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한면 발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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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한면 발산리
  • 김춘미
  • 승인 2006.0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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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기가 넘치는 주민성이 마을의 자랑
한 장의 사진이 있다. 여러분은 그것이 어떤 사진이길 바라십니까? 지난 호(769호)부터 오는 5월 치러지는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후보자들에 관한 자료가 보도되고 있다. 내가 아닌 군민을 위해 내 가족이 아닌 보은군을 위해 궂은 일 도맡아하는 심부름꾼이 되겠다며, 내 호주머니를 채우기 위함이 아니라 낙후되고 못 사는 고향을 살리고자 출마한다는 후보자들. 이들은 그 한 장의 사진에 희망이 가득 찬 함박웃음을 짓는 보은군민의 모습이 담겨있길 소원하리라 믿는다.

가족이나 친구 등 사랑하고 아끼는 이를 떠나보낸 사람들은 그 한 장의 사진이 그리움을 달래주는 떠나간 이의 생전 모습이길 바랄 것이다.

고향을 떠나 객지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그 한 장의 사진이 힘들고 외로울 때마다 들여다보며 부모를 떠올리고, 벗을 떠올리고, 돌아가고픈 유년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고향 사진이길 바랄지도 모른다.

발산리 마을 회관 현관에는 한 장의 사진이 걸려 있다. 언뜻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시골 마을 전경인가보다 하겠지만 “이것이 노승봉, 저것이 목탁봉, 또 이것이 염주봉, 그래서 산의 생김이 노승이 염주를 목에 걸고 목탁을 두드리는 형상이지”라고 설명하는 수한면 부면장을 지낸 이원춘씨의 말을 듣고 난 후 그 사진이 갖는 깊은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직접 산에 올라 사진을 찍어 발산리에 기증했다는 인근 마을 주민이 무슨 연유로 카메라 셔터를 눌렀는지는 모르나 값진 일을 한 것만은 분명하다. 발산리 후손들과 마을을 찾는 방문객에게 마을사진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 기억으로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회관 안에는 출향인 이창호씨가 기증한 노래방 기기와 냉장고, 이기호씨가 기증한 소파 등이 주민들에게 요긴하게 쓰이고 있었으며 출향인들의 애향심에 주민들이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다. 그밖에 벽에 걸린 기증 받은 서(書), 화(畵)들은 내 집 안방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여자 방에는 건강 기구가 마련돼 있어 일년 내내 주민들이 꾸준히 이용한다고 한다. 마침 발산리를 방문한 날은 오후에 면 보건소에서 직원이 나와 주민들에게 건강체조를 가르쳐주는 날이었다. 노래 테이프 준비와 방 청소 등 미리미리 신경 쓰는 모습을 보니 주민들의 호응도가 좋은 것 같았다.

발산리의 마을 역사는 현재 국도변에 위치한 우일주유소 자리로 경주 김씨가 맨 처음 터를 잡았다고 한다. 그 후 전주 이씨가 40호 정도 이주해 세를 누렸으나 지금은 안말에 11집만이 남아 있다.

107호 240명의 주민이 살아가는 발산리는 최오철 이장(48), 이원섭 노인회장(81), 최영준 새마을 지도자(45), 이상임 부녀회장(52)이 마을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수한면 발산리수한면 발산리35패기가 넘치는 주민성이 마을의 자랑# 충효정신과 도의심을 되찾으려는 노력

발산리는 뒤에는 염주봉(산봉우리가 염주알처럼 봉울봉울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앞에는 노승봉, 좌우는 목탁봉 등으로 마을이 둘러 싸여있어 마치 노승이 염주를 목에 걸고 목탁을 두드리는 형국이라 하여 바리미 또는 발산리라 부르게 되었다.

전국적으로나 세계적으로 살펴보면 지형, 바위, 산 등 자연물의 생김새가 신기하게도 어떤 특별한 형상을 하고 있는 걸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개성을 지닌 것 중 많은 수가 관광자원으로 개발돼 사람들에게 좋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발산리의 ‘노승이 염주를 목에 걸고 목탁을 두드리는 산의 형상’은 기이할 정도로 그럴듯하게 닮았다. 어느날 문득 어떤 음식이 간절히 먹고 싶을 때같이 따분한 일상을 벗어나 기분 전환을 원한다면 발산리의 한적한 시골길을 걷다 산에 올라 노승봉과 목탁봉, 염주봉이 만들어내는 신기한 모습을 감상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자연마을인 물방거리(물방아거리)는 안말 동쪽에 있는 마을로 개울 건너에 있으며 전에 물레방아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사랭이는 옛날 사령이 있었다는 곳이며 그밖에 새로 생긴 마을인 새터와 새말 등이 있다.

“우리 마을은 예로부터 인심이 좋고 예의 바른 마을로 이름이 나 있으나 요즈음 忠孝정신과 道義心이 멀어져 가고 있어 이를 住民運動으로 되찾으려는 뜻에서 옛 조상들의 얼을 되새기고 오래 기리기 위해 이 비를 세우다”(발산리 마을비 건립취지문 중)

대가족이 핵가족화 되고 개인의 사생활과 개성이 우선 시 되는 현대사회에 忠孝와 道義心은 기억도 가물가물한 먼 시대의 이야기로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시대가 새롭게 변모해도 인간의 근본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세대간에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다소 어려울 뿐이지 효와 도의는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효의 실천은 가정의 화목을 가져오며 더 나아가 나라의 안녕을 지키는 것이다.

