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보다는 미래가 기대되는 마을 탁주리
상태바
현재보다는 미래가 기대되는 마을 탁주리
  • 김춘미
  • 승인 2006.05.26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산외면 소재지에서 구티고개(또는 거북티고개)를 넘으면 바로 만나게 되는 마을이 탁주리이다. 속리산 법주사에 있는 큰 부처를 향해 노승이 절을 하는 형국을 하고 있다는 탁주봉은 탁주리를 대표하는 산이며 산외면에서도 3번째로 높다고 한다. 산 정상에 오르면 산외면이 한 눈에 들어오고 밤에는 보은 시내 불빛을 볼 수 있을 정도다.

마을 앞으로는 575번 지방도가 지나 청주 쪽에서 속리산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이 이용한다고 한다.

49호 121명의 주민들이 생활하는 탁주리는 고추 외에 특별한 작물 재배는 없었다. 그래도 탁주봉 아래 약간 경사진 곳에 넓게 펼쳐져 있는 마을 모습은 탁주리만의 특징 있는 모습으로 다가왔다.

예전에는 탑자리라고도 불렀으나 지금은 탁주리란 말을 더 많이 쓴다고 한다.

행정구역상 탁주리 구역인 구티고개에 있는 구티리 유래비를 구티재 또는 거북티 유래비로 바로 잡아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마을 봉사자로는 최부림(41) 이장과 현성수(77) 노인회장, 라기성(38) 새마을 지도자, 구연두(51) 부녀회장이 있다.

# 탁주리 한마음 축제
탁주리에는 ‘고향사랑회’가 있다. 외지에서 생활하는 20여 명과 마을주민 4명의 젊은이들로 구성된 이 모임은 3, 40대를 주축으로 한다.

마을에서는 해마다 동네 어른들을 대접하는 경로잔치를 열어왔다. 마을 자체적으로 하던 행사였던 것을 지금은 고향사랑회의 결성으로 그들이 맡아서 하고 있으며 올해 4회 째를 맞는다.

도시에서 생활하다가 귀향한 최부림 이장은 노인들만 있고 젊은이들이 없는 마을에 애사라도 생기면 함께 나서서 도와줄 사람이 없어 걱정이 앞섰다고 한다.  그러던 중 외지에 나가 있는 친구나 선,후배들에게 모임 결성을 제의했고 그들이 흔쾌히 받아들여 지금의 고향사랑회가 있게 된 것이다.

매년 6월 둘째 주 일요일날 개최하는 탁주리 한마음 축제! 이날이면 동네는 온통 축제 분위기다.

전날부터 함께 모여 마을 입구에 플래카드도 걸고 돼지도 잡고 음식도 장만하는 등 동네가 떠들썩하게 잔치준비를 한다. 다음날이면 동네 사람들, 고향사랑회 회원 내외, 아이들 모두가 음식도 나눠먹고 게임도 하고 노래도 부르며 즐거운 하루를 보낸다.

특히 탁주리 출신으로 레크리에이션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광용씨가 사회자로 참여해 이벤트도 진행하는 등 기존의 경로잔치 보다 좀더 특색 있고 즐거운 행사로 되어 주민들이 좋아하고 있다.

단순한 놀이를 넘어 오락을 통해 주민간 화합도 다지며 그간의 피로를 풀고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돼 웃고 즐기는 여흥 뒤에는 마음이 뿌듯해진다.

어른들을 위해 잔치를 마련하는 정성 깃든 손길과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젊은이들과 축제날을 기다리고 칭찬 삼아 고향사랑회 회원들을 자랑하는 어른들이 함께 하는 ‘탁주리 한마음 축제’는 그들 모두에게 진정한 축제이다.

고향사랑회는 천막, 상, 의자 등 행사에 필요한 물건들까지 직접 구입해 마을에 기증했다고 한다. 나이가 어리면 회원들간 서로 융합이 잘 되지 않을 것 같아 회칙에 30세 이상으로 정해놓았기 때문에 가입 자격이 주어지면 사람들이 새로 들어와 회원들이 늘고 있다.

이들뿐만 아니라 출향인들이 진급이나 학위 취득을 하면 마을에 찾아와 어른들을 대접하며 기쁨을 함께 나눈다고 한다.

# 회관 터가 좁아 불편
마을 행사장을 비롯해 다용도로 활용되고 있는 마을회관은 시골 어느 곳에서나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장소이다.

그러나 탁주리 마을회관은 너무 오래돼 건물도 낡고 방이나 주방이 너무 비좁아 주민들에게 많은 불편을 초래하고 있다.  회관을 새로 짓는다 해도 기존의 터가 안 그래도 좁은데 건물을 지금보다 크게 지면 회관 터가 더 좁아질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지금도 행사 때면 마을 회관 터가 좁아 이런저런 불편함을 겪고 있다. 그래서 최부림 이장은 터를 새로 구입해 회관도 좋게 짓는 등 마을 광장 사업을 함께 추진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쉽지만은 않은 듯 했다.

