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의 미래를 일구는 부자 마을 상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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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의 미래를 일구는 부자 마을 상가리
  • 김춘미
  • 승인 2005.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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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승면 상가리


한 해를 마무리하고 다가오는 새해를 기다리는 연말이 되면 시골에서는 어느 곳 할 것 없이 주민들이 모여 마을 동회를 한다. 연말 결산도 보고 내년도 계획안도 세우는 등 한마음 한뜻으로 마을을 위해 협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7일 상가리를 찾았을 때는 마침 ‘과수 작목반’회원들이 김한호 작목반장 집에 모여 연말 모임을 갖고 있었다. 회의 도중 원예협동조합 관계자가 나와 과수 작업 지도와 판매 계획 등 농가에 도움이 되는 얘기들을 많이 해주었다.

상가리는 사과 재배 지역으로 유명하다. 그 역사가 한 40여 년 되며 그때 심었던 사과나무가 아직도 남아 있다.

보은읍에서 원남쪽으로 19번 국도를 따라 가다보면 좌측으로 길게 양지를 따라 늘어선 농가가 보인다. 그곳이 바로 93가구 230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상가리 마을이다.

“고려 말기부터 구능 양지 따라 민가가 정착하니 상가 중가 하가 곧 삼승이다. 한일 합병 후 하가(기와집골) 폐동되니 상가 중가를 상가리라 하였다.”(상가리 마을 자랑비 전문 중 일부)

상가리는 본래 보은군 삼승면 지역으로서 가습(可習: 달산2리)의 위쪽이 되므로 윗가습 또는 상가(上可)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중가리(中可里), 막은리(幕隱里) 일부를 병합하여 상가리라 했다.

이장직을 맡고 있는 김찬배씨(50)와 노인회장 이창은씨(74), 새마을 지도자 장상일씨(38), 부녀회장 이민숙씨(50)가 마을 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다.

# 주민 화합이 마을 발전 일궈

상가리 주민들은 1958년 청년층의 선도로 마을 발전을 위해 주민 전원 출자하여 협동조합을 설립, 정미소, 구판장, 이발소 등을 공동 운영했으며 1962년 사업 이익금으로 호당 개인부담 없이 숙원이었던 전기를 가설했다.

흑백 TV가 처음 나왔던 그 시절 “나는 상가리로 시집갈래요”라는 말이 아가씨들 사이에 돌고 TV에 나올 정도로 상가리는 부유한 마을이었다. 그 당시 면 소재지를 제외한 자연마을에는 전기가 들어오는 곳이 흔치 않았다.

상가리 주민들은 알뜰살뜰 마련한 동네 기금으로 전기를 끌어와 마을에 불을 밝혔다.  그것은 타 마을의 부러움을 사고 선진 마을로 도약하는 대단한 일이었다.

지난 74년부터 77년까지 전국 낙후 마을 새마을 지도자 현지 교육장으로 각광을 받았던 곳으로도 이름이 높다. 이러한 옛날의 영예가 아직도 주민들의 가슴에 자긍심으로 남아 있다.

78년 마을 기금으로 설립한 양곡 창고는 오늘날에도 마을 운영에 큰 몫을 차지한다. 창고와 1200평 가량의 논에서 나는 수익금으로 마을 기금을 적립, 살림에 필요한 경비를 조달한다.

30여 년 전 너 나 할 것 없이 주민 모두가 발벗고 나서서 부역을 하고, 그때 쏟은 땀방울의 결실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마을에 보탬이 되고 있다.

마을 입구에는 마을자랑비 옆에 박원진 송덕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이 비는 마을 사람들이 1930년 흉년에 어려운 이들을 구제한 고(故) 박원진공의 덕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것이다.

# 농촌의 미래가 현존하는 마을
상가리 주민들이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면 부농을 이루고자 하는 농부의 염원과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현명함을 엿볼 수 있다.

