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혁 보은군수 특강 친일발언 한 적 없다 ... 친일파로 매도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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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혁 보은군수 특강 친일발언 한 적 없다 ... 친일파로 매도하지 말라
  • 강대식
  • 승인 2020.06.18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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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8.26. 보은군이장협의회 워크숍에서 정군수 특강 내용에는 친일 발언이 없었다. 군내 어느 신문사 기자가 정군수의 특강 약 100분 중 앞부분 30분은 빼고 나머지 70분의 내용을 현장에서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 페이스북 내용 중 어디에도 정군수가 친일발언을 하지 않았음에도 서울 소재 모방송이 왜곡·날조하여 보도했다. 정군수 특강 녹취록을 중심으로 사실을 밝히고자 한다.
한편 정군수는 해외 최초로 미국 글렌데일시에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하는데 최고 공로자이고 보은 평화의 소녀상 건립비문을 썼으며 친구인 전 미국 캘리포니아 주 하원의원으로 ‘일본 위안부 사죄결의안’을 발의해 의결에 앞장선 ‘마이크 혼다’의원을 초청, 축사를 하게 했다.
또 정군수는 4·19 학생혁명 참가자로 매년 4월과 11월 서울 수유리 4·19 국립묘지를 참배하는 애국심 강한 사람을 친일파로 누명을 씌우는 것은 정군수를 너무 모르고 하는 무책임한 망발인 동시에 명예훼손이다.

1. 서울 모방송 보도
가. 8월 28일 밤 모방송 보도 내용 (1)
“보은군의 ‘아베’… 이장들 앞에서 ”日 배상 다 했다.“ 앵커 : ”아베 정부의 입장과 똑같은 발언을 하는 사람 정상혁 충북 보은군수입니다.“
“정군수는 이장들 2백명이 모인 자리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하더니 ”일본이 준 돈 5억불로 한강의 기적을 이뤘다. 한국은 배상을 받고도 계속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논란이 일자 정군수는 남의 얘기를 전한 것뿐이라고 해명했지만 문제의 발언은 군수 퇴진운동으로까지 확산되고 있습니다.”

● 녹취록상 정군수 발언 :
 …그걸 마중물로 인해서 경제개발 1차 계획, 2차 계획 하는데 그 돈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다. 박정희 대통령이 홀랑 까먹은 게 아니다. 이거야. 그거를 국민들이 간과하고 있다. 아니다 이겁니다. 일본이 돈을 받아서 우리가 그 가난했던 세끼 밥도 못 먹고 산업시설 아무것도 없고 구미공단, 울산, 포항 산업단지 만든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한국의 발전의 기본은 5억불을 받아서 했다. 이게 객관적인 평가입니다. 그러면서 박대통령이 그 때 뭐라고 했냐? 하면 “지난 수백년간 일본은 우리 독립을 말살하고 우리 부모형제를 살상했고 우리 재산을 착취했다. 과거만을 따진다면 일본은 우리의 불구대천 원수이다. 그러나 이 각박한 국제사회에서 아무리 어제의 원수라도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위해 필요하다면 그들과 손을 잡아야 하는 것이 국리민복을 위한 현명한 대처가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국민들에게 박대통령이 호소했던 거예요. 그러니까 이 사람은 실용주의자고 현실주의자였다. 역사가들이 그렇게 평가했습니다.“

