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다른 단합의지로 마을 살림 알차게 꾸려
옛날에 표장자가 독을 구워 팔던 곳이라는 독점 마을은 마을의 생긴 모양이 독처럼 생겼다고도 한다.대궐터와 독점 두 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진 장재리지만 주민들은 세조가 대궐터에 행궁을 짓고 행궁 앞산 바위에 북을 달아 아침, 저녁으로 북을 쳐 백성들에게 시간을 알려주도록 한 북바위가 있는 동네를 북바위 동네라 부르고 있다.
그래서 장재리는 대궐터와 북바위 동네, 독점 3개 반으로 운영된다.
인조때 추계추씨가 들어와 터를 잡았고 숙종 때 경주김씨가, 경종 때 진주강씨가, 철종 때 밀양박씨가 차례로 옮겨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고 그 후 다른 성씨들도 한, 두집 살게되었는데 현재 김씨와 강씨가 전체 주민의 4분의3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 보은의 명소 속리산 말티재 휴양림
1997년 착공해 2002년 개장한 속리산 말티재 휴양림은 장재리 산 5-1번지 일대 전체 374㏊에 조성됐다.
이곳은 속리산의 관문인 말티재 고개가 시작되는 곳에 위치해 있어 속리산과 연계관광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장재리 일대 국유림의 자연환경이 인공림과 천연림이 조화를 이루고 장재저수지까지 인접해 경관이 매우 수려하다.
장재저수지를 지나면서 우측으로 세조대왕이 말을 탄 모습의 화강암 조형물이 이용객을 반기며 가을과 겨울엔 더욱 운치가 있다고 한다.
2003년 추가 건설한 방갈로 3동을 포함해 숲 속의 집 16동 외에 야영장, 물 놀이장, 단체 이용자들을 위한 취사장 등을 갖추고 있다.
또 자연 학습을 할 수 있도록 숲 속 교실과 머루, 다래, 더덕, 도라지 등 토속 식용 식물과 오가피, 산초, 오미자 등 약용 식물 관찰원을 조성하여 이용객이 직접 볼 수 있게 했으며 말티재 정상과 연결되도록 약 6㎞ 정도의 등산로도 개설되어 있다.
특히 숲 속의 집 이름은 속리산 봉우리 이름과 야생화, 내부 마감재 등을 응용해서 이름을 지었는데 문장대실에서부터 천황봉, 신선대, 구병산실 등이 있으며 금낭화, 설앵초같은 야생화 방과 내부 마감재로 지은 잣나무 방, 낙엽송 방이 있다. 정이품송과 정부인송 방은 황토방으로 인기가 최고다.
각 방마다 방 이름에 해당하는 사진을 걸어 이용자들에게 문장대며, 정이품송 등을 설명, 지역을 효과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여름 성수 철에는 몇 달 전에 예약을 해야만 이용이 가능할 정도이고 이용자들도 인근 대전 충청권뿐만 아니라 서울, 부산 등 전국에서 찾을 만큼 보은의 명소로 자리잡았다.
잣나무, 소나무, 낙엽송 등이 빼곡하게 들어차 삼림욕장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말티재 휴양림은 2005년 6월 한국관광공사로부터 ‘이달의 가볼만한 곳’으로 선정됐을 정도로 보은군의 휴양지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 말티고개 명소 탄생 기대
보은읍 누청리의 속리 터널과 외속리면 서원리의 갈목 터널이 개통돼 속리산을 관통하는 손쉬운 길이 열리면서 말티고개는 도로의 기능이 크게 퇴화되었다.
이에 따라 총 2.9㎞에 이르는 말티고개 구간을 관광명소로 가꾸기 위한 사업이 2003년부터 추진되어 왔다.
보은군은 총 17억 7000만원을 투입해 국도 변에 영산홍을 비롯한 화목류를 식재하고 정자 등 쉼터와 주차장, 화장실을 설치하고 등산로를 내는 등 휴식을 취하면서 말티고개 주변 광경을 감상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말티고개를 명소화한다는 사업 명에는 그동안 진행한 사업내용만으로는 크게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군은 당초 계획과는 달리 시설물 설치에 제약이 따르는 등 어려움이 많아 축소해 준공했다.
관광객은 유치하지 못하고 시설 설치에 예산만 투입한 것은 아닌가 사람들이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것도 당연하다.
시설의 보완으로 말티고개 명소화 사업이 투자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장엄한 산세를 껴안고 있는 말티재는 순수한 자연의 정취를 한껏 만끽할 수 있는 곳으로 꼬불꼬불 12굽이나 되는 가파른 고갯길이 운전하기에 편한 길은 아니어도 속리산을 찾는 이들에게 색다른 멋으로 깊은 인상을 남겨준다.
말티고개가 보은군의 또 하나의 명소로 탄생되길 바라는 주민들의 기대는 아직도 선명하다.
많은 사람들이 말티고개 명소 탄생에 힘찬 박수를 보낼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 주민간 단합의지로 많은 기금 확보
매달 빼놓지 않고 반상회를 개최했을 당시에는 반원들이 모일 때마다 낸 회비와 공동작업을 실시해 모은 돈으로 반 공동기금을 조성했는데 3개 반이 적게는 300만원, 많게는 1600만원까지 기금을 마련할 정도였다.
