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하의 산외면사무소는 남쪽으로 바라보게 위치해있었고 면사무소 앞쪽 광장에 있는 감나무는 당시 면사무소 뒤쪽에 위치해 있었다고 한다. 당시 구티 장터를 지나 산외면사무소까지 양옆으로는 길게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조성됐었다.
5일장이 운영됐던 구티 장터는 보은 상인들이 물건을 보관하던 창고가 몇 개 있을 정도로 성업을 이뤘고 산외면 주민들은 물론 경북 용화 주민들도 모두 구티장을 이용했다.
교통불편으로 보은장을 이용하기 어려웠던 75년까지 번성했던 구티리는 지금 정육점 2곳, 다방 1곳, 중국집 1곳, 슈퍼마켓 2곳, 이발소 1곳, 명진전자, 양조장, 기타 식당 5곳이 상가의 전부이며 전체 53가구 130명의 주민이 살고있다.
구티리 이름의 유래는 교회 옆 산의 형세가 거북이가 산에서 마을을 향해 엉금엉금 걸어 내려오는 듯해 구티라 불렀다고 한다.
일부에서는 거북 구자(龜)가 쓰기가 힘든 한자이기에 아홉 구자(九)를 써 현재의 구티리(九峙里)라 했다고도 하는데 거북 구자가 아홉 구자로 한자어가 바뀐 것이 한일합방 후 일제에 의해 행정구역이 개편되던 1914년이므로 창지개명된 것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군내 바로잡아야할 지명 중의 하나인 것이다.
마을 주변의 산세가 좋고 또 골이 깊어 계곡수량이 풍부하고 깨끗해 계곡수를 식수로 이용할 정도로 구티리는 훼손되지 않은 농촌의 정감 어린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전재수(51) 이장과 유성태(77) 노인회장, 김영권(57) 새마을지도자, 이경숙(51) 부녀회장은 이웃 간의 정을 쌓아 주민들이 서로 화합하는 마을을 만드는데 역할을 다하고 있다.
# 이름은 없는 장수마을
장수촌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얻는 것일까. 100세 이상 노인이 얼마나 살고 있는가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연령으로는 100세 이상이면서 거동을 못해 자식이 대소변을 받아낸다고 하면 사실 장수한다고 하기보다는 겨우 목숨만 유지하는 정도일 것이다.
구티리 마을에는 100세 이상 된 노인은 없다. 그래서 나이 100세를 장수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분명 구티리는 장수촌이 아니다.
마을 주민 중 최고 연세는 97세에 불과하다. 그러나 96세, 97세 된 노인이 4명이나 되고 이들 모두 자신들이 대소변을 해결하는 것은 물론 동네 마실(충청도 방언)을 다닐 정도로 거동이 활발하다. 이는 연령으로만 100세가 아닐 뿐 당연히 장수마을인 것이다.
구티리 주민들이 이렇게 건강을 유지하는 것은 아마도 지형적인 특징이 좌우되는 듯 싶다. 산세가 험하지 않지만 수려하고 골이 깊어 계곡에서 흐르는 물 또한 좋다.
특히 식수로 이용하는 계곡수 원수는 보은읍 상수도의 정수한 물보다 더 깨끗할 정도로 1급수를 자랑하고 있다. 가뭄 대비로 2001년 암반관정을 파기도 했다.
이같은 산세를 닮아 사람들은 마음이 유하고 쉽게 흥분하지 않으며 매사 긍정적으로 생각하니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정신 건강이 신체건강으로 이어져 장수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한다.
또 하나 십장생 중의 하나인 거북이가 ‘구티리’ 마을 이름에 유래가 된 것도 장수에 작용한 것은 아닐까.
거북이는 보통 100년 넘게 사는 장수 동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민물에서 보이는 남생이는 보통 120∼130년을 산다. 코끼리 거북은 약 180년을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776년에 아프리카에서 프랑스 탐험가에 의해 잡힌 황소 거북은 1918년까지 사육 상태에서 152년을 살았고, 잡힐 당시에도 성체였던 것으로 미루어 약 200년을 산 것으로 추정한다.
거북이를 마을이름으로 갖고 있는 거북티 마을 주민들도 100세 이상 건강하게 장수할 것으로 미뤄 짐작된다.
# 단일마을 중 3,4거리 많아 사고위험 커
구티리는 아시가든 인근부터 구티고개까지이다. 마을 내 농경지는 19.6㏊에 불과할 정도로 경지규모가 적다.
논보다는 밭이 많아 과거 담배를 주작으로 했던 주민들은 이제는 과수원 및 인삼, 고추 등을 재배해 소득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경지규모가 적어 가구당 평균 소득이 높지 않다.
경지규모가 이같이 적은 것은 마을 주변으로 신설되는 도로부지로 농경지가 많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도로 신설로 인해 마을에는 많은 3거리 또는 4거리가 생겼는데 원래 구티리를 통과하는 주 도로는 우체국 앞 도로로 이 도로가 각각 길탕리로 가는 작은 구티고개와 탁주리로 통하는 큰 구티고개로 연결됐다.
그러다 농협과 면사무소 앞쪽으로 도로가 신설 개설됐고 또다시 외곽으로 선형이 조정됐다. 이에 따라 마을에 있는 큰 3거리 또는 4거리가 많이 생겼다. 아시가든 인근, 산외파출소 인근, 산외 연쇄점 인근, 산외정보센터 인근, 산외 인공수정소 인근 등이 3거리를 이루고 4거리도 문암리 입구, 산외면사무소 인근 등 그만큼 사고가 일어날 소지를 많이 안고 있는 지역이 됐다.
