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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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으로 가는 길
  • 최재철(거현산방 한일문화도서관)
  • 승인 2025.05.15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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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철
(거현산방 한일문화도서관)

 

  고향이란 무엇인가? '마음의 안식처' '원초적 그리움' '어머니 품과 같은 곳'… 어느 시인은,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 이라고 했다. 아마도 그의 고향 질마재의 바람이리라.
  거기 고향이 있어 그냥 간다. 여기서, 내 고향 가는 길을 더듬어 보고자 한다.
  오전 11시 반쯤, 서울 강북의 아파트를 출발하여 1호선 전철을 35분 정도 타고 서울역으로 가서, 12시경 서울역 2층 식당에서 비빕밥이나 해물순두부정식으로 점심을 들고, 예매한 승차권대로 1:04분 출발 옥천행 무궁화호 1309호 열차에 몸을 싣는다. 옥천역에는 새마을호(ITX)와 무궁화호만 정차하고, 소요시간은 2시간(2시간 20분) 정도로 별 차이가 안 나는 데다, 옥천역 앞에서 버스 연결 대기 시간이 짧은 쪽을 택한 결과다.
  철로 연변 풍경으로 연초록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지나간 세월을 쫓다가 사진을 찍기도 하고 책을 읽거나 스마트폰으로 연상되는 걸 메모하다 졸다 보면 옥천역에 3시반경에 도착. 역 대합실 생수통에서 물 한잔 따라 마시고 벤치에 앉아 TV뉴스를 보며 잠깐 쉬다보면, 금방 시간이 되어 역 건너편 옥천시내버스정류장으로 이동, 4:15분 출발 보은읍행 시내버스(신흥운수) 승차, 4:50분경 수한면 '거현리' 입구에 도착한다.
  멀리 금적산 아래 고향 야산이 보이는 정류장에서 버스를 내려선다. 백팩을 맨 어깨를 추스르고 심호흡으로 고향의 공기를 들이켜며 900m쯤 천천히 걷는다. 가방 안에는 열차에서 마시던 물 한 병과 과자, 그리고 사과 하나와 감자나 고구마 1,2개·우유 1팩(아침), 갈아 신을 양말 등이 들어 있다.
  초등학교 시절 비바람이 불거나 눈이 내리거나, 초봄의 향긋한 풀내음을 맡으며 매일 걷던 그 길을 걸어간다. 한발 한발 내딛는 발걸음이 빨라진다. 봄날 늦은 오후, 해가 덕대산 쪽으로 기울 때다.
  영화 ⌜집으로…⌟가 떠오른다. 산골짜기 외할머니 집에 맡겨진 일곱 살짜리 개구쟁이 어린 손자와 허리 굽은 할머니가 하염없이 가는 산길, 당초 생각과 모양은 다르지만 결국은 집에 이르는 그 길! 
  산골 버스 종점에서 도시로 떠나는 손자를 배웅하고 홀로 꼬부랑 산길을 걷고 또 걸어 산비탈 허름한 외딴 집으로 돌아가는 허리 굽은 할머니의 긴 여정…
  크든 작든 누구나 돌아갈 집이 있다. <집으로 가는 길>, ‘동행’과 ‘집’의 의미를 잔잔하게 반추하게 하는 명화다. 
  나도 그렇게 고향 들녘 길을 걸어가고 있다. 무념무상, 그냥 편안하다. 혼자 걷는 이 길에 일말의 외로움이 없다곤 할 수 없다. 그러나 어딘가에 가족이 있고 이웃이 있고 반기는 이들과 산천이 거기 그대로 있어 홀로 걷는 고향길이 호젓하다. 아니 때론 쓸쓸하다. 이 외로움 속에서 뭔가 새로움을 발견하게 될 터이다. 글도 써지리라 기대한다. 가방 안에는 책 한두 권과 연필과 공책, 때론 노트북도 들어있다.
  모종 마을 앞 참나무 밭을 지나면 작은 들녘 저편 대차골과 봐구지와 앞산과 건넝골, 그리고 두터벌과 감남벌, 그 위에 금적산의 능선이 시야에 또렷하게 다가온다. 주키니호박 모종을 심는 아낙의 손길이 바쁘고, 트렉터로 밭가는 분께 목례하니 셋째형 친구라며 반긴다. 들판에는 모내기 준비하는 물댄 논도 있다. 햇살 받은 수면이 반짝반짝 빛난다. 아, 언제 보아도 몇 날 몇 년을 바라보아도 정겨운 풍광, 내 고향 거현리다. 
  사월의 세 째 주말, 북쪽 산바람이 불어와 모자챙을 흔든다. 어느덧 거현산방(巨峴山房) 2주년이다. 바람이 분다. 
  고향 가는 길이 예전에 비해 훨씬 편리하고 가까워졌다. 가족과 함께이거나 짐이 있을 땐 승용차로 가면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한두 번 쉬고 2시간 반이나 3시간 정도. 서울 집에서 고속화도로 진입할 때나, 보은IC 나들목에서 고향집까지 가는데 5,6분. 교통신호는 몇 개 헤아릴 정도다.  
  동네 어구에서 까치가 반긴다. 먼저 눈에 띄는 건 거현교회다. 유년시절 주일학교 다니던 때가 떠오른다. 도랑가 몇 집을 지나면 앞산 건넝골 가는 길과 웃말 올라가는 갈림길에서 마을회관 앞 둥구나무가 보이는 오른쪽 돌담집. 
  초록 대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서면, 후루룩 참새들이 화단 대추나무에서 안채 처마 밑으로 제 집 찾아 든다. 나도 댓돌을 밟고 앞마루에 앉아 사랑채와 화단과 헛간, 정자와 텃밭, 위아래 마당과 앞산을 차례로 둘러본다. 아늑하다. 70년을 그렇게 바라본 정경! 바람 한 점 없다. 평온하다. 
  아, 거현산방, 태어나 자란 고향집에 왔다. (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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