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 말티재 길목에 자리한 살기좋은 마을
속리산을 가기 위해 말티재를 넘기 전 마음이 조금씩 설레기 시작하는 곳에 오창리가 있다.마을에서 조금만 더 가면 말티재를 넘어 속리산에 닿게 된다.
보은에서 속리산 방향으로 가다 말티 휴게소를 지나 장재리 한옥마을 아래에 위치한 곳이 오창1리이다. 오창리는 장재리 한옥마을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어 한옥마을 앞으로는 오창2리가 자리한다. 오창1리와 2리는 적지 않은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다.
이곳은 본래 보은군 속리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오심리, 사창리, 오룡리 등을 병합하여 오심리의 悟와 사창리의 倉을 따서 '오창리'라 하고 1947년 속리면이 외속리면과 내속리면으로 분면 되면서 외속리면에 편입되었다. 사창리는 현재 장자불이라 불리는 오창2리 마을로 대궐터(장재리 한옥마을)에 살던 사람들이 이용하던 창고가 있어 사창리라 불리었다고 한다.
오창리는 오심불(오심이)이라는 오창1리와 3개의 자연마을인 장자불, 암소바우, 목장으로 이루어진 오창2리로 나뉘어져 있다.
백두대간의 영봉 속리산 천황봉의 줄기인 한남금북정맥의 오봉산 풍에 자리한 오창1리는 1464년 세조대왕이 속리산으로 향하다 계유정난의 일들을 되씹으며 수림이재를 넘어 앞에 우뚝 솟아오른 웅장수려한 오봉의 기상을 보고 문득 깨달은 바가 있어 오심(悟心)이라 부른 것이 오심불이라는 마을 이름을 얻게 된 것이라고 한다.
오봉산은 오심불에 있는 봉우리가 5개인 산으로 그 줄기가 구인(오창2리 인근 마을)까지 길게 이어져 있었으나 오창1리 앞으로 산을 깎아 말티재로 향하는 도로를 개설했다.
오창2리에서 으뜸되는 마을인 장자불은 옛날 독점(장자불 앞 장재리에 속한 마을)에서 표씨가 옹기를 구워 생활할 때 표씨의 큰아들이 살았던 곳이라고 한다.
목장은 장자불에서 구인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1957년 정부지원으로 목장을 만들어 축산업을 하는 농가가 10가구 있었으며 그 후 목장으로 불리게 되었다. 현재는 축산 농가가 1가구, 사슴 사육 농가가 1가구 있으며 김동헌씨가 운영하는 묘목농장이 있다.
6가구 정도가 마을을 이루고 있는 암소바우는 오창2리에 속해 있지만 보은읍 길상리 앞 국도변에 위치해 있어 장자불과 목장과는 왕래가 쉽지 않다. 예전에 마을에 있던 큰 바위위에 암소 발자국과 같은 자국이 있었는데 도로 개설로 바위는 없어졌다고 한다.
오창1리는 30가구가 오창2리는 40여 가구가 생활하고 있다.
오창1리 마을봉사자로는 최종헌(59)이장과 전만쇠(75) 노인회장, 정민재(39) 새마을지도자, 정명순(39) 부녀회장이 있다.
오창2리 마을봉사자로는 이상록(72)이장과 박창하(72) 노인회장, 이종만(32) 새마을 지도자, 김길숙(42) 부녀회장이 있다.
# 인심 좋고 살기 좋아 사람들이 찾아드는 오심이
오심이에는 빈집이 없다. 집을 내놓기라도 하면 금세 매매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집을 매입하는 사람들은 주로 외지 사람들로 오심이의 마을 경치에 반해 주저 없이 집을 매입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오심이로 이사와 생활하는 가구가 몇 가구 되며 이들은 주민들과도 잘 어울려 한 마을 주민으로 정을 돈독히 쌓아 가며 살아가고 있다.
오심이는 젊은 사람들이 몇 안 되지만 주민들이 입을 모아 칭찬할 정도로 부모님을 잘 모시고 예의 또한 바르다고 한다. 고향에 부모님을 둔 출향인과 마을 주민들이 모여 만든 고향계 회원들은 마을 어른들에게 관광을 시켜주는 등 장차 오심이 마을을 이끌어나갈 인물들로 주민들의 기대도 크다.
마을은 말티재를 오르는 길목에 위치해 있어 주민들의 생활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 주민들은 속리산을 찾는 관광객을 상대로 농산물을 팔아왔다. 마을 앞 도로변에 호박, 건고추, 검정콩, 메주콩 등 직접 생산한 농산물을 놓고 팔면 지나는 사람들이 잠시 차를 세워놓고 물건을 사갔던 것이다. 물건을 구매한 사람들은 농산물이 직접 재배한 거라 맛과 품질이 좋다며 주민들로부터 우리 농산물을 살 수 있는 것에 대해 좋은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주민들이 특별한 소득작물을 경작하지는 않으나 양순애(78) 할머니의 경우 1천여 평의 고사리 밭을 경작하고 있다. 양 할머니는 연세에 비해 건강하고, 보은읍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아들이 시간을 내어 밭일을 자주 거들고 하는 관계로 큰 무리 없이 고사리 농사를 지어 왔다.
