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탐방(101)-수한면 묘서2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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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탐방(101)-수한면 묘서2리
  • 송진선
  • 승인 2007.06.0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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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가난했던 마을이 지금은 부자마을
수한면 묘서2리를 취재하면서 느낀 것은 열심히 하는데 하늘이 안 도와줄 수 없지 라는 것이다.

새벽 별보고 한밤중에 들어올 정도로 열심히 땅을 일구니까 하늘은 가장 가난했던 마을을 가구당 소득이 3, 4천만원에 이르는 지금의 부자마을로 만들어 준 것이다.

어떻게 부자마을이 됐을까. 그 궁금증을 풀어본다.

지난호 수한면 묘서1리에 이어 보도하는 수한면 묘서2리는 모종과 증개월, 버드쟁이를 합해 이뤄진 마을이다.

모종은 지금은 없어졌지만 묘서1리에서 묘서2리쪽으로 국도에 있는 다리를 건너 형성됐던 마을인데 약 10여호가 있었으나 국도 확장으로 없어졌다.

약 100여년전 이곳 마을 앞 하천 그러니까 지금의 거현천 변에 큰 바위가 있었는데 그 위에 정자를 짓고 오가는 사람들이 쉬어갔다고 한다.

당시 마을 주민 중 아들이 없어 이곳에서 빌기를 수백번. 그 후 실제 태기가 있었다고 할 정도로 영험해 주민들이 정초 또는 칠석 날 등 이 바위에 음식을 해놓고 가족의 건강 및 가정의 무사 태평을 기원했다고 한다. 지금은 이 바위도 경지정리로 인해 지하로 묻히고 말았다.

정개동(正開洞) 즉 구전으로 자연마을 이름은 증개월이라고 하는데 묘서1리에서 2리 쪽으로 국도변에 소나무를 식재한 곳에서 개울을 따라 쭉 들어가면 나오는 마을이다. 현재 이곳에는 10여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그리고 수한면 묘서2리의 본동이라고 할 수 있는 버드쟁이에 20여가구가 있다.'
현재 묘서2리는 총 30가구 54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중 남자는 30명, 여자는 24명으로 남자가 많다.

여자의 평균수명이 높아 독거노인 중 할머니 독거노인 세대가 많은 것이 보통인데 묘서2리는 할아버지 독거노인 세대가 많다고 한다.

이들 독거노인을 보살피고 마을발전을 위해 이장 이문섭(54)씨와 노인회장 장재익(71)씨, 부녀회장 김간랑(62)씨, 새마을지도자 장주익(58)씨가 봉사하고 있다.

# 고추·오이재배로 부촌 이뤄
보은에서 과거 담배농사를 안 지었던 마을이 있을까. 묘서2리도 한 때 동네 대부분의 농가에서 담배농사를 지었다.

몫 돈을 만지는데 최고였고 판로걱정이 없고, 2기작이 가능하니까 조금이라도 땅을 놀리지 않으려는 농민들이 머리를 쓴다고 해서 지은 것이다.

집집마다 거의 담배농사를 지은 집단 재배지여서 집단 건조장까지 이 마을에 있다.

이곳은 수한면 묘서1·2리와 소계, 거현1·2리의 담배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묘서2리 집단 건조장에서 담배를 말려갔다.

많이 하는 집은 15단, 20단까지도 경작했는데 고령화되자 3, 4년전 노동력이 많이 소요되는 담배농사를 한 농가만 빼고 모두 폐업하고 대신 담배를 심던 밭에 고추와 오이를 본격 식재했다.

보통 담배 두둑에 콩이나 들깨를 심던 것과는 달리 이 마을에서는 담배 대를 지주 삼아 오이넝쿨을 올렸을 정도다. 오이경작 경력이 많은 농가는 20년이 다된 농가도 있을 정도다.

하우스 재배도 했지만 비가림 효과 정도에 그치고 오히려 고온장애 등을 겪어 노지재배로 전환했다.

그만큼 오이에 대한 정보 및 기술력이 뛰어나 고품질의 오이를 재배하고 있다.
고추 또한 마찬가지다. 담배를 폐작한 후 한 집에서 1천평, 2천평씩 심을 정도로 대규모이다.

이곳에서 생산된 오이와 고추 등 농산물은 품질도 우수해 고가에 판매된다.

오이를 수확하는 6월 말 경되면 거의 매일 농협 차량이 마을을 순회하며 오이를 수집해 청주 공판장이나 대전 오정동 시장에 출하한다.

현재 묘서2리 재배작물 및 규모는 벼 5만평, 고추 2만5천평, 노지 오이 1만평, 담배 8천평, 콩 등 기타작물 1천평에다 한우 140두, 돼지 700두 정도를 사육하고 있다.

농사를 많이 짓고 덜 짓는 것을 떠나 이들 주요작물을 재배해 얻는 소득을 가구수로 이를 나누면 농가당 평균 3천만원 소득이 된다.

고소득작물 일부를 제외하고 보통 농가에서 짓는 농작물로 가구당 평균 3천만원 소득을 올리는 곳이 얼마나 될까.

값이 좋은 한우 등 가축 사육농가나 사과 등 과수재배농가 등 일부 작목을 제외하면 높은 소득을 올리기 어려운 것이 농촌의 현실에서 묘서2리의 농업소득은 높은 셈이다.
현재 수한면에서도 상위 몇째 안가는 부촌으로 손꼽힌다고 한다.