● 인용 근거 :
(1) 조선일보 2019.07.11. 양성훈 주필 칼럼
청구권 자금 5억 달러는 당시 日 외환 보유액 24%, 그 돈으로 경제기적 이뤄. 1대 29 GDP 격차 이제 1대 3… 피해의식 아닌 日 극복 성공한 자부심으로 일본 바라봐야 한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에 포함된 청구권 협정은 “한국의 일본에 대한, 일본의 한국 내 재산에 대한 국가나 개인 청구권이 완전히 최정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대신 한국은 보상금으로 5억 달러가 넘는 외화와 물자를 받았다. 이 돈은 ‘한강의 기적’ 마중물이 됐다.”
(2) 1976년 12월 정부(경제기획원)가 발행한 ‘청구권 자금 백서’에 당시 남덕우 부총리의 발간사를 보면 “해방후 단절되었단 한·일 관계가 1965년 12월 정상화 되므로서 양국이 경제협력에서 새로운 장을 펼치게 되었다…. 한·일 국교정상화와 함께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무상 3억불, 유상 2억불 모두 5억불의 청구권 자금을 1966년부터 1975년까지 10년간에 걸쳐 들어오게 되었다. 이 대일청구권 자금은 농·수산업의 근대화와 중소기업육성, 종합제철 건설과 다목적댐·도로·항만·전력 등 주요기간 산업육성에 효율적으로 사용되었다. 또한 청구권 자금은 1960년대부터 시작된 우리나라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수행에 있어서도 효과적으로 사용된 것도 사실이다.”
청구권 자금 백서상 세부사업 내역에는 ‘농림부분 7개 사업 38,857,000불, 수산 부문 11개 사업 27,176,000불, 광공업 부문 5개 사업 7,799만불, 과학기술개발부문 10개 사업 20,125,000불, 사회간접자본 및 기타서비스 부문 18개 사업 300,000불, 기타 기관별 사업내역 3개 사업 200,916,000불, 한화 20억원 등이다.

나. 8월 28일 저녁 모방송 보도내용 (2)
(정상혁/충북 보은군수) “위안부 그거 한국만 한 거 아니다. 중국도 하고 필리핀도 하고 동남아에 다 했습니다. 그런데 (일본이) 다른 나라에 무슨 배상한 것이 없습니다. 한국에 5억불 줬잖아요.” 그러면서 한국이 계속 사과를 요구하는 걸 일본인 다수가 납득 못한다고 하더라며 아베 정권과 똑같은 발언을 쏟아냅니다.
(정상혁/충분 보은군수) “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이 박근혜나 박정희 대통령이 일본 수상하고 사인을 했으면 그건 지켜야 되는 거 아니냐… 그걸 무효화하고 돈 가져가라. 아니다.”

● 녹취록상 정군수 발언
 … 우드볼 이번에 아시아 게임을 하는데 일본 사람이 왔을 때 제가 물어 봤어요. “일본사람이 한국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한·일 관계에- 그런데 그 사람이 얘기하는게 참 “나도 이해를 못합니다. 나 한국 굉장히 좋아합니다. 그리고 일본에 한국을 좋아하는 사람이 너무너무 많습니다. 아베가 절대 극우파의 지지를 받아서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저렇게 하고 있는데 언젠가는 일본의 역사에서 비판 받을 겁니다.” 그런데 그 일본 사람이 저한테 “군수님 솔직히 제가 얘기할까요?” 해서 “솔직히 얘기하라.”고…
“그런데 일본 사람들은 한국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위안부로 그걸 한 게 한국만 한 게 아닙니다. 중국도 하고 필리핀도 하고 동남아에 다 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나라에 무슨 배상해주고 그런 게 없습니다. 한국은 5억불 줬잖아요? 그 때 한·일 국교정상화 할 때 모든 것이 다 끝났다고 일본사람들은 생각하고 있다.” 두 번째는 2015년에 박근혜 대통령이 위안부에 대해서 일본 수상하고 사인하고 돈 줬잖아요. 다른 나라에 하지 않은 것을 우리는 한국에 두 번의 도움을 주었고 이걸로 우리는 끝났다고 생각한다. 일본사람 대다수는 그런데 한국은 아니다. 계속 사과하라. 한·일 국교정상화에서 돈을 준 것은 사과한거나 마찬가지다. 그 속에 들어있다. 일일이 다 그걸 사과하고 그건 아니다.“ 일본 사람들 생각이 그렇다는 거예요.
“그런데 자꾸 뭐 내놔라. 지금 뭐 어떻게 해라. 계속 한국 대법원 판결에도 이러쿵 저러쿵, 이것은 납득할 수 없다. 일본 사람들이 한국을 아끼는 사람들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그런 얘기를 하는거예요. 그 사람; 이만의 얘기인지, 일본사람들의 전체 의견인지 저도 몰라요. 그러나 자기가 “일본사람들의 대다수가 한국을 싫어해서가 아니다. 그런데 자꾸 그렇게 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이 박근혜나 박정희 대통령이 일본 수상하고 사인을 했으면 그건 지켜야 되는 거 아니냐? 그거를 무효화하고 돈 가져가라. 아니다. 그럼 과거의 세계의 국가 대표들이 협약하면 다 그게 공인된 약속인데 그걸 안지킨다고 그러니까 일본에서 한국은 믿을 수 없는 나라다. 이렇게 생각하게 됐다.” 그런 얘기를 하는 겁니다.

