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단추를 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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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단추를 달며
  • 김옥란
  • 승인 2022.11.24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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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키색 코트가 있다. 코트에는 단추가 위에 두 개 아래에 두 개 달려있다. 단추들은 코트와 같은 카키색이다. 나는 더블 단추 달린 이 코트를 좋아한다. 카키색은 내가 좋아하는 사철 푸르른 나무와 같은 색깔이다. 그래서 그런지 편안함을 주는 코트였다. 나는 이 코트를 1년 전에 샀다. 주인 마음이 태평양처럼 넓은 옷가게에서 이 코트를 샀는데, 똑같은 코트를 두 벌 사서 한 벌은 내 소중한 친구에게 선물했다. 나는 이 코트를 요즈음 날마다 즐겨 입었다. 친구도 나처럼 잘 입을까? 생각하며 입고 다녔다.
어느 날 윗단추 하나가 없어진 것을 알았다. 바깥 어디서 떨어뜨렸나 보다. 똑같은 단추 한 개를 사려고 시장에 갔었는데 아무리 둘러보아도 허사였다. 다시 단추를 사려고 애를 쓰니까 코트를 샀던 옷가게 주인이 코트의 모든 단추를 교체하면 된다고 알려주셨다. '카키색 단추가 없으면 다른 어떤 색깔의 단추든 좋으니 다만 단추는 단추끼리 색깔을 똑같게 하라'는 뜻이렷다.  바로 그 순간 내 뇌리에 어떤 흥미로운 묘책이 떠올랐다.
'집에 있는 빨간 단추 한 개를 달아봐. 그럼 패션의 완성도가 더 높아지지. 파격미, 돌출미, 언밸런스미, 이런거 있잖아.'
나는 부끄러워 조금 더 생각해보다가 결국 '젊은이들은 멋스러우려고 일부러 찢어진 청바지를 사서 입는데 빨간 단추 하나는 신선하지.'하며 달기로 결정했다.
우리나라 퇴계 이황 선생께서는 이 시대에 프랑스에서 더 많이 알려진 대학자이시다. 그러한 퇴계 선생의 소소한 에피소드 하나가 생각난다.
어느 날, 퇴계 선생 두루마기에 구멍이 났다. 보통의 여인네들은
같거나 비슷한 천을 덧대는데, 선생 부인은 전혀 다른 색깔의 헝겊을 덧대어 꿰매었다. 퇴계 선생은 말없이 그 두루마기를 입고 다니셨다. 그 당시 사람들은 퇴계 선생을 존경해서 선생의 그런 옷차림이 사람들 사이에 유행이 되었다고 한다.
한번은 퇴계 선생이 흰색 도포를 입고 초상집에 가려다가 도포가 해져있기에 "부인, 기워주시겠소?" 했더니 빨간 천을 덧대어 기웠다. 퇴계 선생은 묵묵히 그 도포를 입고 초상집에 갔다. 예법에 정통한 선생이 초상집에 이런 도포를 입고 나타나자 사람들은 너무 놀라 "빨간 천을 덧대는 것이 예법에 있습니까?"   질문하자 퇴계 선생은 빙그레 웃기만 하셨다.
자랑스런 선조들의 일화까지 떠오르니 의미있다.
나는 카키색 코트에 빨간 단추 하나를 달았다. 화룡점정. 기지개를 켜며 웃는다. 내일도 작은 기쁨을 찾아서 또 웃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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