# ‘어영부영’ 지내는 이 없다
화학비료가 나오지 않았을 때 당심을 높이고 농작물에 영양을 주기 위해선 퇴비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화학비료가 나온 후 농민들은 퇴비 대신 손쉽게 여러 가지 성분이 복합돼 부족한 영양분을 보충해줄 수 있는 화학비료에 의존했다.

그래서 땅이 산성으로 변해 농작물이 병약하고 소출도 적어지자 농민들은 화학비료를 더 많이 쓰게 되고 땅은 더욱 황폐화 되는 악순환을 겪었다.

묘서2리는 화학비료 대신 퇴비 사용량이 매우 높은 마을 중의 하나다. 인근 양계농장에서 농사용 트럭으로 50차를 가지고 오고, 고추 1천평에 경운기로 32번 거름을 실어 나를 정도로 퇴비 사용량이 많다.

당연히 농작물이 실할 수밖에 없고 묘서2리 농산물에 대한 소비자들에게 반응이 좋을 수밖에 없고 이는 농민들에게 수입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어느 한 농가만의 일이 아니다. 마을 전체가 영농에 기울이는 정성은 대단하다.
겨울철 농한기마다 농업기술센터가 주관으로 해서 열고 있는 영농교육에는 주민들이 바지지 않고 참석한다. 여기에는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

이문섭 이장은 “농한기라고 해서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지 않고 하나라도 더 배워서 농업소득을 높이려는 주민들의 열의가 대단하다”고 말했다.

# 지지리 못살았었는데
지금 농가당 3천만원이니 4천원만원의 소득을 올리는 부자마을로 발전한 묘서2리는 한때 남의 땅 부치며 겨우 입에 풀칠하면서 살았던 마을이다.

동네 땅은 거의 대부분 삼승면 최씨 땅이었다. 소작으로 받은 대가로는 도저히 살수 없었던 주민들은 주민 공동으로 고지(논 한 마지기에 값을 정해 모내기로부터 김매기까지 일해주리고 하고 미리 받는 삯, 또는 그 일) 일에 나서 돈을 모았다.

새벽 3, 4시면 집집마다 내외 모두 공동으로 고지에 나서 삼승면 선곡리·송죽리 일대와 안내면 동대, 서대, 정방까지 가서 품을 팔아야 하는 형편이었다.

10원이라도 벌어야 사는 사람들인데 하루라도 빠지면 막막했던 때였다. 그렇게 남의 집 품을 팔아야만 먹고 살았을 정도로 지지리도 못살았던 동네다.

새벽 별보고 일을 하기를 몇 십년 하다보니 집집마다 차츰차츰 주머니에 돈이 쌓이고 그 돈으로 선곡사람 땅이었던 동네 땅을 야금야금 사들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거현리 앞들도 상당부분 사들여 땅부자들이 된 것이다. 그래서 옛날 남의 땅을 부쳐야만 입에 풀칠을 했던 주민들은 이제 남의 동네 사람을 사서 부리는 사장님들이 된 것이다. 불과 15년전에 묘서2리 세상은 이렇게 확바뀌었다.

15년전과 이렇게 달라진 세상에서 살 수 있었던 것은 주민들이 모두 근면하게 일하고 저축하며 아껴서 생활했기 때문이다.

옆집에서 어떤 작물로 농사를 지어 소득을 많이 올리면 그보다 더 노력해 소득을 따라잡으려고 할 정도로 서로 시새워 한다. 경쟁적으로 노력한 것이 지금의 부촌이 된 이유다.

# 도시아파트와 결연 희망
주민들에게 숙원사업이라고 하면 도시지역의 아파트 단지와 결연을 해서 고추나 오이 등 묘서2리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직거래 하는 것이다.

고추도 세척해서 건조할 정도로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게 농산물을 생산하고 있지만 직거래가 이뤄지지 않아 지금은 대부분 중간상인에게 도매가로 넘겨 실제 농가에게 돌아오는 돈이 적다고 한다.

오이도 마찬가지여서 도시지역 아파트단지와 결연이 이뤄지면 소비자는 보다 싼 가격이 구입할 수 있고 농가는 중간상인에게 판매하는 것보다 조금 더 높은 가격에 판매할 수 있기 때문에 직거래 할 수 있는 곳과 결연하는 것을 최대 숙원으로 꼽았다.

또 하나 마을에 농기계 보관창고를 짓는 것이다. 현재 마을 앞에 트랙터 한 두 대도 아니고 여러 대가 놓여있어 마을 경관마저 지저분하게 만들고 있다. 비바람, 눈 등을 그대로 맞게 돼 있어 기계 수명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였다.

이웃에 무슨 일이 생기면 모두가 내일같이 나서서 도와주는 마을. 근면 성실하게 일해 모두가 부자가 된 마을. 안영구 면장과 최재을 충남대 교수, 육상 국가대표인 장준수씨를 배출한 마을이다.

이문섭 이장 표현대로 누구 하나 게으름 피우지 않고, 누구 하나 어영부영 지내는 이가 없다고 할 정도로 열심히 일하는 마을, 마을 입구의 하얀 줄의 오이밭과 고추밭을 보며 하늘에서 복을 내린 마을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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