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인형주자(靑瓷人形注子)의 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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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인형주자(靑瓷人形注子)의 출현
  • 이장열 (사)한국전통문화진흥원 이사장
  • 승인 2020.05.0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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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열심히 살다보면 일생에 한두 번은 큰 기회가 찾아온다고 한다. 이미 타계한 대구골동계의 유명한 김모씨가 고려청자인형수주(후에 대한민국국보167호로 지정)를 입수하게된 것은 바로 그런 드문 기회였다. 높이 28㎝, 바닥지름이 19.7㎝인 아름다운 비색의 이 고려청자는 인물의 형태를 하고 있는 주전자다. 물주전자인지 술주전자인지 아니면 그냥 장식용이었는지는 잘 모르나 그 크기와 위에 뚫려있는 주입구와 앞쪽에 출구가 있음을 볼 때 실제로 사용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상감은 없고 요철조각으로만 되어있으며 옛스런 복장에다 머리에는 봉황장식의 보관을 쓴 그 인물은 분명히 도사다. 얼굴은 아래쪽에서 보면 약간 웃음을 띈 것 같은 신비한 상이지만 앞에서 보면 현실적인 복스럽고 불룩한 볼을 하고 있다. 행동을 보면 양손으로 선도(仙桃, 신선의 복숭아)를 받쳐들고 있는 형태다. 머리 정수리부분에는 구멍이 나 있는데 뚜껑은 없어진 상태다. 거기가 주입구다. 출구는 양손으로 받쳐든 선도 밑에 나와 있는 주둥이로 따를 수 있도록 되어있다. 이런 형태의 인물상은 도교의 신선인 서왕모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중국 한 무제에게 불로장생의 복숭아를 주었다는 바로 그 여신선이다. 처음 이 유물이 출토된 것은 경북 칠곡의 가산에서 한 농부가 밭에서 캐낸 것이라고 했다. 또 팔공산의 구묘를 정리하다가 우연히 발견된 것이라고도 했다. 도굴된 문화재는 형사처벌을 면하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말했을 수 있다. 하여튼 어찌어찌하여 고려시대의 보물 청자가 천년 가까운 긴 잠에서 깨어나 세상에 그 얼굴을 드러낸 것이다. 김모씨는 그 물건을 가지고 온 사람에게 80만원에 샀다. 그 당시에는 해외로 유출되는 문화재가 많았는데 이를 국내에 붙잡아두는 데 큰 역할을한 이가 모 재벌 이모씨였다. 특히 그의 형인 이모 영감은 골동계의 대부였다. 김씨는 그에게 물건을 넘기면서 간도 크게 2,500만원을 불렀다고 했다. 그랬더니 “2,500만원이 얼마나 되는지 아느냐?”고 되묻더란다. 그런데 일이 꼬인 것이 처음에 비싸다고 안샀던 같은 업계의 장모씨가 샘이나서 경찰에 고발을 해 버렸다. 급기야 형사사건화 되었고 재판과정에서 진짜가 갑자기 가짜로 둔갑이 되어버렸다. 청자인형주자 자신은 멀쩡히 눈뜨고 가짜로 둔갑된 기막힌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이 정치재판에서 그 물건을 캐가지고 온 사람은 사기범으로 몇 달간 징역을 살았고, 일이 끝난 후에 물건 값으로 일천만원을 받았는데 돈이 마다리로 한 푸대였다고 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여기저기 사채를 쓰면서 어렵게 살던 김씨는 갑자기 큰돈이 들어오면서 형편이 풀리게 되었다. 김씨가 청자인형주자를 입수한 것은 그로서는 일생의 기회였던 것이다. 그는 그 청자인형주자를 입수한 그때의 감격을 잊지 못해서 자기 명함에다 그 사진을 싣고 다녔다. 타계하기 얼마 전에 가게로 찾아갔을 때 “이제는 술은 못한다”면서 그 명함을 내놓고 아득히 그때의 일을 회상했다. 자- 그러면 내 인생에서 기회는 있었던가? 이 나이에 아직도 기회가 남아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지는 않고... 아마 지나가 버린 것 같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런 기회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때는 정의감에 불타는 시절이라서 내게 이익인지 손해가 되는지도 모르고 그저 불의를 못참고 덤벼들 때라서 기회를 노친 것 같다. 요즈음 젊은이들 같은 지혜가 있었더라면 그 기회를 잡았을 것이고 지금의 내 위치는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인생을 후회는 하지 않는다. 나보다 먼저 승진한 재주꾼들이 장차관에 정치판에 국회의원 까지 한 후배들도 퇴역하니 아무것도 아니더라. 다 부질없는 헛일일 뿐이다. 그저 정도로만 사는 것이 인생을 잘 사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을 때 잘해” 하는 말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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