● 인용 근거
2019.06.13.부터 6.18까지 보은 속리산에서 열린 제 11회 아시아 우드볼대회 개최기간인 6.16 오후 C구장에 선수와 관객 등 수백명이 모였는데 정군수가 구장 여기저기를 돌며 거기 모인 사람들에게 감사인사를 하던 중 어떤 사람이 일본어로 뭐라고 말해서 대화가 안 되므로 누구 일본말 하는 분 없나요? 했더니 60대의 한국 남자가 “저 일본인 제가 데리고 왔다”고 해서 정군수와 인사를 나누었는데 그 한국인이 일본인에게 보은군수라고 소개하여 그 일본인과 대화를 하게 되었고 같이 온 한국인이 통역을 하였는데 이때 일본인의 말을 정군수가 메모하고 이 내용을 이장들에게 소개한 것이었다. “이 내용을 거두절미하고 일본인이 한 말을 정군수가 말한 것처럼 왜곡 보도하여 정군수가 일본을 두둔한 것처럼 사실과 다르게 시청자들이 오해하도록 한 것이다.”

다. 8월 28일 저녁 모방송 보도내용(3)
(정상혁/충북 보은군수) (1)최근 불붙은 일본 불매운동에 대해서도 한국 손해가 더 클 거라고 말하더니 (2)독일의 지배를 받았던 폴란드 사례를 듭니다. “(폴란드인) 아무도 독일을 욕하지 않는거야. 왜? 힘이 없는 놈이 독일한테 계속 앙알거리고 버텨봐야 어린이가 어른한테 발길질로 한 대 얻어맞고 나가 떨어지는 그런 꼴이 된다 이거야.”

(1) 녹취록상 정군수 발언  :
 …그런데 사람들이 지금 그러잖아요. 여기 신문에 났어요. 우리가 일본담배 안 피우고 맥주 안 먹고 일본물건 안 팔고 안 먹고 안사고 안 가도 그런데 결과는 뭐야. 우리가 일본 것을 팔아주는 것보다 일본이 한국것을 팔아주는 게 2배라는 거예요. 이것을 숙명여대 신세돈이라고 하는 교수가 발표했어요. 누가 손해냐? 한국이 일본상품 불매운동 하는데 일본도 “우리도 한국 것 안 써!” 그러면 더블로 우리가 손해를 본다 그런 얘기입니다.

