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를 널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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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를 널며
  • 故 조원진 시인 (1주기를 보내며)
  • 승인 2021.03.25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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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긋한 피죤 냄새 맡으며
빨래를 넌다

탈수 끝난 세탁기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겉옷이며 수건 등속을 꺼내다 보면
양말짝들만 수북이
바닥에 남는다

냄새 고약한 신발 속에서
왼 종일 두 발을 감싸주고도
구석에 툭 던져지는 양말

타고난 팔자가 그런 것들을
무릎 꿇은 자세로 곱게 펴서
건조대 맨 아래 칸에 널고 있는데
또 그, 제사상에 헌작하는 모양새다

하찮아 보이는 것들도 더러는
낮은 자세로 공손하게
받들어야 할 때가 있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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