마을 앞 도로변에는 오심이 마을 주민이 직접 운영하는 '운봉서각공방'이 있어 마당에 장식된 장승이나 항아리 등이 지나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 야트막한 뒷산을 닮아 순박한 장자불 사람들
장자불 앞 넓은 들은 원래 밭이었으나 1957년 장재 저수지를 축조하여 논으로 개답한 것이라고 한다. 그로 인해 주민들의 생활 형편이 나아졌으며 마을에 농경지가 많아 인근 마을 주민들이 오창2리의 토지를 경작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마을이 야트막한 야산을 뒤로 아늑하고 포근하게 둘러싸여 주민들도 훈훈한 정을 나누며 순박하게 살아가고 있다.
마을 앞으로는 4년 전 구인 장재간 도로가 개설되어 주민들의 불편을 조금 덜어주게 되었다. 이 도로가 개설되기 전에는 주민들이 이용하는 마을 앞길로 통행하는 차량들이 많아 사고 위험 등 여러 가지 애로 사항이 있었다는 것이다. 속리산, 상주, 보은 등을 가는 차량들이 오창2리 앞으로 통과하게 되면 국도를 이용하는 것보다 시간을 단축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마을 탐방 취재를 하면서 작고한 주민 중 연고가 없는 이들의 제사를 지내주는 몇몇 마을을 보게 되었다. 오창2리에서도 한 할머니의 제사를 지내주는데 워낙 오래 전부터 내려오던 일이라 존함을 알 수 없어 주민들 사이에서 길동할머니라 칭한다고 한다. 마을에서는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남은 돈으로 450평 되는 땅을 매입했으며 마을 기금을 조성하는데 활용하고 있다. 지금은 마을 주민인 장유식(71)옹이 이 땅을 경작하며 해마다 할머니의 묘를 벌초하고 제사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이런 일들을 접하다 보니 서로 관심을 갖고 돌봐주는 이웃이 있다는 게 얼마나 든든한 재산인가 느낄 수 있었다.
# 주민들의 숙원
오창2리 주민들에게는 한 가지 큰 걱정이 있다.
목장 마을에 위치한 퇴비 공장에서 나는 악취가 주민들의 생활에 적지 않은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이는 오창2리 인근 마을로 퇴비 공장과 근접해 있는 구인리 주민들도 개선책을 호소할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다.
속리초등학교 장재분교가 폐교 후 매각된 뒤 그 건물에 퇴비공장이 들어선 지는 거의 20여 년에 가깝다고 한다. 한두 해도 아니고 여러 해 동안 불편을 감수하며 살아온 주민들이 수 차례 문제점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했다.
주민들의 말로는 전국 각 지역에서 운반해온 음식물쓰레기나 가축 폐기물 등이 퇴비공장으로 반입돼 그것을 퇴비로 만드는 과정에서 심한 악취가 풍기는데 그 피해를 주민들이 고스란히 떠 안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식품 공장으로 허가를 낸 건물이 퇴비공장으로 운영되며 문제를 낳고 있는데도 주민들의 요구는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며 주민들은 답답함을 드러냈다.
대책 마련이 시급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며 주민들이 문제 제기를 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행정기관이 됐든 업주가 됐든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이는 분명 있을 것이다. 그들이 두 손놓고 있을 때 피해를 보는 건 죄 없는 주민들이다.
오창2리 퇴비공장으로 인한 피해 문제는 오래 전부터 거론되어 왔다. 그런데도 어느 것 하나 나아진 것이 없다. 속끓이는 주민들이 나라면, 내 부모라면, 내 친척이라면 팔짱 끼고 구경만 하고 있진 않을 것이다.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길 기대하는 것이 어리석은 것이 아니길 바란다.
얼마 전 속리터널이 개통돼 보은∼속리산간 소요시간이 최대 10분 가량 단축되게 됐다.
또 겨울철 눈이 조금만 내려도 시외버스 등 대중교통이 말티재를 넘을 수 없어 교통불편을 겪었던 내속리면 주민들에게는 속리터널로 교통편 이용이 크게 편리해졌다.
속리터널 개통은 모두에게 희소식이 되진 않았다.
오창리 주민들은 그동안 속리산을 오고가는 시외버스를 자주 이용했으며 하루 몇 대밖에 안 다니는 시내버스보다 통행 차량수가 월등히 많아 시외버스는 주민들의 생활권에 큰 영향을 미쳐왔다.
주민들은 속리터널 개통으로 속리산행 시외버스 노선이 개편될 수도 있어 걱정을 안 할 수 가 없다고 한다. 오창1리 같은 경우 주민들이 마을 앞을 지나는 관광객을 상대로 농산물을 판매해 왔는데 그것도 어렵게 되었다. 최종헌 이장의 말에 따르면 많은 차량들이 속리터널을 이용해 마을 앞을 지나는 차량이 예전에 비해 줄었다는 것이다.
인심 좋고 살기 좋아 사람들이 찾아드는 오심이 사람들, 야트막한 뒷산을 닮아 순박한 장자불 사람들, 그들에게 오창리 마을이 언제까지나 살고 싶은 마을이 되었으면 한다.
김춘미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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