● 인용 근거
조선일보 2019.7.31. 보도내용 “일본이 맞불 불매운동하면 우리기업 타격 더 커 한국 의류 수출이 수입의 2배, 채소는 16배 많아 국내에서 일본산 불매운동이 격화하는 가운데 일본에서도 맞불 불매운동이 일어날 경우 국내 수출업체가 입을 타격이 일본보다 훨씬 크다는 경제학자의 분석이 나왔다. 신세돈 숙명여대 명예교수는 최근 민간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 홈페이지에 ‘한·일 불매운동의 손익계산서’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신교수는 불매운동이 벌어지는 품목의 대일수출액을 수입액으로 나눈 비율로 일본의 보복 불매운동시 취약도를 분석했다. 해당 비율이 1이 넘으면 수입보다 수출을 많이 하기 때문에 불매운동에 더 취약하다는 뜻이다. 예컨대 의류의 경우 지난 해 대일본 수출액은 8,073만 달러였고 수입액은 절반인 3,990만 달러였기 때문에 취약도가 2로 계산된다. 분석결과 담배(75.6)가 일본의 보복 불매운동에 가장 취약한 것으로 예상됐다, 지난 해 담배의 대일수출액은 3억 241만 달러인데 비해 수입액은 414만 달러에 그쳤다. 그 밖에 채소류(16.0), 신발·모자류(8.1), 메리야스 편직물(7.5), 가구·침구·램프류(5.3), 당류과자류(4.1), 의류(2.0), 주류(1.8) 등 대부분의 불매운동 품목이 일본 보복에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현재 불매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유니클로, ABC마트 등 의복·신발·맥주류는 우리 대일 수출 규모가 수입 규모보다 몇 곱절 크다,”며 “일본에서도 한국산에 대한 보복 불매운동이 일어나면 우리 수출업체가 입을 피해가 훨씬 클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신교수는 “아직까지 일본에서 뚜렷한 한국산 불매운동 움직임이 없다고 해서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만일의 상황에 대비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2) 녹취록상 정군수 발언
제가 4월에 폴란드 갔습니다. 왜 갔느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지역의 자치단체장 세계 한 4백명을 불러놓고 1주일 동안 이 나라에는 문화재를 어떻게 관리하고 있나. 여기는 어떻게 잘못 관리해서 제외 됐나. 여러 가지 그거를 세계적인 전문가들이 와서 발표하고 질문 받고 이렇게 했어요. 그런데 거기 가서 제가 깜짝 놀랐어요. 나는 폴란드라는 나라가 별 볼일 없는 나라인 줄 알았어요. 왜? 그 전에 공산주의에서 민주주의로 된 게 1992년도인가 됐는데 헝가리하고 각 공산주의에서 엉망진창인 걸 우리가 배웠어요. 그 옛날의 생각을 가지고 깜짝 놀랐어요. 잘 살아요. 도로에 휴지 한 조각이 없어요. 강이 시내복판을 흐르는 강에도 휴지조각 하나 없어요. 나 깜짝 놀랐어요. 그런데 폴란드가 독일하고 러시아하고 오스트리아한테 18세기 후반에 점령당해서 123년간 나라가 없어졌어요. 폴란드가. 우리가 36년간 지배 받았어요. 이 사람들 123년간 지배받았어요. 그래서 1918년 11월 1일에 독립을 찾았어요.
그런데 2차 대전이 일어나면서 독일이 여기를 제일 먼저 쳐들어 와서 독일군이 폴란드 인구의 5분지 1인 600만명을 학살했습니다. 600만명. 생각해보세요. 600만명 123년간 지배당했는데 겨우 독립한지 몇 해 안됐는데 여기에서 다시 들어와 가지고 독일의 침공을 받았어요. 엄청난 독일은 원수 나라에요.