상가리는 74년과 75년 2회 연속 쌀 증산단지로 선정돼 전국 1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74년은 통일벼로 75년은 유신벼로 쌀 다수확을 올릴 정도로 주민들의 농업 기술은 발달돼 있었으며 그렇게 되기까지 그들은 끊임없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한때는 담배 농사를 하는 가구가 마을의 80%를 차지할 만큼 큰 규모였다. 이제는 아이들의 놀이터와 공원으로 새롭게 변모한 예전의 마을 공터에서 삼승면 일대의 담배 수납을 할 정도로 상가리 담배 수확량은 상당했다.

뿐만 아니라 상가리에는 과수 농가가 30호나 되며 ‘과수 작목반’을 조직 26명의 회원이 참여하고 있다. 회원 간 정보 교류와 1년에 한번씩 선진 과수 농가 견학을 가는 등 서로 단합된 모습을 보인다. 한창 때는 회원이 41명이나 될 정도로 사과 재배가 번창했었다.

김한호 반장은 “타 마을에 비해 우리 마을 과수 농가의 친환경 사업이 아직 미흡하다”며 “앞으로 그쪽으로 많은 연구와 지도를 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회원들 대부분이 친환경 농법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배우고자 하는 의욕도 강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라는 말이 있다. 산업이 발전하고 의학이 발달하면서 평균 수명이 현저하게 높아졌다. 오늘날 농촌 인구는 6, 70대 노령 인구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나마 50대는 청춘이다. 20∼40대 청년층은 가뭄에 콩 나듯 찾아보기가 힘들며 설령 있다 해도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상가리 과수작목반 회원들이 보여주는 열의는 개인 소득 창출을 위한 미시적 안목을 넘어 농촌의 희망을 일구는 거시적 안목으로 해석돼야 한다. 이미 농촌은 살기 좋은 곳이다. 그러나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지 않고서는 미래를 보장할 수가 없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아니 지금이 가장 빠를 때이다.

원예조합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서울이 과일 소비량의 70%를 차지한다고 한다. 그래서 타 브랜드를 누르고 우리 사과가 성공할 수 있는 길은 서울 시장에 인지도를 확립하는 것이라고 했다.

국력을 발휘하는데 인구수가 중요하듯 과일 시장도 품질에 앞서 재배 면적이 시장을 장악한다. 상가리를 포함한 보은 지역에서 생산되는 사과는 상품의 질이 우수함에도 불구하고 재배 면적에서 밀리는 취약점을 안고 있다.

낮과 밤의 온도차가 큰 보은은 과일이 잘 재배되는 최적의 자연 조건을 자랑한다. 이를 밑천 삼아 농민과 관계기관이 힘을 합쳐 노력한다면 우리의 것도 소비자에게 사랑 받고 널리 애용되는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 건강관리실 등 주민 위한 시설 마련
상가리는 예나 지금이나 마을 정비가 참 잘 돼 있는 마을이다.

마을 회관은 1층 경로당, 2층 건강 관리실로 훌륭한 외관을 자랑한다. 아래, 윗층을 합쳐 60평정도 되며 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특히 건강관리실은 최신식 기구들을 다양하게 비치해 주민들의 이용도가 높고 실질적인 효과도 거둬 이제는 마을에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곳이 되었다.

또 이곳에는 찜질방도 있다. 어쩌다 큰맘 먹고 읍내에나 나가야 갈 수 있고, 특별히 여가 생활을 즐길만한 여건도 안 되는 시골에 찜질방이 있으니 인기가 좋을 수밖에 없다.

찜질방은 1년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개방하며 한달이면 15일씩 남여가 격일제로 이용한다. 경비는 마을 기금 외에 1인당 한달에 5000원씩 걷는 돈으로 충당한다고 한다. 농한기에는 주민들 이용 빈도가 높아도 농번기인 여름에는 찜질을 할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어 잠시 휴관을 해도 되지만 마을 노인들을 위해 계속 개방하는 것이다. 여름에도 한 20명 정도는 꾸준히 찜질방을 이용하고 있다.

