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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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나들이
  • 오계자 (보은예총 회장)
  • 승인 2021.05.13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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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없어 구름을 밀어내지 못하는 날이다. 덕분에 따가운 햇볕을 피할 수 있으니 내심 좋아하며 길을 나섰다. 강원도 원주의 법천사지와 거돈사지가 목적이지만 나는 그쪽 지역의 조선시대 교통과 숙박시설과 관련된 자료가 더 필요했다. 어지간히 답사가 마무리 될 무렵 설성산 신흥사로 내비를 찍었다. 무심한 물오리의 산책이 잔잔한 호수의 수면에 파문이 되듯, 천년의 세월을 담고 묵묵히 또 하루를 쌓고 있는 사찰의 적요를 휘저어 놓고 자동차는 멈췄다.
여느 고찰처럼 웅장하진 않지만 고려와 신라 그리고 조선의 희로애락을 책갈피처럼 담고 있는 모습은 결코 초라하지 않으며 오히려 장엄하다. 구석구석 느껴지는 정성스런 손길에 감탄하며 극락보전에 들자 반가이 맞이하시는 주지 월선스님을 뵈면서 모든 정성이 주지스님의 손길임을 알았다. 설명 같은 거 필요 없이 걷어 올리신 소매를 보니 우리가 산사의 적요만 깨트린 것이 아니라 스님의 일손도 훼방 놓았음이다. 
장호원 설성산 신흥사다.
노스님의 안내로 설성산에 성을 쌓게 된 유래가 적힌 자료도 보고 신흥사의 역사도 공부하게 되었다. 일설에 의하면 지략과 무용武勇을 겸비한 장군이 왕의 신임을 받자 모함으로 인해 사형을 당하기에 이르자 충신들이 나섰단다. 나라를 위해 꼭 필요한 존재임을 내세워 특별사면을 청하였다. 이에 왕은 정해진 날까지 성을 쌓으면 사면하겠다는 약속을 한다. 엄동설한에 혼자 성을 쌓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워 주민들이 밤마다 몰래 도와줘서 성을 쌓았고 그를 기리기 위해서 성의 중앙부에 사찰을 지었다는 이야기다. 또다른 설은
신라 17대 내물왕 당시 이곳에 왜군이 번천하여 축성을 쌓기 위해 적당한 곳을 물색 중에 기이하게도 다른 지역은 멀쩡한데 이곳에만 백설이 내려 그 적설 행적을 따라 축성하였기에 설성雪城 이라하고 산을 설성산이라 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의문을 버릴 수 없었다. 신라시대요 또 충청도와 경기도가 접하는 북부 내륙지역에 왜군의 번천이라니? 의아해서 알아보기 위해 다음날 도서관엘 다녀왔다. 여러 서적을 열어 본 후에 비로소 알게 된 것은 장호원이 내륙의 교통요지라는 것이다. 침략자의 입장에서 한양까지 손을 뻗으려면 주요한 역할을 할 곳이다. 
장호원을 통과하는 영남로는 삼국시대부터 중남부 내륙지역 보부상들의 통행은 물론 과거보러가는 선비들의 통행이 잦은 교통로였다. 당시 한양에서 장호원을 거처 상주 부산까지 남북을 이어주는 교통의 요지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북으로는 산세가 험해서 산적이나 산짐승의 위험이 있으므로 평택 수원 등지는 물론 한양에서도 제천 영월을 갈 때 대체로 산세가 순한 장호원을 거치다보니 자연히 동서로도 중요한 요지가 되었다. 더구나 장호원은 한양에서 딱 하룻길로 적당하다. 당연히 신작로가 발달하면서 숙박이 필수가 되었고 주막들은 숙박까지 제공했다. 그렇게 형성 된 주막촌酒幕村이 차츰 신작로 주변에 집을 지어 나그네를 위한 숙박업을 하는 가촌街村으로 발달하게 된 곳이 장호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가며 장호원이라는 이정표를 본 적은 많지만 나와는 아무 연고가 없는 객지기 때문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여기도 저기도 알고 보면 고을마다 역사가 깊은데 살다보니 우물 안 개구리가 되었던가 싶다. 많은 사람들이 보은을 모르는 것은 당연하고 지나가면서도 홍보용 전광판을 보면서 ‘여기는 대추가 많이 생산 되는 곳이구나.’ 이정도로만 스쳐갈 것이다. 지역마다 특성과 전설이 있으나 연고가 없는 객지는 관심조차 주지 않고 살아왔다. 하지만 떠나 있으면 내 고향이 그립듯이 외국으로 이민 가서 살고 있는 친구들은 한글 간판만 봐도 가슴이 찡하다고 한다. 바로 ‘우리’라는 단어에서 풍기는 잠재된 정 같은 것이다.
이제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생활에서 벗어나서 ‘나’ 보다는 ‘우리’를 보듬어야겠다. 우리 동네, 우리 고을, 우리나라 금수강산의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역사를 통해 우리의 문화를 터득하며 사랑하는 마음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이다. 마음을 열고 나들이 하는 것과 마음 문을 꼭꼭 닫은 채 나들이 하는 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와 같다. 5월이다. 이제 봄이 떠날 채비를 한다. 온통 꽃 천지가 된 세상 구경도 좋지만 온통 닫혀버린 마음을 열고 너와 나가 아닌 소통하는 우리가 되는 봄나들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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