그런데 1989년에 공산주의였다가 민주주의로 자유선거를 통해서 1992년 12월에 민주주의 국가가 탄생된 거예요. ‘바웬사’라고 하는 노동운동하는 사람이 총선에서 당선된 거예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폴란드가 1992년부터 지금까지, 작년까지 평균 4.2%의 경제 성장을 하고 있어요.
저한테 그 교민이 얘기하는데 아 제가 감동 받았어요. 어떻게 92년에 독립한 나라가 이렇게 잘 살 수 있느냐? 그러니까 그 얘기를 하는 거예요. 독일한테 야 임마. 돈 내놔. 보상해. 얘기하는 사람이 없다 이거예요. 일본 애들이 한국 향해서 자다가 잠꼬대 하듯이 “독도는 우리땅이여!” 그런데 독도가 일본 땅이에요?
그런데 거기서 술 취한 놈처럼 “독일한테 우리도 보상받아야 되잖아? 혼자 미친놈 취급하고 거기에 동조하는 사람 없어요. 언론이나 안 한다니까 그러니까 독일의 감정을 건드리지 않는 거에요. 유럽이 2017년도에 유럽연합이 2.4% 성장하고 2018년에 1.9% 성장했는데 폴란드는 2017년에 4.8%, 5.1% 18년에 이렇게 승승장구 했어요. 그래서 왜 그러냐? 어떻게 이렇게 했느냐? 그런데 독일이 폴란드에 6천개의 공장을 세웠어요. 폴란드인이 거기 30만명이 취업하고 있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과거의 역사에 독일한테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가 600만명이 인구의 5분의 1이 학살을 당했는데 원한을 품으면 지금 독일놈들 그럴 거 아니에요. 아무도 독일을 욕하지 않는 거에요. 왜 힘이 없는 놈이 독일에게 계속 앙알거리고 그렇게 해봐야 어린애가 어른한테 발길로 한 번 차면 싸대기 한 번에 나가떨어지는 그런 꼴이라 하며 그런 무식한 짓은 안한다 이거야. 폴란드 사람들은. 그래서 내가 물었어요. 아 이 국민들의 종교가 뭐냐? 그러니까 90%가 천주교 신자야. 아하 이게 종교의 힘이구나. 적을 사랑하고 원수를 사랑하고 용서해주고 종교의 힘으로 독일에 대한 감정을 스스로 가라앉히고 그러니까 독일은 미안하고 그러니까 계속 더 지원해주고 앙알거리고 계속하면 독일이 또 침입할 수 있잖아요. 아닌 거야. 두 나라가 평화를, 평화롭게 사는 거야. 폴란드 사람들이 독일 와서 공장 큰 게 들어오면 고맙다고 그럭 최대한 그런데 폴란드의 연간 수출액의 20%를 독일에 수출하고 있더라구요, 제가 교민한테 그 얘기를 들으면서 야 대단한 사람이다. 폴란드 사람들이 인내심도 조호고 지혜로운 사람들이다. 지금 독일하고 붙어봐야 득될 것 아무것도 없잖아요. ”언젠가 슬픈 역사는 기억은 하되 오늘 그걸로 해서 우리가 발목 잡는 일은 하지 않겠다.“ 그런 거에요. 그러면서 국민들이 과거사나 일부러 안보 이슈로 독일을 비판하지 않고 극한적인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고 독일 국민들 감정을 자극하지 않는다. 그 얘기를 교민이 해주더라고요. 그래서 이 사람들이 폴란드 사람들이 노리는 거는 더 많은 독일이 폴란드에 투자를 해서 폴란드가 국부를 하고 더 강대한 나라가 되는 게 이 사람들의 희망이에요. 과거의 원한을 가지고 씹고 씹고. 껌은 씹으면 다 씹고 나면 쓰잖아요. 그런 짓 안한다는 거에요. 이를 악물고 지금 과거의 슬픈역사는 기억하되 오늘 그걸로 해서 불편한 관계를 가질 필요 없다. 그 교민이 나한테 그 얘기를 해주더라고요.

