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의 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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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의 여유
  • 보은신문
  • 승인 2001.0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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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승 표(회남교회 목사)
20세기가 지나고 21세기가 열렸습니다. 올해는 2001년으로 새 천년을 시작하는 첫 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새 천년을 꿈을 갖고 시작하자고 말합니다만 올해는 작년보다 더 어려운 한 해가 될 거라고 내다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고 우리는 그 걸 몸으로 느끼는 것 같습니다. 올해를 내다보면서 어떻게든 나만이라도 살아야겠다고 안간힘을 씁니다. 그들은 이웃을 적으로 보고, 남보다 더 빨리 달리려고 눈에 힘을 줍니다. 하지만 이렇게 한 해를 시작하다가는 그 끝이 좋을 리가 없겠죠? 마침내 너 나 할것없이 모두가 지고 마는 어처구니없는 결말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이 어려운 때를 헤쳐나가야 할까요? 일찍이 우리 조상님들은 ‘바쁠수록 돌아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사셨습니다. 어둡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해학’이 있었습니다. 오늘날은 공격적인 웃음인 ‘풍자’가 더 판을 치는 세상이요, 나아가 서로에게 아무 유익도 없는 비웃음이 많은 때이지만 이래서는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가 없을 것입니다. 세상이 어려울수록 풍자나 비웃음이 많은 때이지만 이래서는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가 없을 것입니다. 세상이 어려울 수록 풍자나 비웃음보다는 인생의 그윽한 눈길과 충분한 관찰에서 얻어진 삶의 지혜인 해학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피터 버거는 <현대사회의 신>이란 책에서 유머는 초월효과를 가진다고 했다는데요 거기서 말하는 유머는 아마도 해학을 말한다고 보여집니다. 왜냐하면 초월효과란 것이 우리가 그 유머를 듣는 순간 갑갑한 현실을 벗어나 기쁨과 자유를 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잡지를 읽다보니 재미난 옛날 이야기가 눈에 띄더군요. <태평한화골계전>에 나오는 이야기라는데 내용은 이렇습니다. 옛날에 김씨 성을 가진 선생이 담소를 잘했다고 한다. 김선생이 일찍이 친구 집을 방문했더니, 주인이 술상을 마련하였는데, 단지 채소만 곁들여 놓고는 먼저 사과하며 말했다. “집이 가난하고 시장도 멀어 여러 가지 좋은 음식이 전혀 없으니 오직 담박하기만 한 것을 부끄러워할 뿐일세.” 마침 뭇닭들이 뜰에 서 이리 저리 모이를 쪼고 있는데 김선생이 말하기를 “대장부는 천금을 아끼지 않으니, 마땅히 내 말을 잡아 술안주로 삼게나” 하였더니 주인이 “한 마리 뿐인 말을 잡으면, 어떤 물건을 타고 돌아갈텐가?”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김선생 왈 “닭을 빌려타고 돌아가면 되지 않겠나.” 하였다. 이에 주인이 크게 웃으며 닭을 잡아서 대접하였다고 한다.

이야기만 들어도 웃음이 절로나는 흐뭇한 이야기 아닙니까? 만약 김선생이 친구인 주인을 향해 “저 마당에 닭들은 닭이 아니라 무슨 푸성귀라도 된단 말인가?” 하고 말했다면 주인은 상처를 받았을 것이고 자칫 잘못했으면 친구관계도 어그러지고 말았을 겁니다. 세상이 어려울수록 잘못된 길로 쉽게 가자는 유혹이 많을 테고 거기에 빠지는 사람도 있겠지요. 그럴 때 거기에 대해 비판을 안 할 순 없겠지만 이 때 상처만 내고 관계가 깨지는 비판이 안되려면 김선생과 같은 해학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옛말에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는 말이 있지요. 아무리 현실이 어렵더라도 서로 함께 웃을 수 있는 여유를 찾을 수만 있다면 함께 사는 행복한 길이 열리리가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보은 지역이 더 살기 좋은 곳이 되려면 해야할 많은 일이 있을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 늘 잊지 않아야 할 것이 있다면 그건 웃음을 잃지 않는 거라고 봅니다. 세계의 삼대 생불가운데 한 사람으로 우러름을 한 몸에 받는 달라이 라마는 늘 웃음을 잃지 않고, 특히 사람들로부터 대답하기 어려운 빌문을 받을때면 크게 한바탕 웃음으로 굳어진 분위기를 바꿔 놓는다는 이야길 들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상황이 어렵다고 해서 웃음을 잃어버린다면 그를 어찌 부처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한 공동체가 건전한 공동체인가를 판단하는 기준 가운데 빼 놓을 수 없는 것도 ‘모임을 할 때마다 늘 웃고 있는가’라고 하더군요.

모든게 뜻대로만 다 잘 되기에 웃는 건 따로 노력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그러나 어려움 가운데서도 웃는 것은 깨어있지 않으면 어려울 겁니다. 천년을 시작하는 첫해인 2001년을 잘 살기 위해 좀더 차분하고 깊게 생각하며 남과 나를 함께 살리는 여유있는 웃음을 띠고 시작해보면 어떨까요.. 우리 조상들이 그랬듯이 말입니다.

<정이품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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