전재수 이장은 “단일 마을에 3거리 또는 4거리가 구티리 처럼 많은 곳도 없을 것”이라며 “ 마을에 사고위험이 그만큼 커졌기 때문에 사고위험을 방지하는 각종 시설물 설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70년대 없앴던 동제사 복원
옛날 한양으로 가는 중에 꼭 거쳐야 했던 구티리를 어느 날 풍수지리를 잘 보는 사람이 이곳을 지나게 됐다고 한다. 그런데 이 사람이 마을의 형세를 보니 마을에 풍파가 그치지 않을 산세라 동서남북에 4개의 동자 석을 세워 마을로 들어오는 악귀를 쫓았다고 한다.
2개가 현존하고 있는데 이중 하나는 행정구역상 문암리에 속해 있어서 문암리 주민들이 동자석을 위하고 있다.
마을의 악귀를 쫓는 동자석을 위하는 동제사를 한동안 지내지 않았다. 박정희 정권 때 새마을사업의 일환으로 각 마을에서 지내는 동제사를 없애고 산제당도 없앴고 서낭당도 없앴던 때 구티리도 조상 대대로 지냈던 동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을이 흉흉해졌다. 멀쩡했던 젊은 사람이 죽기 시작했다. 교통사고로 죽고 잠자다가 죽고….
동제사를 지내지 않아서 꼭 그런것이다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지만 마을 주민들은 불안해졌다. 다음 차례는 누구일까. 불안해진 주민들은 마을회의를 소집했고 다시 동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결정을 봤다.
그 때 현재 노인회장인 유승태씨의 어머니(96)가 쌀 한말을 희사해 그것으로 동제사를 올렸는데 유승태씨의 어머니는 매년 잊지 않고 동제사 때마다 쌀 한말을 갖다준다고 한다.
매년 정월 초사흘날 지내는 동제사는 마을의 가장 중대사이기도 하다. 나이도 보고 신수도 보고 손재가 없는 가장 생기복덕한 사람을 고양 주로 정한다. 그 고양 주는 구티리 마을 주민들의 건강과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한다.
산외 파출소 옆에 있는 동자석과 마을 안 느티나무에서 지낸다. 그리고 80년 수해 때 신성시 했던 돌탑과 버드나무가 떠내려가 주민들이 다시 수해복구를 하면서 식재한 농협 앞 느티나무에서도 지낸다.
이렇게 연초에 제를 지내야만 마을 주민들은 안심하고 그 해를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마
음의 위안을 삼고 마음의 평화를 찾는 것이다.
# 수해 두 번이나 겪어
구티리는 보은의 큰 수해였던 80년 수해와 98년 수해까지 두 번 모두 겪었다. 주민들이 식수로 사용하고 있는 작은 구티고개로 넘어가는 계곡과 큰 구티고개 주변의 물, 그리고 문암천 물이 구티리를 덮쳐 80년에는 마을이 거의 잠겼고 주민들이 모두 마을 뒷산으로 피신했는데 주민 중 한 명이 사망하는 등 수해에 대한 악몽이 남아있다.
그래서 마을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 느티나무를 더욱 위하고 있다. 이유인 즉은 80년 수해 때 산으로 피신하지 못한 주민 20여명이 느티나무로 올라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6·25 사변이 일어나기 3년 전부터 우는 등 마을의 흉한 기운을 미리 알고 긴 울음을 토해내 주민들에게 재앙을 예측하게 한다는 것.
그런가하면 직경 50㎝가 넘고 성인의 한 아름 되는 나뭇가지가 부러져 위치 상으로 보면 분명히 식당 지붕으로 떨어져야 하는데 다행히 식당 지붕을 비켜 바닥으로 떨어져 인명사고를 예방했을 정도로 느티나무가 영험하며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고 주민들은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보은군 보호수로도 지정돼 있는 느티나무는 두 그루로 보이지만 나뭇가지가 벌어진 위까지 복토를 해서 두 그루로 보일 뿐이고 그동안 보은군에서 외과수술을 한 턱에 수세를 회복했는데 한 쪽 가지는 속이 훤할 정도로 비어서 이 또한 외과 수술이 필요하다고 전재수 이장은 말했다.
# 주민 화합의 장인 소공원 조성
주민들이 마음으로도 든든하게 여기고 있는 느티나무 앞쪽에 주민들의 화합의 장인 소공원이 조성됐다.
여름에는 오수도 즐기고 담소도 나눌 수 있도록 정자도 설치하는 등 소공원으로 조성하면서 느티나무 주변이 주민들의 쉼터로 정비가 된 것이다.
이곳에 소공원이 들어설 수 있었던 것은 산외면장을 지낸 김재환씨의 아들 김성기(성남 거주)씨가 부지를 희사해 가능하게 됐다. 올해 1월4일 준공했는데 주민들은 소공원 부지를 희사한 김성기씨가 아닌 김재환씨의 송덕비를 세웠다.
김재환씨는 산외면사무소 부지를 희사한 것을 비롯해 산외 중앙교회 부지, 구티리 주민들의 식수로 이용하는 상수도 급수탱크를 설치할 부지를 희사하는 등 마을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로 주민들의 칭송을 얻고 있다.
이렇게 땅을 선뜻 희사하는 것도 마을을 위하는 일이요, 동제사를 지내는 것도 마을을 위하는 일이다. 비록 마을은 작지만 서로 화합하고 서로 위하는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장수촌 구티리의 앞날에 희망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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