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고나면 점점 땅거미가 짙어져 오는 들판을 걷기에 안성맞춤인 요즘이다.
세월에 올라탄 사계절과 24절기들은 한치 오차도 없이 왔다 가건만, 가을은 왜 이리 더디 오느냐고 투덜대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백로를 기점으로 한낮의 열풍도 차차로이 식어가며 고요히 가라앉는 밤이다. 순환의 굴레에 적응하고자 나름대로 씨름하며 여름을 무사히 보냈음에 감사할 시점이다. 청소년의 기상처럼 자라난 벼이삭들이 살랑살랑 선율로 반겨주고, 흰 두루미들의 환상적인 날갯짓도 눈길을 사로잡는 초저녁이다. 차량과 인적이 뜸해진 들판으로 화은사 저녁 종소리가 고즈ㅤㄴㅕㄲ이 울려 퍼지니,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나만의 힐링공간 힐링타임이 아닌가. 헝클어진 머리나 옷깃을 알아보는 사람도 없으니, 완전 자유여인이 되어 봉평 마을로 건너가는 다리를 향해 천리길을 내닫는다. 다리 난간에 걸터앉아 허허로운 마음으로 시 하나 읊조리는데, ‘어? 이게 뭐지? 어제까지의 삭막한 다리 풍경은 온데간데 없고, 온통 뒤덮인 반짝이 샛별 전구들이 마음을 흔들어댄다. 반짝이 전구만이 아니라 해바라기 바람개비 10여개가 산들바람에 흥을 돋우는 기찬 밤이다. 며칠 사이에 작은 간이원두막까지 버젓이 지어 놓은 사람은 도대체 누구일까? 반갑고도 궁금한 이벤트에 감탄하면서 다리를 빙 돌다가, 어슴프레 차량 1대와 사람의 인기척을 듣고 한걸음에 다가갔다. 막 조명 장식을 마친 중년의 여인에게 무작정 초면수작을 걸으니, 두 사람은 다리 난간에 기대어 오래된 친구처럼 이야기에 심취하게 되었다. 다리 조명에 마음을 쏟게 된 여인의 속내를 들어주는 것만도 얼마나 이색적인 밤인가 싶어서이다.
치매에 걸리신 어머니가 집을 잘 찾아오시라고 시작한 별빛 바람개비 이벤트! 끝내는 요양원으로 어머니를 보내게 된 애절함. 어머니를 잊지 못하는 연민의 정을 모든 어르신들과 나누고 싶어서 다리 이벤트에 심취하게 된 사연. 그리고 어머니 때문에 생긴 우울증까지 서서히 치유받고 있는 치유의 다리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새삼 나도 부모님에 대한 애닯은 기억들이 서릿발처럼 치밀어 눈물나는 저녁이다. 우리는 초면인데도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마음으로 소통의 장이 확 열렸다. 인생 연배로써 무슨 말인가는 해줘야 될것 같애서, 고 박완서 작가의 말을 인용해 버렸다. “3개월 사이에 남편과 아들을 한꺼번에 잃었던 고 박완서 선생님은 ‘고통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덤덤하게 견뎌내는 것’이라고 하셨지요. 그냥 가만히 떠내려 보내세요. 그냥 덤덤히 흘려보내세요. 억지로 어머니를 잊어서 고통을 지우려 하지 말고 순리적으로 받아들이세요. 내 몸속에 작은 돌이 있을 때 통증이 오듯이, 내 영혼속에 깨지지 않는 돌덩이는 정신적 고통을 수반합니다. 그러니 너무 아파하지 마세요. 인생의 과정이나 우주의 섭리라 생각하세요. 머지않아 우리도 그런 순간들을 마주할 것이기 때문이죠”
‘독자여러분, 그렇습니다. 인간은 감옥이 아닌 곳에서도 감옥처럼 살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사람이 때로는 상황이, 또는 장소가 우리 자신을 가두고 옭아매는 감옥이 됩니다. 머무는 곳이 어디든 마주하는 이가 누구든, 지옥으로 느끼며 사는 인생은 슬픔이요 비극이겠지요. 상처받는 고통을 감내하며 견듸는 일은 절대로 헛되고 억울한 것이 아니겠지요. 조개속에서 진주가 빚어지듯이 그런 혹독한 과정이 있어야만 아름다운 인격으로 성숙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삶의 고통을 잘 견뎌내는 사람은 죽음이 임박했을 때, 내세로 가는 자유의 다리도 홀가분히 넘을 수 있다고도 합니다.’
참으로 무지나도 더웠던 여름을 배웅하는 시점에서, 순환의 이치는 우주 운행의 질서요. 생명의 보존이요. 자연의 법칙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그러기에 우리는 생의 길목에서 마주치는 성난 파도나 까마득한 안갯길, 폭풍우같은 장애물을 만나더라도, 다시 태어나는 기분으로 덤덤히 견뎌내야만 할 것이다. 인생길에 혹한의 시련이나 영혼의 극한 단련이 없다면, 삶의 명검도 무딜 것이기 때문이다. 새에게 날개는 무거우나 그 날개 때문에 날 수가 있고, 배는 그 돛이 무거우나 그 돛 때문에 항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절망은 희망의 어머니’ ‘고통은 행복의 스승’이라는 말도 생긴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초가을 저녁, 요양원의 어머니 대신에 주변 어르신들에게 다리이벤트로 봉사하며, 스스로도 정신적 치유를 받은 이름모를 중년 여인을 위하여 건배를 든다. 붓다의 가르침이다 ‘너무 큰 걱정을 하는 것은 불행을 만드는 첫 단추이다. 고통이 너를 잡는 게 아니라, 네가 고통을 놓지 못하는 것이다.’ 마치 나에게 던져주는 귀한 말씀인 양 부둥켜안고. 점점 배가 꺼져가는 하현달과 동행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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