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처럼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인데, 우리가 소위 말하는 세상에서 잘나간다는 사람들의 추락(墜落)을 가끔씩 보면서 ‘아, 저 사람이 왜 그랬을까?’ 하는 의문(疑問)을 갖게 된다.
몇 해 전 어느 유명 아나운서(announcer)의 지하철 도촬로 온라인상에서 뜨거웠다. 남들이 다 고대하는 사회적 성공과 명망을 양손에 쥔 사람의 추락이라 더욱더 사회적 파장(波長)이 큰 듯하다.
인간의 내면에는 모두 그림자를 갖고 있으며 그림자는 자아, 곧 인간의 어두운 면을 말한다. 이 그림자는 자신의 일부이지만 스스로 거부하고 억압해 온 내면의 세계이고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존재하는 한 영원토록 싸워야 될 숙제일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다양한 배역으로 무대에 선 배우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은 교수, 어떤 사람은 공무원, 어떤 사람은 사업가, 어떤 사람은 의사, 어떤 사람은 노동자, 어떤 사람은 자영업자, 어떤 사람은 판사, 어떤 사람은 검사, 어떤 사람은 음악가, 어떤 사람은 변호사로서 우리는 모두 자신에게 주어진 가면을 철저히 쓰고, 그 가면(假面) 아래에 있는 그림자를 억압(抑壓)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다가 어떤 사건의 발단으로 우리가 쓰고 있던 가면이 벗겨지고 우리의 민낯이 철저하게 만천하(滿天下)에 드러날 때 우리는 자신이 쓰고 있는 가면은 잊고 다른 사람의 민낯을 향해 돌팔매질을 하고 아우성을 치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자신의 가면 뒤에 숨어 민낯이 드러난 그들을 향해 돌을 던지기 전에 먼저 내 속에 감추어 두었던 어두운 그림자인 민낯에 대해서는 왜 함구하고 있는지. 자신의 이중성에 대해서 먼저 자아성찰(自我省察)을 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나는 과연 진정한 나일까. 남들의 눈에 비춰진 나 말고 진정 자신이 바라보는 나 자신을 조용히 묵상(默想)해 보자.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나의 민낯은, 나의 그림자는 과연 저들보다 깨끗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살다 보면 인생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과 같다는 말이 실감난다. 나름대로 성공했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수많은 실패와 좌절이라는 시행착오(試行錯誤)를 거치면서 인내하고 도전하면서 난관을 극복하고 현재의 위치까지 왔음을 알 수 있다.
온갖 과일들이 풍부한 열대우림지역이 가장 가난한 이유는 도처에 널린 풍족함 때문인 것이다.
힘이 든다면 전진(前進)하고 있다는 뜻이고, 어렵다면 성공(成功)에 다가서고 있다는 징표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