이뿐 아니라 마을 공동 시설의 효율적인 운영으로 마을 재산을 묵혀두는 것이 아니라 잘 활용해 마을 기금을 확보해온 주민들의 단합의지는 대단했었다.
독점마을 50평씩 2동의 공동 축사와 90년 9월 건립된 직판장, 기타 공동 시설물을 임대하고 받은 돈으로 기금을 모아 마을 안길 포장, 노인정 건립 부지 확보, 농산물 직판장 건축 등 크고 작은 마을일에 사용해왔다.
이와 같은 마을 단합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구체적으로 마을 발전의 근간을 마련하는 데에는 79년부터 82년까지 마을이장직을 맡았던 박재호씨의 힘이 컸다고 한다.
79년 대궐터의 한옥 건축시 농협으로부터 많은 돈을 대출 받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부채를 공동으로 갚기 위해 가구당 5만원씩 거출한 것이 시발점이 되어 소규모 공사라도 주민들이 하나같이 참여해 벌어들인 작업비를 마을기금으로 포함시켰고 어떤 때는 가로수 은행잎을 따서 팔아 기금을 마련하는 등 마을 부채가 없도록 주민들이 합심해 결국 많은 액수의 부채를 갚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박재호 전 이장의 노고에 감사한 주민들은 83년 그의 공적비를 건립해 주기도 했다.
주민들이 애써 마련한 마을 기금은 4년 전 까지만 해도 몇 천 만원에 달할 정도였으나 2003년 대궐터와 장재리 두 곳에 경로당을 지으면서 자부담금으로 각각 1000만원씩 사용하는 등 목돈 지출로 예전에 비해 많이 줄었다고 한다.
장재리에는 이장답뿐만 아니라 반장답도 있어 이장답이 1200평, 반장답이 한 반에 400평씩 총 1200평이 있으며 현재 독점 마을 공동 축사 임대와, 대궐터 경로당의 구판장 임대 등으로 마을 기금을 조성해 나가고 있다.
마을 발전을 위하는 주민들의 단합의지는 대부분의 주민이 노년이 된 지금도 사그라지지 않고 장재리의 발전을 모색한다.
# 교통의 오지
대궐터 앞으로는 속리산으로 이어지는 국도 37호선이 지나가고, 독점 마을 앞으로는 구인∼장재간 도로가 신설돼 장재리는 도로 사정이 좋은 편이다.
하지만 마을에서 면소재지로 가는 버스가 학생들 등교용으로 아침에 딱 한 대 뿐이어서 면사무소나 농협에 볼일이 있어도 쉽게 나설 수가 없다.
차량이 없는 사람들은 구인리까지 걸어가 버스를 타야 하는데 그도 가까운 거리가 아니기에 여의치 않다.
그렇다 보니 남성우 이장이 대신 주민들의 발이 돼주고 있다.
세금을 내는 일부터 보건소에서 약타기, 사료 구입 등 소소한 심부름도 마다하지 않고 주민들의 일을 맡아 처리해 주는 남성우 이장 덕에 주민들은 불편을 면할 수 있어서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다.
다행히 속리산행 직행버스가 많이 운행돼 보은읍내나 시외로 가는 교통편은 좋았으나 속리터널이 개통된 누청∼신정간 도로로 군에서 추진 중인 37호선 국도 이전이 확정되면 그나마 이용하던 시외버스도 그쪽으로 노선이 바뀔 것이 예상돼 주민들은 교통문제가 더 악화될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국도가 이전되면 땅값도 하락할 것이기에 장재리 주민들의 얼굴에는 주름살만 늘어간다.
말티재를 이용하던 속리산 관광객들이 속리터널로 향하면서 대궐터의 식당 두 곳은 예전에 비해 손님이 현저히 줄어 장사가 잘 안 된다고 한다.
종업원으로 동네 사람을 고용해 식당 성업은 주민들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농경지도 많지 않고 마을에 소득 사업도 없어 아주머니들은 속리산, 보은 등지의 식당에서 일을 한다.
그래서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소득 사업이 마을에 유치되길 더 간절히 바라고 있다.
장재리 주민들은 직접 콩을 재배해 메주를 만들어 팔 수 있는 메주 공장 등 이런저런 궁리로 살길을 찾는다.
남성우 이장은 마을 주변에 국유림이 많은데 산 뒤편으로 가면 평지가 넓다고 한다. 하다하다 안되면 주민들의 동의를 구해 그곳에 화장터라도 만들어달라고 할 생각이란다. 화장터 내의 매점 운영 등으로 충분한 소득을 올릴 수 있다며 오죽하면 남들이 다 기피하는 화장터를 유치하겠다는 말까지 하겠냐며 답답한 속내를 내비쳤다.
관계기관의 사업비 지원이 특정 마을로만 치중돼 각종 사업으로부터 소외된 마을을 위해서도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절실한 마음이 담겨진 말이었다.
갈수록 낙후되는 농촌.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의 마음까지 시들어 버린 것은 아니다.
모두가 잘 살길 원하고, 어려움을 극복할 길을 찾고자 한다.
마을 발전을 도모하려는 장재리 주민들의 의지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주민들이 바라는 일들이 그저 그림의 떡이 돼서는 안될 것이다.
김춘미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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