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보다 못한 자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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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보다 못한 자식들
  • 보은신문
  • 승인 1997.05.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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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수(김남수 한의원 원장)
어느 교회 목사의 청탁을 받고 의료 혜택이 거의 못 미치는 시골에서 노인들을 대상으로 진료봉사를 하고 있다. 노인들만 살고 있다는 시골의 현실에서 그대도 부부가 함께 살고 있는 노인들은 행복한 편에 속한다. 독거노인들의 애환이 더 크다, 조금만이라도 치료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얘기하고 가정환경과 가족관계를 물으면 거의 대부분이 눈물을 글썽거리며 말문을 열지 못한다. 이 세상에는 태어날 때부터 모든 사물이 빚을 지고 있다. 자식은 부모에게, 도시사람은 농촌사람에게, 제자는 스승에게, 지고 있는 원초적인 빚을 항상 걸머지고 사는데 이것을 갚기는 커녕 잊고 지내는 것이 다반사이다.

모든 사물이 호환 관계로부터 시작하여 끝이 나야 됨은 틀림없는 사실이나 원래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진 빚을 조금이라도 갚으려 한다면 자신을 길러 주신 부모의 빚이 제일 우선한다 하겠다. 2~30년 길러 준 부모의 빚을 갚는일이야말로 은혜를 보답하는 일이겠으나 빚이 얼마나 되겠느냐는 문제에는 어느 누구도 대답할 수 없다. 영어에 「Give & Take」라는 말을 젊은이들은 자주 쓰고 있다. 「주는 것이 있으면 받는 것도 있다」라는 말인데 우리들은 부모들에게 받아만 왔지 주지는 못하고 살아 온 것 같다. 이번 진료에서 어느 할머니가 관절염과 마음의 병까지도 호소하며 말을 건네자 옆에 있던 다른 할머니가 「아들이 법조계에 있는데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일러주자 얼굴을 떨구며 금방 눈물이 글썽거리는 모습이 되었다.

나는 진찰을 한 후 「할머니의 병은 법원에 가셔야 마음의 병이 모두 낳는다」고 말하고, 한참 동안을 말을 잊고 말았다. 「어떻게 키운 자식인데 남의 자식 얘기를 함부로 하는 거여!」라고 말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자식이 무슨 필요가 있어! 이웃보다도 못한 걸」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아픈 구석을 건드리는 것 같아 참고 말았다. 외국에서 오랫동안 생활하고 돌아온 선배의 말을 빌면, 서양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부러워하는 것 중에 친절과 경로사상을 들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잘못 알고 있는 것도 있겠지만 그래도 서양사람들이 아직도 우리나라를 생각할 때 나이 많은 노인들에 대한 존경심과 보살핌에 대하여 특별한 것으로 소문이 나 있다 한다.

이들이 우리들의 관습이나 풍습에서 절대적으로 가정장적인 유교사상과 모계에 의한 자식교육에 관하여 관심을 갖고 이 것을 배우려 한다는 것은 비단 선배의 말로 전해 듣지 않아도 심심찮게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 이 들이 우리에게 경로사상을 가르친다면 과연 무엇을 보여줘야 하나 망설이게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삐뚤어지고 파행되어 가는 우리들의 가정에 대해서 경로사상에 관한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특히 신세대 며느리들의 시부모 사랑은 텔레비전에 연속극화 되지 않아도 일반적인 생각들이 「시부모와 자신들은 거의 무관」으로 못 박고 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신세대 며느리도 있지만 공통적으로 친정 어머니의 경로사상과 가족제도에 민감한 반응이 있다고 하겠다. 친정부모들이 부모 공경에 유달리 신경을 쓴 후세들은 시집을 간 후에도 시부모의 공경정신은 그대로 답습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친정에서 노인공경을 게을리 한 신세대 며느리는 시집을 가서도 똑같이 시부모를 멀리 한다는 간단한 이론이다. 어느 누가 힘없고 냄새나는 늙은 부모를 모시기 좋아하겠는가 만은 현 시골의 사정은 겉에서 보기 보다 심각하다. 심지어는 돌아가신 줄도 모르고 있다가 한찬만에 이웃에 의해 사체로 발견되는 모습을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자기 자식을 위해 평생을 일하다가 끝에는 자식들로부터 외면 받고, 홀로 수족을 제대로 못 쓰는 첫지에서 겨우 입에 풀칠하며 구차하게 생명을 연장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고통 없이 일찍 죽을 수 있느냐」며 상담을 하는 노인들을 생각하면 절로 숙연해 지면서 「부모를 버린 자식들」에 대해 욕이라도 해주고 싶은 심정이다. 끝까지 자식들에게 무엇이라도 하나 더 해주고 싶고, 자신은 먹고 살 힘도 없으면서도 자식 식구들이 오면 「내자식이 최고」로 인정하며 위안해야 하는 늙고 병들은 부모들을 이대로 방치하여야 하겠는가. 가정의 달인 5월은 잔인한 달이다. 도시에 나가 사는 자식들은 2세들에게 카네이션을 받아 들고 그 들과 함께 외식하며 서로 선물하고 즐겁게 보내는 동안 이 들의 부모는 시골에서 눈물만 흘리며 살고 있으니 잔인 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카네이션이 무슨 구세주이겠는가?」진정 자신이 기르고 물주며 정성이 담긴 꽃을 부모에게 달아 들여야 한다. 마음이 담겨있지 않은 꽃은 필요 없다. 자녀의 학교, 회사등 조건 때문이라고 둘러대는 자식들은 필요 없다. 이 기회에 우리들의 부모에게 진정한 마음에서 우러나는 예쁜 꽃과 함께 실질적으로 마지막 남은 여생을 자식들의 보살핌으로 마감할 수 있도록 빚을 갚자. 만약 빚을 갚지 못한 채 부모가 모두 돌아가신 다면 그 빚은 우리들의 후대로 누적되어 인간이기를 포기 할 수밖에 없다고 선포하고 싶다.

<정이품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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