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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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봄
  • 김종례 (시인, 수필가)
  • 승인 2021.04.29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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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야에 연두와 핑크의 파스텔조 수채화를 그려놓고, 사람의 가슴에도 꽃비를 흩날리던 4월이 잠시의 몽환처럼 지나갔다. 꽃이 진 자리마다 새 홑잎들이 하나하나 깨어나 미풍에 흔들리는 요즘이다. 앙증맞게 쫑긋쫑긋 입을 내밀고 세상구경을 나온 정원의 새싹들도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마지막일거라고 생각했던 부정적인 요소들을 통쾌하게 날려주는 저 순한 연둣빛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나뭇잎 새로 사그락대는 바람이 두리둥실 에루화 봄을 춤추기에, 오늘은 태봉 숲으로 연결되는 언덕길을 올라본다. 아가의 물 살결마냥 부드러워진 잎새들이 아침햇살에 팔랑거리고, 내 마음에 산목련 한 송이 흔들거리는 언덕길을 올라본다.
 
  어머니 젖무덤 같은 고향의 언덕길이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연민으로 다가오는 오늘이다. 짙푸른 보리밭에 둥지를 튼 종달새가 하늘로 솟구치다 내려오면, 마타리 망초대가 바람에 흔들려 마음 설레던 언덕길이 있었다. 동무들과 멍석바위에 앉아 요술 구름을 바라보며 꿈꾸던 그곳이 가물가물 춤을 추어댄다. 마을의 진풍경들이 내려다보이던 언덕길은 진정 보배로운 터전이 아닐 수 없었다. 꽃바람을 따라서 진달래꽃을 따먹고, 각양각색의 나비를 따라서 뛰어놀던 언덕길은 바로 자연 체험 학습장 그것이었다. 자연의 섭리와 우주의 이치를 터득하고 감성지수를 키우며 자랄 수 있었던 놀이터였기 때문이다. 해가 지도록 사방치기 공깃돌을 함께 굴리던 옛 동무들은 어디서 어떻게 늙어가고 있을런지~~  머슴애들의 버들개지 풀피리 소리와 물레방아 소리가 어울려 아련히 들려오는 듯하고, 커다란 바위틈에서 윙윙대던 토종벌들의 합창소리도 환청처럼 들려온다. 어머니 젖무덤을 닮은 것은 다 부드럽고 행복해 보였던 그 시절에, 언덕길 추억의 필름들이 그리움의 메카로 다가오는 순간이다. 세상에 그다지도 눈물겹게 다정하고 둥그런 것들이 새삼 그리워지는 봄이다. 사막속의 신기루라도 찾는 양 마음 홀리며, 바람처럼 유성처럼 자유롭던 동무들의 영혼이 아지랑이처럼 그리운 봄이다.
 
  시간의 헛바퀴들이 쉬지 않고 줄달음치며 반세기가 흐르는 동안, 언덕길처럼 둥근 것들은 허물어지고 사라지면서 세상의 인심은 꽤나 메말라졌다. 오늘 언덕에서 내려다보이는 우리 동네 골목길과 가가호호도 적막하기 그지없다. 빈 집도 많거니와 언제부터인가 아이들의 모습은 사라진지 오래이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은 세월이 얼마나 지났을까. 어쩌다가 사람 기척이 나는 골목길에서 촉수를 곤두세워 보지만, 낡은 유모차를 구불구불 밀고 가는 노인과 골목길을 배회하는 고양이가 동행할 뿐이다. 휑하니 빈 집들은 흙담이나 주춧돌에 간신히 기댄 채, 기울어진 모습이 오래된 고적 유물처럼 적막강산이다.
  오랜 세월 보이지 않고 사라져 가는 것들 중에 그리운 것이 또 아지랑이다. 간혹 아스팔트가 깔리지 않은 시골길을 걸어 봐도 웬일인지 아지랑이는 보이지 않는다. 질척해진 운동장을 달리던 아이들 머리에서 모락거리던 아지랑이는 어디로 갔을까? 요즘 아이들은 아지랑이의 신비로움을 과학적 탐구로만 이해하고 상상한다고 한다.  복잡하고 다양한 체험 활동으로 많은 정보와 지식을 배우느라 늘 숨이 차오른다. 여러 가지 프로그램에 익숙해진 탓인지, 햇볕 가득한 운동장으로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대자연의 섭리를 느끼며 미래의 꿈을 꿀 수 있는 봄의 정서에는 관심이 없나 보다. 언덕길에 오르면 마음의 강물이 한없이 출렁거리던 어른들의 봄을 어찌 짐작할 수 있으랴 ~~  바람처럼 꽃잎처럼 아름답던 어른들의 유년을 어찌 알 턱이 있으랴 ~~ 이러한 아이들이 어느 때는 한 잎의 새싹처럼, 한 송이 꽃처럼 안쓰럽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세월의 격동 속에서 함께 안아야 하는 문명의 아픔이기도 하다.

  아이들의 봄은 어디로 갔을까? 청아하게 피어나던 여름의 들꽃들은 또 어디쯤 숨어서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을까? 순박하고 둥그런 언덕길 대신에 훤하게 트인 사차선 국도를 막힘없이 달려보아도, 쉽게 지쳐버리는 목마름은 또 무엇에 대한 갈증일까! 봄은 지금 묵묵부답이다. 그저 꽃비의 풍장을 치르며 5월을 마중할 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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