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 東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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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 東學
  • 보은신문
  • 승인 2001.04.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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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창 규(내북면 법주리)「시인, 목사 5·18 민주화운동관련자, 민예총회원」
1894년 보은의 하늘은 맑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 조상들이 살고 죽고 뼈를 묻은 종곡리 북실의 진달래는 아름답게 피었다. 일본 교과서의 왜곡된 부분 때문에 정치권과 시민단체뿐만 아니라 온 나라가 시끄럽다. 그렇지만 2001년 4월 7일은 1984년 부터 2001년 오늘까지 우리가 잊고 살았던 報恩동학이 마침내 빛나는 전통으로 계승되게 되었다.

뜻 있는 지역인사들과 더불어 억울하게 수천 수만 명의 농민군들이 일본군과 관군에 학살되었던 원혼들의 한을 풀어주게 되었다. 4월 보은의 맑은 하늘에 形形色色의 깃발이 찬란하게 나부꼈다. 「보은 동학 농민혁명 계승사업회 창립대회」가 열렸다. 뜻 깊은 행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이화선생의 말처럼 보은 동학 농민혁명은 조선역사에 있어서 가장 빛나는 전통이다.

이 전통은 1919년 3.1만세운동으로 1960년 4.19 학생 의거로 1980년 5.18 민주화운동으로 계승되었고 그 항쟁의 불꽃이 1987년 6.10 시민항쟁으로 타올랐다. 이런 일도 보은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보은 동학 농민혁명」의 정신이 살아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報恩은 앞으로도 그렇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친일파는 살수 없는 도시이다. 보은 땅을 함부로 할 수 없는 정신적인 소중한 유산이 보은 동학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의 자산이고 조상이 물려준 자랑스러운 유산이다. 보은 사람은 어질고 착하다. 거짓이 없고 인정이 많다. 그래서 報恩은 앞으로 이렇게 될 것이다. 報恩은 독립 할 것이고 보은은 자립할 것이며 報恩은 잘 살 수 있는 도시가 된다는 것이다.

보은 가서 사는 것이 평생 소원이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보은을 찾는 사람들이 닷 새마다 서는 장터에서 흥겨운 노랠 부르게 되고 보은에서 나는 농산물, 특산물이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값싸고 질 좋은 상품으로 소문이 난다. 그래서 전국에서 보은 장날을 구경하러 온다.

수많은 장꾼들이 報恩가서 물건을 팔아야 장사가 잘된다고 하더라. 그런 말이 나와야 한다. 長安 마을에서 모였던 동학농민들이 먹고도 남았던 경제적 기적이 일어나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모두가 단결하여 친절하고 겸손한 읍민들이 되어야 한다. 전국 경향각지에서 보은 동학 농민혁명의 정신을 배우기 위해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보은을 알려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자랑할 것이 있어야 한다. 환경이 오염되지 않은 전국의 유일한 도시, 공해업소가 없고, 축산폐수가 정화처리 되어서 보은을 가로지르는 천에서 아이들이 목욕을 하며 물장구를 치고 물고기 떼가 살아나 돌아오는 곳, 정말 청정지역이 보은이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거리마다 집집마다 울안에 감이 주렁주렁 열리고 가로수에는 대추가 열려서 가을이면 그 밑에서 사진을 찍는 등 관광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해야한다. 동학 농민혁명기념공원을 아무리 잘 조성한다고 해서 볼 것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마을에 누가 찾아올까. 사갈 것이 없는 구태의연한 조잡한 관광상품, 바가지 상혼, 이런 것이 판을 친다면 누가 보은을 찾고 속리산을 찾을까.

그래서 그런지 요즘 충북의 관광지가 썰렁하다고 한다. 전국에서 진달래가 가장 아름답게 피는 종곡리, 아니면 가을에 코스모스가 전국에서 길가에 가장 많이 피는 곳 報恩, 개똥벌레, 반딧불을 잘 보존해서 살찌우는 무주라고 하는 읍도 있다.

그런데 보은은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가. 수만 명이 모였던 보은집회 장소가 있고 동학농민군 최후의 전투지 종곡리 마을이 있고, 보은을 지키려 했던 삼년산성이 있다. 그리고 아름다운 속리산과 법주사가 있다. 그곳에 가보고 싶다. 친일파나 어떤 악덕상인도 매국노도 발을 붙일 수 없는 땅, 報恩동학, 그것이 자랑이다.

<정이품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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