주민들은 2004년 마을에 소공원을 조성했다. 잔디도 깔고 휴식공간과 운동시설, 놀이터를 갖춘 공원은 아이에서 어른까지 새로운 생활 공간으로서 긍정적인 기능을 담당한다. 겨우 소공원 하나가 주민들의 생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중요한 건 농촌의 현실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농민은 변변한 문화적 혜택도 받지 못하는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다. 지역민을 위하는 양 거액을 들여 어쩌다 한번 하는 예술인 초청공연이 무슨 문화적인 괴리감을 해소할 수 있겠는가.

만약 그 공연에 참석한 사람이 적어 빈자리가 많았다고 치자. 진정한 지도자라면 지역민의 낮은 문화 수준에 부끄러워 고개를 못 들 것이 아니라 그러한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어떻게 하면 지역에서도 문화 혜택을 많이 누릴 수 있을까 고민하는 자세를 가져야 마땅하다. 지역민을 더욱더 소외시키는 어리석은 판단은 이제 그만 되어야 한다.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꿈을 키운다. 대통령, 과학자, 선생님, 가수, 의사, 사업가, 경찰 등등. 이 중에 혹 농부를 꿈꾸는 아이도 있을까? 생각해보니 씁쓸한 미소만 남는다.

내 자식은 나처럼 고생하지 말라고 허리가 휘는 줄도 모르고 열심히 일해 공부시키는 게 농부가 자식을 위하는 마음이다. 근데 부모의 고생을 물려받으려 한다면 아마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말릴지도 모른다.

우리는 간혹 매스컴을 통해 도시민들 중 공해에 찌들고 사람에 치여 한적한 시골 생활을 선택하는 경우가 늘고 있음을 접하게 된다. 맑은 공기와 아름다운 자연 경관이 필요한 사람들보다 땅을 일구는 것에서 보람을 얻고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 그래서 농업을 함부로 홀대하지 못하도록 영향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나는 커서 농부가 되고 싶어요. 그래서 넓은 과수원을 갖는 게 꿈이에요” 우리의 아이들이 이런 말을 하는 게 이상한 나라에서나 가능한 일이 아니길 빈다.

상가리는 사과 재배 지역으로 유명하다. 마을에서 처음으로 사과를 재배하기 시작한 것이 40여년전 이라고 한다. 그때 심었던 사과 나무가 여전히 건재한 모습으로 남아있다.상가리에는 과수농가가 30호나 되며 과수 작목반(반장 김한회)을 조직 26명의 회원이 참여하고 있다. 지난 27일 작목반 회원들이 김반장 집에 모여 한 해를 마무리하는 모임을 가졌다. 회원들은 그동안 작목반 운영에 미흡했던 부분들을 서로 지적하고 내년에는 우수한 품질의 사과를 생산하는데 더욱 힘쓰자고 뜻을 모았다.1층 경로당과 2층 건강관리실이 자리한 상가리 경로회관은 외관부터 주위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괜히 부자마을이란 말이 나온것이 아닌듯 건강관리실에는 운동기구며 찜질방 등 최신식 시설이 잘 갖추어져 주민들에게 편안하고 즐거운 쉼터로 날로 인기가 높아진다.1958년 주민들이 전원 출자하여 만든 이발소가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채 운영되고 있다. 읍내보다 싼 가격에 보은읍과 그 주변 지역에서 손님들이 찾아올 정도라고 한다. 그들은 대부분 오래전부터 단골이었으며 예전에는 손님이 얼마나 많았는지 짐작이 간다.박물관을 방불케할 정도로 사람의 손때와 세월의 흐름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이발소 내부의 모습이다. 초라하기 보다는 지난날의 추억이 떠올라 물건 하나하나 가슴으로 따뜻하게 전해진다.

<새로쓰는 마을이야기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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