탁주리를 찾은 날 ‘설마 아니겠지’ 했는데 마을 회관이 맞단다. 회관 벽면에 걸린 화이트보드가 유독 눈에 띄었다. 군에서 주최하는 행사 일정을 알리는 글이 쓰여 있었다. 주민들은 이장의 방송이 있은 후 또는 오고가며 이번에는 뭐 새로운 소식이 없나하며 회관 앞에서 발길을 멈추고 알림판을 확인할 것이다.

그들이 늘 보고 찾는 곳인 마을회관이 어서 새로 지어져 주민들이 좀더 좋은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었으면 한다. 더 넓고 깨끗한 공간에서 탁주리 주민들의 특별한 날이 특별하게 만들어져 추억으로 남고, 일을 거드는 일손들도 편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게 되는 것이 모든 주민들의 바람일 것이다.

회관 앞에는 수령이 100년 이상은 될 법한 굵직한 오리나무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옛날에 그 주변에 오리나무 숲이 있었다고도 한다. 다른 마을에서는 보통 느티나무나 은행나무를 볼 수 있는 반면 탁주리에서는 흔치 않은 오리나무를 볼 수 있어서 색다른 느낌이었다.

먼 미래에 “이 오리나무가 무려 500년이나 된 겁니다” 하는 소리를 탁주리에 사는 주민들이 하게 되길 바라며 “이 오리나무가 앞으로 500년은 더 살 겁니다”라는 말을 남긴다.

# 현재보다는 미래가 기대되는 마을
탁주리 마을 입구에는 큰돌이 하나 세워져 있다. 그것이 무언가 하면 마을 표석이 될 돌이다. 세워져 있는 폼이 범상치 않아 뭔가 사연이 있나 싶어 최 이장에게 물어봤더니 인위적인 것보다는 자연스러운 것이 좋을 것 같아 마을 명을 새기려고 자연석을 구해다가 세워놓은 것이라고 했다. 아직 글자를 새겨 넣진 못했지만 기대가 된다. 무엇보다도 그런 생각에 신선함을 느꼈다.

도시 생활을 접고 농부의 길을 선택한 최 이장 부부. 젊은 그들이 농사를 짓고 고향을 지키고 어른들을 섬기며 사는 시골 생활에는 그들만의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었다.

최 이장은 시골로 내려온 걸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농사일이 힘들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그 일에 보람을 느끼고 파종한 씨앗이 돋아나는 것을 보면 신비하고 성취감을 느낀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꿈이 하나 있다. 마을에 예쁜 찻집을 지어 속리산을 오가는 사람들이 들러 따뜻한 차 한잔 마시고 갈 수 있는 곳으로 가꾸는 것이다.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사람들이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정겨운 장소로 만들고 싶은 맘이다.

시골이 살기가 좋다는 최 이장에게 혹시 고향사랑회 회원들에게 시골에 내려와 살라는 말을 해본 적이 있냐고 했더니 그런 말은 안 한다고 한다. 각자 나름대로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삶의 터전을 잡고 사는 것 아니겠냐며 도시에 사는 사람들도 그들만의 행복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쁘고는 각자가 판단하는 것이다. 내가 어찌 다른 사람의 삶을 평가할 수 있겠는가.

고령화와 인구 감소, 불안정한 농촌 경제 이것은 우리들의 한쪽 눈에 비친 농촌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다른 쪽 눈에는 무엇이 비칠까. 안타깝게도 그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시골이 좋아 농촌을 선택하고 그곳에서 꿈을 꾸고 미래를 설계하는 젊은이들이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들을 보려하지 않는 것 같다. 눈을 크게 뜨고 그들을 제대로 들여다보면 왜 정부가 농촌을 살리지 않으면 안 되는지 그 답이 나올 것이다.

취재를 마치고 오는 길에 버스에서 만난 탁주리 주민 김동섭(68)씨는 탁주리가 고향이 아니라고 했다. 서울에서 살다가 속병이 있어 아는 사람의 소개로 3년만 살고 갈려고 했는데 벌써 13년 째 살고 있다고 한다.

궁금하다.

탁주리의 마을회관은 어떻게 지어질까. 마을 입구에 있는 자연석에는 마을 이름 석 자가 언제쯤 새겨질까. 최부림 이장 부부의 꿈이 담긴 찻집에서는 어떤 차를 마실 수 있을까. 6월 11일 ‘탁주리 한마음 축제’를 한다는데 그 풍경은 얼마나 신이 날까 등등.

현재보다는 미래의 모습이 기대되는 마을 탁주리의 마을 탐방 취재를 이렇게 끝마쳤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