 카메라 설치 시급
주민들은 숙원사업으로 주민들은 마을 앞 지방도에 과속 차량을 단속할 수 있는 감시카메라 설치를 들고 있다.
속리산 진·출입 차량 중 청주 이상 위쪽 지역에서 오는 차량은 거의 대부분 원평리 마을 앞 도로를 이용하는데 마을 앞 지방도는 1㎞이상 직선을 유지해 통행 차량들이 과속을 일삼는다는 것.
그동안 마을 앞에서 이찬희 이장도 사고를 당했고 곽순임 부녀회장도 사고를 당하는 등 이곳에서 발생한 교통사고가 17번이나 된다.
따라서 주민들은 도로이전은 쉽지 않기 때문에 대신 차량의 운행속도를 감시할 수 있는 감시 카메라를 설치해줄 것을 바라고 있다. 그동안 선거 출마자 등에게 수 차례 건의해도 반영되지 않고 있다며 서운해했다.
이찬희 이장은 사고를 당하면 보험으로 치료를 해줄지 모르지만 후유증이 크다며 특히 시골에는 70대 노인들이 많아 균형감각이나 판단능력 등이 젊은이들 보다 떨어져 사고를 당하는 예가 많다며 이들이 안전하게 보행하고 경운기 등 농기계를 운행할 수 있도록 반드시 과속단속 카메라 설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사실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게 뭐 있겠는가. 지금도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는다고 걷고 달리고 하는데 내 동네에서 길을 걷다가 참변을 당하면 그것 같이 억울한 게 있을까.
동네 앞 지방도에 과속단속 카메라가 설치되길 동네 주민들의 한결같은 바람이 조만간 해결되길 기대한다.
송진선 기자
산악지대로 알고 있는 산외면에 이렇게 들이 넓은 곳이 있는가 싶게 원평리는 들이 넓은 평야지대다.
들이 넓으면 벼농사를 많이 짓겠거니 하고 생각하지만 원평리는 벼농사보다는 밭작물이 대부분이다.
인삼부터, 과수, 고추, 담배, 콩 등 넓은 들판은 이들 작물로 빼곡히 들어차 있다.
논농사를 많이 지으면 크게 노동력이 많이 필요로 하지 않지만 밭작물은 이와 반대로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오늘 풀을 뽑고 돌아서면 그 자리에서 다시 풀이 올라오고 먼저 뽑은 자리에서는 벌써 키가 큰 풀들이 고랑을 가득 채운다.
그래서 논농사 짓는 사람들이 자전거로 논 한바퀴를 휙 돌고 병이 왔나 보고, 물 고나 보고 가끔 논둑에 풀을 깎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이렇게 논농사를 짓는 사람은 품이 많이 들지 않는 대신 소득이 낮고 밭농사가 많은 사람은 품은 많이 드는 대신 소득이 벼에 비해 훨씬 높다.
아마 밭농사를 짓는 것이 힘들어도 벼농사보다 더 많은 돈을 만지는 재미에 올해만 담배농사 하고 내년에는 그만둬야지 해도 내년 되면 다시 담배 농사 준비를 하나보다.
원평리가 바로 그 짝이다. 밭이 워낙 많아 한가롭게 노는 주민을 찾아볼 수가 없다.
보통 햇살이 뜨거운 여름 한 낮에는 시원한 느티나무 아래 주민들이 모여 담소도 즐기고 낮잠도 자는 모습을 보지만 원평리에서는 볼 수가 없다.
나이가 많으나 젊으나 마찬가지다. 고소득을 올리기 위해 모두가 열심히 일한다. 원평리 마을을 위해 이찬희(62) 이장, 공경환(75) 노인회장, 이관수(47) 새마을지도자, 곽순임(59) 부녀회장이 봉사자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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