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업자득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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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업자득인 것을
  • 오계자 (소설가)
  • 승인 2020.11.19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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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물도 진액도 다 빠지고 더는 빠질 것이 없어 메마른 눈 밑 근육이 저리도 파르르 떨고 있는가 싶다. 손끝도 가늘게 떨고 있다. 저 할머니의 한평생 삶이 영화처럼 상상의 스크린에 나타난다. 눈물조차 사치였을 저 세대 여자의 일생이련가. 오죽하면 고희를 넘기시도록 참아오던 분이 이혼 상담을 오셨을까. 이혼뿐이 아니라 어디서 들었는지 법으로 100m 안으로는 오지 못하게 해 달라고 하신다. 변호사 상담 기다리는 동안 할머니 가슴에 울증이 뭉텅이로 밀려 나오는 것 같다. 나는 그냥 다 들어드리고 있었다. 몇 년 전이다. 법원 민원실 자원 봉사 중이었다.
  젊은 시절 남편은 기술이 좋아서 전국 전매청 제조창마다 불려 다니며 돈을 끌었단다. 대전에다가 늴리리 기와집을 지어서 애첩이랑 살림을 차리고 한해 두해 해가 바뀔 때마다 생활비가 줄더니 큰 아들이 중학교 들어갈 무렵부터는 생활비도 학비도 끊어졌단다. 할머니는 식당 설거지부터 시작해서 오지로 다니는 약장사까지 안 해본 장사가 없고, 두 아들도 돈벌이를 하면서 야간 고등학교를 다녀야 했단다.
  대학은 못 가고 큰 아들은 상고, 작은 아들은 기계 공고를 졸업하고 어찌 어찌 해서 월세를 전세로 돌려가며 살만 해졌다. 그 젊은이들 가슴에는 얼마나 큰 못이 박혀 있을까. 가진 것이라곤 몸밖에 없던 할머니의 밑천, 몸이 성치 못해 사뭇 며느리에게 눈치가 보인단다. 이런 형편에 영감이 뇌졸중으로 한 쪽 수족을 못 쓰게 되자 애첩으로부터 쫓겨나 찾아 와서는 갈 생각조차 않는단다. 그러자 며느리가 이대로는 못산다니 잘못하면 아들마저 파탄이 날 상황이란다. 어쩔 수 없는 아들이 대전으로 모셔다 놓고 오면 곧장 쓴물 단물 다 짜먹은 첩이 택시 태워서 청주로 보낸단다. 둬 번 되풀이 하다가 다음에는 대전에서 대문도 열어주지 않고 내치니까 영감은 지팡이 짚고 절룩거리면서 혼자 버스타고 청주로 오고 또 청주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할아버지도 사람인데 어찌 청주로 오고 싶을까만 큰댁에 생활비조차 못 보내게 하던 애첩의 실력으로 이제는 영감님을 내친 게다. 이 할머니는 내가 복이 없어 그렇다고 생각하며 좋은 일 하는 셈 치고 그냥 두고 싶어도 잘못하면 아들이 이혼 할 판이란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들을 위해서 할머니가 독하게 마음먹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법원으로 오셨단다. 나더러 시골에 빈집 있으면 소개 좀 해달라고 한다. 영감 데리고 빈집에 가서 사는 날까지만 목숨부지 하겠단다. 
  잘 나가던 한 남자의 노후가 너무도 비참하다. 이런 노후를 예상했더라면 조강지처와 두 아들을 그렇게 홀대하지 않았으리라. 아니 예상 못했어도 사람이 털끝만큼의 양심이라도 있었다면 아들들 학교 등록금만은 줬을 터이다. 그랬으면 저리 비참하지는 않으리라. 그 할아버지는 자업자득이라 하지만 할머니는 무슨 끈질긴 악연으로 평생을 고생시켜 놓고 끝까지 걸고넘어지는가 싶다. 할머니가 저렇게 결심하기까지 몇 밤을 지새우며 베개를 적셨을까. 이제 지팡이에 의지하고 움직이는 저 할아버지는 오늘 당장 어떻게 될까. 온갖 힘든 아르바이트로 기계기술 고등하고를 거쳐 각종 자격증을 취득한 큰아들은 성실함을 인정받아 대기업에 스카웃 되어 야간 대학을 다니는 중이란다. 얼마나 미래지향적인가. 머리가 좋아 수학을 잘하던 작은 아들은 정규 모집 과정을 거쳐 국민은행 정규직으로 근무하며 올해 야간 대학을 졸업했다. 천벌을 받았는지 대전은 아들이 사업하다가 망해서 늴리리 기와집 날리고 딸은 유흥업소 밤무대서 노래하는 가수란다. 내가 법관이라면 대전의 가족들이 부양해야할 의무가 있다고 법으로 결정해 주고 싶다. 자원봉사를 마치고 나오는 내 발걸음이 천근이다. 아침에 나갈 때 행복하던 아파트 둘레에 영산홍들도 웃음을 내려놓은 것 같다. 아무리 한치 앞도 모르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그 할아버지는 진작부터 다 보이는 노후를 애첩의 눈가리개에 막혀서 스스로 눈과 귀를 열지 못하고 생각을 정지 시킨 삶이었다. 아니 스스로 자신의 노후 불행을 만들어 쌓으며 살았다. 말 그대로 자업자득이지만 불쌍하다. 모두가 다 가련한 삶이다. 가장의 탈선이 여러 사람의 불행을 초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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