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원 진(보은읍 강산리/농업)
모진 겨울을 견디어내고 세상의 만물이 약동하는 4월이다. 부풀었던 꽃망울들이 튀밥 터지듯 펑펑 터지고, 살갗 튼 고목 나무에도 어김없이 연두색깔 잎이 돋듯이 부지깽이도 꽂아놓으면 물이 올라 싹이 틀 것만 같다. 이렇게 좋은 계절에 해마다 찾아오는 불청객이 바로 산불이다. 올해에도 벌써 전국에 300여건의 크고 작은 산불이 발생하여 354ha의 임야가 불에 탔다는 산림청의 집계다.어린 시절 봄이 오면 친구들과 함께 겁도 없이 한패는 잘 마른 논둑에 불을 지르고, 한패는 청솔 가지를 꺾어 들고 불을 끄는 놀이를 즐겼다. 불을 끄는 편이 항상 열세였는데, 불길을 내려치면 꺼지기는 커녕 불똥이 사방으로 튀면서 기름을 부은 듯 불길이 더 퍼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봄 불은 여우 불이라고도 했다. 그러다가 걷잡을 수 없이 논둑에 가까운 묏자리라도 몇 자락 태우고, 급기야 야산으로 불이 번지면 마을공터의 종대에 매달린 구리종이 자지러지게 울고, 갈퀴를 든 동네 어른들이 산으로 내달아 겨우 불길을 잡을 수 있었다.
우선 묏자리를 태운 것이 더 큰 일이어서 어른들은 짚여물을 썰어다가 불탄 묘지 위에 뿌리고, 정성껏 잔을 올려 사죄하는 절차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이는 산에 나무가 우거지지 않았던 시절의 추억 같은 이야기고 연료 문화의 발달과 식목 사업으로 시골의 야산까지 수목으로 잔뜩 우거진 지금은, 일단 불이 나면 대형 산불로 번지기 마련이므로 산불이 나기 전에 근본적으로 방지하는 도리 밖에 없다.
당국의 적극적인 통제에도 불구하고 계속 산불이 발생하는 것을 보면 필유곡절 원인이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무작정 단속만 할 것이 아니라, 예전에 쥐잡는 날을 정하여 일제히 쥐약을 놓았던 것처럼 일정을 정하여, 담당 공무원과 이장들의 책임 하에 최대한 안전을 확보한 후 일시에 소각을 실시하는 것이, 몰래 논둑을 태우다가 산불로 번지는 사고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등산객과 성묘객들의 부주의가 두 번째 산불의 원인이라 한다. 우리는 맑은 공기를 마시며 찌든 몸과 마음을 헹구어 내고 조상의 음덕을 기리기 위하여 산에 오른다. 그런데 산에 까지 올라와서 담배를 피워대고 꼭 무엇을 불에 굽고 끓여야 직성이 풀린다면, 21세기의 문화시민으로서 산에 오를 자격도 없는 것이다. 불탄 건물은 다시 지으면 되지만, 숲은 한번 사라지면 원상회복 까지 50년 이상이 걸린다고 한다.
단 한번의 실수로 인하여 그 아까운 수십 년의 세월을 한순간에 잿덩이로 만드는 역사의 죄인이 되지 않기 위하여 우리 모두가 다시 한번 명심해야겠다.
<정이품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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