● 인용 근거
정군수가 2019.04.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도시 지자체장 회의에 참석하여 폴란드에 살고 있는 한인 교민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정리한 것임.

2. 녹취록상 정군수 특강 마무리 말
 … 그리고 우리가 일본사람을 매도하는 건 내 생각은, 이건 제 생각이에요. 그것보다 아베를 규탄하는 쪽으로 가야된다. 그런데 언젠가는 아베는 국민들에게 지가 정치적인 야욕을 이걸 달성하기 위해서 그런거니까, 언젠가는 지탄을 받을 날이 올 것이다. 한국과 일본은 일본이 아무리 한국을 지랄해도 악을 써도 한국 사람이 일본을 아무리 미워해도 숙명입니다. 우리가 이웃에 이사 가서 이웃 더러우면 보따리 싸들고 이사 가면 돼요. 한국사람이 이사 갈 데 있어요? 한반도 떠가지고 갈거에요? 일본이 다른 데로 이사 갈 수 있어요? 없잖아요. 숙명이에요.
그러면 우리가 서로 이웃에 과거 역사는 아프지만 현재 서로 돕고 그래서 우리의 후손들도 이웃나라로 서로 돕고 사는 게 그게 헌명한 방법이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나쁜 이웃 여기 왔어도 인정해 줘야 돼요. 설득하고, 그렇지 않아요?
 …그런데 트럼프는 뭐여? 한국을 아끼는 사람이여? 뭔데 괜찮대? 뭐가 괜찮어? 이북은 감히 미국을 향하여 못 쏠거야. 그건 한국사람도 알어. 미국이랑 북한이 붙어가지고 개구리 펴지듯 펴질텐데 그게 동해로 쏘는 게. 걔들은 남한으로 생각하고 쏘는건데 괜찮아, 괜찮아. 야 이놈이 트럼프가 저게 아베랑 똑같은 놈이야. 정신나간 놈인데 한국 사람들이 니 말을 믿어 주겠느냐? 나같이 6·25를 겪은 장본인들이 있는데 그렇잖아요?
이장님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나라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에 보은군 어려움에 처했을 때에 우리 이장님들이 중심을 잡고 내 마을, 우리면, 보은군을 어떤 마을 어떤 면, 어떤 보은으로 가꿔갈 것인가? 여러분들의 각오가 결과를 좌우할 것이다. 여러분에게 기대를 합니다. 저도 초지일관 정말 열심히 살겠습니다.
그리고 방금 말씀드린대로 귀농·귀촌 하신 분들은 여러분들이 좀 끌어안아서 낯설고 물 설은데 와서 정붙이고 사는 게 쉬운 일 아니에요. 그리고 그 분들은 여기서 오래 살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 잘 몰라요. 그래서 실수를 할 수 있고 잘못도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포용해서 이해를 해서 그 사람들 하나하나 사귀고 보면 정말 좋은 살마이 많아요. 그래서 앞에 말씀 드렸지만 보은에 오신 분들이 뿌리를 여기다 내리고 떠나지 않고 여기 살 수 있도록 생각해 보세요. 40, 50, 60되어 여기서 뿌리내리겠다고 왔다가 보따리 싸가지고 다른 데로 떠나는 그 심정이 어떨까? 그렇잖아요. 부탁합니다. 이장님들이 보은군 위해서 내가 중심체라는 자긍심을 가지고 해주시고 귀농·귀촌 하신 분들 그리고 작은 민원을 이렇게 확대하지 말고 면장이랑 상의하고 구느이 해당과, 군수랑 상의해서. 저는 언제나…

