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광(원광문화교실, 교무)
글을 쓰는 것과 나무들아 바람결에 나부끼는 것과 벌들이 겨울을 준비하는 것들과 함께 오늘도 자연 속에서 생명의 기운들은 모두가 자기 몫을 하고 있다. 가을 운동회 소리 드높던 초등학교 운동장도 텅 비어 있는 느낌이고 시골분교의 운동장 귀퉁이 플라타너스 나무들도 아침 찬 기운과 함께 해성해성하다는 느낌을 감출 수 없다. 이런날에는 창문을 열고 綠茶 한 잔을 우러내어 김영동의 영상음악과 함께 음미하는 것은 나만이 가지는 조촐한 향이다.초의(草衣)스님의 차(茶)에 대한 강의를 즐겨하시는 서울 인사동의 용은 스님은 혼자서 마시는 것은 신선(神仙)이나 하는 짓이고 둘이서 마시면 성인(聖人)이라고 하고 셋이서 마시면 중생들의 모습이다. 혼자서 마시는 차 한잔의 의미도 매우 감미로운 모습이라고 하는 그렇듯한 이론을 편다. 우리가 마시는 음료수에도 이렇게 음미(飮味)하고 가슴속 깊이 사색을 즐기기에 적당한 선조들의 차(茶)가 있고 송화가루 묻은 차식(茶食)이 있어서 마음 한 귀퉁이에는 조그마한 안락과 기쁨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이 땅에 살면서 아름답게 살고자 하는 사람과 의미 있게 살려는 사람들의 마음은 무엇인가. 그것은 세월이 흘러도 자신만은 변하지 않는 어쩌면 고고한 선비정신 인지도 모른다. 계절에 빗대어 말하자면 가을의 나뭇잎새에 바람소리로 까칠한 가슴으로 서성이는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생각해 본다. 계절을 생각하면서 우리네 풍속의 말에는 봄에는 물이 오르는 여인의 계절이고, 가을은 기운이 왕성한 남성의 계절이라고 한다.
이러한 계절은 비단 형식적인 모습일 뿐만 아니라 마음속에 간직한 삶의 본연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정신적 여유 공간을 살펴보는 왕성한 계절이라고 할 수도 있다. 바쁜 세상에 살지라도 하루쯤 시간을 내어 가까운 산사(山寺)에 가서 아무치장도 없는 객실방에서 적적한 어둠의 침묵과 밤을 맞이한 뒤에 이른 새벽 종소리에 깨어 예불시간에 맞춰 세수를 한마음 차가운 나무 그늘 밑을 헤쳐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돌계단을 오를라 치면… 우리네 인생은 왜 그리 바쁘고 허장한 욕심을 내면서 시간을 허비해 왔던가 하는 삶 전체의 영상을 내밀한 마음속에 펴고 접는 자기만의 시간을 발견할 수 있다.
당(唐)나라의 유명한 하지장(賀知章)의 詩가 생각난다. 어려서 집을 떠나 늙어서 돌아오니 고향말씨 변함없고 머리털만 세었네 아이들이 보나 알아보지 못하고 웃으며 묻네. 손님은 어데서 왔느냐고
少小離家 老大回(소소이가 노대회)
鄕音無改 髮毛碎(향음무개 발모쇄)
兒童相見 不相識(아동상견 불상식)
笑問客從 何處來(소문객종 하처래)
이렇듯 고향과 자신을 잊어버리고 어느덧 세월 속에 묻혀버린 자신을 발견하는 계절도 가을이 아닌가 한다. 최근 많은 사람들이 다시 물 맑고 공기 좋은 고향을 그리워하고, 고향에서 노후(老後)를 생각하며 토지를 매입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인생의 귀소본능도 동문과 다르지 않구나 하는 것이 생각난다. 날아다니는 새들도 죽음에 임박해서는 자기가 태어난 곳을 향하여 머리를 두고 죽음을 맞이한다는 말들이 이 가을에 조용히 음미하는 여운과 공허이다.
대문 가까이에 손님의 발자욱소리 인줄 알고 귀를 기울이면, 오동잎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가을을 알았다는 옛 선비들의 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또한, 재미난 민요가 있는데 그 가사의 한 구절(句節)을 보니 「구월 국화 지는 남근 명년 봄으로 다시 오고 내 청춘 한번 가면 다시올 줄 왜 모르는고…」라는 민요를 듣고 사람들은 가을 기운과 함께 자신의 노쇠함을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구나 하고 상념에 잠긴다. 이렇듯 들녘과 산야에 수많은 한 해살림을 완결하는 마당인데도 우리들이 맞이하는 가을은 알찬 정신적 여백의 공간이 얼마나 깊은것일까.
우리민족은 오랫동안 여유를 가지고 살아왔다. 해지는 저녁노을을 바라보는 『해거름』이란 말이 주는 뉘앙스와 『여백(餘白)』이란 말등이 지금 정확한 시간과 빠듯한 생활규범의 복잡한 현대사회에 있어서 얼마나 넉넉함을 간직하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본다. 가을을 예감하면서 그 표현을 시각화하는 미술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동양화의 뿌리깊은 화면 구도에서도 여유있는 공간을 생명으로 치는 것이 우리의 마음속에 여백이라고 한다.
여백의 공간은 정신적인 남는 공간을 말하는 것으로 우리는 이 여백의 기쁨이 있기에 자연과 함께 기다릴 줄도 인자함을 베풀 줄도 그리고 인내할 줄도 하는 동양문화의 정신적 중심의 삶과 깊이와 원만함을 체질화하면서 살아왔다고 본다. 남도 광주, 국제 미술비엔날레의 제목도 『지구의 여백』이라는 주제를 걸었다. 우리조상들이 사랑하고 아꼈던 공간은 가을 인정과 인심만큼이나 넉넉했고 그 속에서 자연과 함께 하는 만끽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새롭게 한다는 것이다.
오는 가을의 여유를 생각하면서 한잔의 차(茶)를 마신다. 물을 끓인 다음 차관(茶管)에 물을 적당히 식힌 다음 녹차를 알맞게 넣고 툭툭 떨어지는 오동잎새를 보면서 한잔을 따라서 마음을 적시면 굳이 맛과 색과 향을 음미하지 않더래도 가을의 정취를 맛볼 수 있으며 덧붙여 고전인 『채근담(菜根譚)』이라도 읽으면 세상의 눈과 귀가 나몰라라하는 느낌을 감출 수 없다.
<정이품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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