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속 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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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속 수첩'
  • 증생이가 친정인 이현숙
  • 승인 2021.05.13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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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쌀쌀한 날씨에 옷깃을 여미지만 고향으로 향하는 발걸음에 봄기운이 느껴지는 아침이다.
겨우내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꿋꿋하게 서 있던 나무들도 물이 올라 봉긋하게 싹 트는 춘삼월 마지막 주간에 아버지 생신이 들어 있다.
바쁜 일상 때문에 혹시나 잊을까봐 달력에도 커다랗게 동그라미 표시를 해 두었다.
올해는 아버지가 90세 생신을 맞이하는 특별하고 의미 있는 해다.
모든 가족이 함께 모이는 화기애애한 즐거운 가족 모임이 되어야겠지만 올해는 조용하게
보내야하니 고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다소 무겁게 느껴진다.
코로나라는 바이러스 때문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이상한 시대를 살고 있는 엄중한 때이기에 우리 가족도 분산해서 부모님을 찾아뵙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10년 전 그해 봄, 아버지 팔순 생신에도 오남매 자식들이 함께하지 못 했다. 조용히 보내고 싶으시다는 아버지의 특별한 부탁이 있으셨기 때문이다.
타지에서 직장 생활하는 자식들은 무슨 이유로 평소 때보다 더 조용히 보내자고 하시는지 궁금했지만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순종했고 시간 날 때 각자 다녀오기로 했다.
세상에는 비밀이 없다고 했던가. 며칠 후 고향 보은에 사는 친구가 이홍기 아버지께서 보은신문에 나왔다며 전화를 해왔다. 보은 군수님과 나란히 성금 기탁증서를 들고 계시는 사진과 함께 나온 신문도 펙스로 보내 왔다. 동그라미가 일곱이나 있는 금액을 장학금과 이웃돕기 성금으로 보은군에 기탁하셨다는 내용이다. 탄부면에는 독거노인과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부모님께 효도하는 효자효부들에게 써 달라고 농산물 상품권도 전달했다는 기사이다.
흥분해서 전화해 주었던 친구의 목소리가 지금도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하는데 세월은 강물처럼 흘러 다시 90세 생신을 맞이하게 되었다. 
(지나온 날들은 그리운 추억으로...)라는 제목으로 30여년전에 출간한 아버지의 책을 보면  우리세대에서는 상상 할 수 없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살아오신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아버지는 20대에 6.25사변이 있어 피난 생활을 몸소 경험하셨고 이듬해에는 해병대에 입대해 무려 5년여를 사선을 넘나들며 수많은 어려움을 겪으셨다고 기록 되어 있다.
보리 고개라는 말이 생길만큼 나라나 개인 모두가 다 힘든 시기에 가장의 어깨는 많이 버거웠을 것이다. 두동생과 다섯 자식 학비 조달은 또 얼마나 힘드셨을까.
다행이 삼촌들과 자식들이 공부를 잘 해 부모님은 큰 위로가 되셨겠지만 먼지가 풀풀 나는 20십리 비포장 도로 길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몇 십 년을 자전거로 출퇴근하셨던 아버지셨다. 배움의 열망은 가슴에 묻고 가족들을 위하여 눈물겨운 헌신으로 살아오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글로 형언 할 수 없는 만큼 자랑스럽고 존경심에 고개가 숙여진다.
인고의 세월 속에서도 긍정적인 마음으로 아버지는 대가족을 화목하게 이끄신 든든한 울타리시다. 효자 밑에 효자 난다는 옛말이 있듯이 93세에 천국으로 가신 할아버지를 아버지는 정성으로 잘 모셨는데 이제는 70세 된 아들에게 효도를 받고 계시니 참 감사한 일이다.
세계적 관심사인 코로나가 어서 빨리 종식되어 오남매가 함께 부모님 집에서 자주 만나 끈끈한 가족의 정을 나누며 살고 싶다 .
부디 지금처럼 건강하시여 자식들이 전하는 기쁜 소식이 고향집 뜰 안에 함박꽃처럼 아름답게 피어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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