3. 친일파로는 할 수 없는 정군수의 남다른 행적

가. 해외 최초 미국 LA 글렌데일시 평화의 소녀상 건립 유공
정군수가 2013.01.15. 보은군 중학생 미국연수단을 인솔, 자매도시인 미국 LA글렌데일시 로즈먼트 중학교에 갔을 때 한인교민단체인 한미포럼 회원 한 사람이 찾아와 자기들이 “해외 최초로 평화의 소녀상을 이 곳 글렌데일시 도서관 앞 잔디광장에 세우려고 4년 째 부지사용 승낙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고 했다. 정군수께서 글렌데일 시장을 만날 계획이 있다고 들었는데 시장을 잘 설득해 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이튿날 정군수는 11시에 글렌데일시청을 방문하여 ‘프랭크 퀸테로’시장을 만났다. 인사를 나눈 후 “나 시장님께 꼭 드릴 말씀이 있는데 좀 시간이 길어져도 양해를 해달라.”는 말을 했다. “우리 한국인들은 미국이 자유와 정의를 존중하는 나라로 믿어 왔는데 시장님은 일본인들이 한국을 36년간 악랄하게 탄압했고 특히 한국 등 동남아 여러 나라의 나이 어린 소녀들을 일본군 성노예로 삼은 죄악을 모르시나요? LA거주 한국 교민들이 일본의 이 죄악을 만천하에 알리고자 글렌데일 시청에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할 부지를 달라고 지난 3년간 요청했는데 시장님은 일본 교민들의 반대를 받아들여서 계속 거부해 왔다고 들었습니다.” “시장님! 지난 2007년 7월 30일 캘리포니아주 하원에서 ‘일본군 위안부 사죄 HR121 결의안’을 의결한 것 알고 있습니까? 특히 이 결의안을 발의하고 의결에 앞장선 장본인이 바로 일본계 ‘마이크 혼다’ 의원 이었습니다. 이미 6년 전에 이러한 일본의 죄악이 전세계에 알려졌기 때문에 소녀상 건립부지를 승낙해 주어도 이의할 시민들이 없을 것입니다.”
정군수는 어렸을 때 친구의 누나가 위안부로 끌려가 필리핀에서 일본군의 성노예로 죽었다면서 미국이 일본의 잘못을 응징한다는 의미로 한국 교민들의 요청을 들어달라고 했다. 이어서 정군수는 “세계 각국의 5,700만명 한국인 모두가 간절히 원하고 있고 또 미국과 전세계인들에게 ‘일본의 죄악’을 알려서 앞으로 지구상 어느 곳, 어느 나라에서도 어린 소녀들을 성노예로 삼는 일이 다시 없게 하자는 의미로 글렌데일시에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하자. 이 역사적인 ‘평화의 소녀상’이 글렌데일 시청에 건립되면 이 도시는 세계인들이 주목하는 도시가 될 것이고 시장 당신은 한국인들의 은인으로 기억될 것이며 미국인들이 오래오래 기억하는 위대한 시장이 될 것이다.” 정군수는 시장의 손을 잡고 눈물로 호소하였다.
퀸테로 시장은 정군수에게 “나는 오늘까지 한국교민들은 부지를 달라하고 일본교민들은 부지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하여 중립을 지켜왔는데 오늘 정군수 말을 듣고 감동받았다. 오늘부터 부지 제공에 앞장서겠다. 시의원들을 잘 이해시켜달라면서 특히 일본 교민들이 많이 살고 있는 그 지역 시의원을 설득하라.”고 하였다.
한인교민 지도자들과 함께 시의원들을 만나 설득한 결과 7명 중 6명의 동의를 얻게 되어 그 해 7월 30일 오전 11시 해외최초로 글렌데일시청 부지에 ‘평화의 소녀상’을 제막하게 되었다.
정군수는 “제막식 끈을 당길 때 ‘소녀의 얼굴’이 나타나는 순간 감격의 눈물을 흘리던 그 기억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나. 평화의 소녀상 건립 기쁨도 잠시, 일본의 철거소송에 시달린 정군수
정군수가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에 참석하고 온 얼마 후에 LA한인회 임원 한 사람이 전화로 “군수님! 일본교민들이 소녀상 철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는 연락을 받았고 그 후 한달에 한두번씩 전화가 오는데 “군수님 일이 커지네요. 일본대사관까지 나서는 것 같습니다.” 어떤 eo는 “진행되는 게 심상치 않네요. 잘못하면 소녀상이 철거될지도 모르겠어요.” 이런 소식을 들으면서 도와줄 길은 없고 대법원 재판이 끝날 때까지 가슴 졸이면서 기도를 했답니다. 어느 해 미국 출장길에 LA교민 지도자들을 만나 감사와 격려인사를 하면서 힘을 모아 대응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만약 소송에 패하여 평화의 소녀상이 철거된다면 우리 한국인들이 받을 실망과 일본인들의 기고만장한 모습을 생각할 때마다 남모르는 고통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약 3년여 계속된 재판에서 현지 교민들의 노력으로 승소를 하게 되어 소녀상 철거는 면했지만 스소하기까지 애쓰신 많은 교민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재판의 승소는 미국 등 국내·외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다. 제124회 로즈퍼레이드 태극기 기수로 참가
미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LA 패사디나시 주최 로즈퍼레이드는 매년 1월 1일 오전 8시부터 12시까지 4시간 동안 중심지 도로 8km 행진을 한다. 2013년 1월 1일 제124회 로즈퍼레이드에 한국계(PAVA팀) 교민자녀 중·고생 200여명이 1년간 연습을 하고 세계 94개 팀과 미국 94개 팀이 참가한 가운데 새벽 2시에 모여 현장에 7시 경에 도착, 8시 20분경 24번째로 입장하였다.
이 PAVA팀의 태극기 기수로 당초 어느 도지사를 선정할 계획이었으나 최종 이사회에서 보은군수가 선정되었다. 이러한 결정 배후에는 보은군 중학생 미국 연수로 알게 된 LA한인회, 충청향우회, LA민주평통, LA북부한인회, G.C.C대학, 로즈먼트중학교, 충남북난치병환자 무료치료를 해준 슈라이너 병원, 천주교 재단 애피스쿨 고승덕 신부, 선데이저널 변흥진 사장, 우리병원장 안승록 박사, 우리방송 김홍수 사장, LA한인 상공회의소, LA KBS 아메리카 서현철 사장, 보잉사 김유종 차장, LA중앙일보, LA 한국일보, LA 금강안경원 이복미 사장 등이 PAVA에 추천을 했다고 들었다. 대형 태극기를 들고 4시간 넘게 8km를 행진하는데 도로변 좌석 1인석 95불, 맨 뒤에 좌석 45불인데 퍼레이드 2일 전에 좌석표는 다 매진되었고 거리 공간에도 입추의 여지없이 구경 나온 인파로 넘쳤다. PAVA 행렬이 지나는 도로변 사람들이 “싸이 코리아, 아저씨, 안녕하세요”를 연호했다.