도의를 따르면 주변에 맑은 물이 고이고 월척을 낚는 행운의 기회가 저절로 찾아든다. 더불어 이 나라에 만연한 부패와 타락이 다시는 뿌리를 내리지 못하도록 단절하는데 강한 힘을 발휘한다.

이렇게 소중한 효와 도의를 주민운동으로 되찾겠다는 주민들의 마음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한복 대신 양장을 입고, 고무신 대신 구두를 신고, 밥 대신에 햄버거와 피자를 먹고, 주판 대신 컴퓨터를 두드려도 우리 곁에는 항상 부모와 어른, 친구와 이웃이 있다. 이들이 존재하는 한 우리들이 지키고 실천해야 할 ‘孝와 道義’의 가치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발산리 ‘주민운동’이 좋은 취지를 갖고는 있지만 그것을 더 멀리 더 넓게 퍼뜨릴 젊은이나 어린이가 많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한 마을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는 학생 수를 손으로 꼽을 정도니 걱정을 안 할 수가 없다. 그래도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학생이 3명이나 되며 수한초등학교 신입생 수는 10명을 넘는다고 한다.

마을의 아이들이 어른들의 가르침을 본받아 낙과(落果)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고 튼실하게 자라나길 바란다.

# 주민성이 돋보이는 마을
10여명 되는 70∼80세 발산리 노인들은 활기차고 건강하게 하루 하루를 살아간다. 이들은 거의 매일 수한면사무소에서 ‘게이트 볼’게임을 즐겨하는데 마을과 면사무소간 이동수단이 다름 아닌 자전거라는 것이다.

10명 중 한 명은 오토바이를, 또 다른 한 명은 오토바이와 자전거를 병행해서 타고 다닌다고 한다. 자전거는 노인들에게 중요한 교통수단이자 없어서는 안될 훌륭한 건강 지킴이다. 운동을 갈 때나 볼일이 있어 읍내에 나갈 때 등 항시 자전거를 이용한 덕에 추운 겨울에도 ‘게이트 볼’게임을 즐기는 에너지를 갖게 되었다.

타 마을에 비해 자전거 수가 월등히 많으며 이용자 수도 많은 걸 발산리 주민들은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읍내에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어른을 본다면 발산리 주민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 것 같다.

도로 위를 달릴 때면 위험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몇 십 년 운전 경력인데 이젠 선수가 다 됐지”하는 말에는 여유가 묻어나고 있었다. 군체육대회 경기 종목에 자전거타기가 있다면 발산리 주민들이 제일 좋아할지도 모른다.

안그래도 옛날부터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운동신경만큼은 결코 타 마을에 뒤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 또한 마을의 자랑이다. 10여 년 전만 해도 시골 초등학교에서는 마을 대항 체육대회를 했었다. 그 당시 해마다 1등 자리를 발산리가 차지할 정도로 아이들은 뛰어난 기량을 발휘했다. 현재 군에서 열리는 면 대항 체육대회에서는 수한면 대표선수로 발산리 주민들이 상당수 선발되며, 항상 3등 안에 드는 무시 못할 실력을 가지고 있다.

옛날 젊은이들이 마을별로 힘 겨루기를 해 우열을 가려 힘을 자랑하던 시절 발산리 젊은이들은 우위를 확보했다. 특별히 몸집이 크다거나 힘이 센 것도 아니다. 이들은 육체의 힘보다는 강인한 정신력으로 타 마을 젊은이들을 꼼짝 못하도록 제압한 것이다. 오래전에 있었던 일이지만 투지가 강한 발산리의 주민성을 보여주는 예로 아직도 어른들은 그때를 회상하며 자신들의 패기를 뿌듯해한다.

지금 80세 이상인 노인들이 젊은 시절 ‘마을 노래’까지 만들었을 정도로 패기가 넘치는 마을이다. 아쉽게도 현재까지 전해지지는 않고 있지만 주민들의 마을사랑을 짐작할 만하다.

# 마을에 있는 것 하나 하나가 큰 의미
98년 건립한 발산리 복지(마을) 회관은 겨울뿐만 아니라 여름에도 주민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농한기에만 운영하는 타 마을에 비하면 특이한 사항이다.

발산리에는 시골마을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정자나무(느티나무)가 없다. 회관 옆 느티나무는 원래 없던 것인데 20년 전 심은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무더운 여름철 그 나무 그늘보다는 회관 안이 더 시원해 주민들이 점심을 먹고 나면 회관에 모여 한낮의 더위를 피해 휴식을 취한다고 한다.

여자들은 여름에도 회관에 비치된 건강 기구를 이용해 몸 관리를 하는데 효과에 대해 꽤 만족해하고 있었다.

발산리는 유독 은행나무가 많으며 그 중에서도 새터 앞에 있는 은행나무는 10미터가 넘는 키에 두 아름의 굵기로 가을에 노란 은행잎이 만발하면 장관을 이룰 정도다. 주민들이 각별한 애정을 갖고 쉼터로 조성해 의미 있는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밭보다는 논이 많고 나이든 분들도 소일거리로 운동 삼아 논농사(1000∼1500평정도)와 밭농사 몇 백 평씩은 짓는다고 한다.

발산리 최고령자는 장수(長壽)의 나이 97세로 노인회장 이원섭씨 모친이다. 새터에 있는 아름드리 은행나무처럼 발산리 주민들의 세월에도 장수와 풍성함이 함께 해 아름다운 색깔로 물들여지길 바란다.

<새로쓰는 마을 이야기(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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