라. 미주동포후원재단 수여 ‘자랑스러운 한국인상’ 수상
2013년 8월 8일 정군수는 미주동포후원재단으로부터 내국인으로는 2010년 김연아, 2011년 고 이만섭 국회의장에 이어 2016년도 ‘자랑스러운 한국인상’을 받았다. 특히 정군수는 본인이 수상 후보자 공모에 응모하지 않았는데 미주동포후원재단에서 직접 지정하여 시상을 했다. 공적은 로즈퍼레이드 태극기 기수로 한국의 위상 제고에 기여한 것과 해외 최초 글렌데일 평화의 소녀상 건립에 크게 공헌한 것 이었다.

마. 위안부 할머니를 남달리 보살펴드린 정군수
2010년 7월 1일 보은군수에 취임한 이후 속리산면 사내리에 거주하던 이옥선 할머니를 수시로 찾아 불편한 점이 없으신지 보살펴 드렸다. 특히 할머니가 쌀이 떨어지면 “군수님, 나 쌀 떨어졌어.” 전화를 받으면 즉각 쌀을 전해드리는 등 이웃집 할머니와 친구해서 잘 지내시도록 했는데 몇 해전 그 할머니가 별세하시자 경기도 광주로 가셨다.
2019년 5월 3일 이옥선 할머니는 보은군청에 와서 정군수를 만나 속리산 어느 노인에게 빌려준 돈을 받아달라는 부탁을 하였고, 또 자기는 장고치는 걸 좋아하는데 장고가 없으니 하나 해달라는 말씀을 하셔서 5월 28일 영동군수와 보은군수 명의의 장고를 보내 드리기도 하였다.
/강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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