盲人模像(맹인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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盲人模像(맹인모상)
  • 오계자(소설가)
  • 승인 2020.04.09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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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우룩한 연기 속에 삼겹살이 지글지글 노릿노릿 익어가고, 한 머리는 타고 있다. 드문드문 자리 잡은 테이블마다 상기된 얼굴로 대화가 타 오르는가 하면 작은 소주잔들이 짹짹거리며 부딪는다. 이쪽에는 나랏님 흠담이 타 오르고 저쪽에는 고을 원님의 잘잘못이 피어오른다. 이 당은 어쩌구 저당은 죽일X들이 된다. 도떼기시장이 따로 없다. 다 잘났다. 선거철임을 보여준다.
  바로 오늘까지 사회적 거리두기 집중 시행이었다. 코로나19 감염을 예방하기 위한 정부의 걱정에 잘 지키다가 오늘의 해가 넘어갔다며 나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청정지역을 핑계 삼아 슬그머니 호출에 응했더니 글쎄 같은 생각으로 나온 서너 팀이 있다.  막 주문을 하고 휴대폰 소리에 보니 안전재난 문자다. 거리두기 캠페인 연기란다. 우린 그냥 오늘만 말 안 듣는 문제아가 되기로 했다.   
  어찌 된 일인지 뒷자리 남정네들의 혀 놀림이 심상치가 않다. 미용실에 모이는 아낙들이나 남의 흉보기에 수다스런 줄 알았는데 남정네들의 혀 놀림은 참으로 과감하다. 요즘 젊은이들의 속된 말로 누구를 씹는다. 돌아서면 자신도 그 도마 위에 오른다는 이치를 모를 리 없는데 말이다. 어디선가 지금쯤 나도 씹히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선거철이면 대놓고 상대의 단점을 파헤치는데 시간 낭비 하지 말고, 공약의 숫자에 급급하지도 말고 자신의 정치 철학이나 확실하게 어필하면 좋겠다.  
  대학생들이 교수를 평가 하겠다고 목소리 높이더니 얼마 전에는 고등학생들이 선생님을 평가하겠단다. 늦가을의 벼이삭 같은 어른들도 무언가를 배우고 싶다며 제 발로 찾아간 은사를 화제의 도마 위에 얹어 놓고 혀로 두들긴다. 스승을 폄하 한다는 것은 자신의 자존심을 밟고 침 뱉는 짓 아닌가? 공연히 화가 나서 “그럼 직접 나가서 교수하셔.” 해버렸다.  
  인도의 경면왕이 심심해서 코끼리를 끌어다 놓고 맹인들에게 만지게 한 것은 아님을 실감한다. 맹인들은 저마다 정직한 답을 했다. 꼬리를 만진 자는 진실로 밧줄처럼 느꼈고 귀를 만진 자는 키를 연상 했을 터이다.
  멀쩡한 두 눈과 멀쩡한 정신으로 누군가의 작은 부분만을 놓고 평을 한다는 것은 맹인모상에 비할 바 없이 나쁜 노릇이다. 누군가를 모함하기 위한 거짓이 될 뿐이다. 그렇지 않다면 청맹과니 아닌가. 평생을 함께 살아도 다 안다고 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이다. 어찌 누구를 평한단 말인가. 스승은 스승으로만 바라보면 안 될까. 사소한 사생활까지 분석하려들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도 지금 괜스레 남들 대화에 열 올린다.
  순수문학이 어쩌구 이데올로기가 어쩌구 딴엔 문인들이라고 문학을 논하느라 우리들도 시끌시끌했다. 학교 다닐 때는 옛 문인들이 술을 많이 마시거나 막걸리 집에서 토론하는 것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왜 건강에 해로운 줄 알면서 꼭 술집이어야 하는가 싶었던 나도 만나보니 찻집에서 나누는 대화와 또 다른 맛이다. 역시 삼겹살집은 맘 편하게 떠들 수 있어 좋다. 오가는 잔에는 정도 담고, 시도 한수 담아 마신다. 따뜻한 눈빛도 마신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것들 보다 가슴으로 마시는 분위기에 더 취한다. 이런 날은 시계도 신명이 나는지 더 빨리 돌아간다. 실컷 떠들고 싶은데 시계의 얼굴을 맴도는 짧은 바늘이 12에 가까워 시선을 자꾸만 당긴다. 통금도 없는데 말이다. 가정의 문서 없는 규칙이 더 권위가 있나보다. 다들 일어난다.
  남의 맹인모상 들먹일 자격도 없으면서 오늘 잘난 체 좀 했다. 도떼기시장처럼 시끄럽게 누군가의 흠담에 빠진 뒷자리 남정네들을 보면서 코끼리가 밧줄이라는 맹인들의 답이 얼마나 더 진솔한가 싶어서다.
  밖으로 나오니 마침 주먹 같은 백목련이 꽃잎을 떨어트리는 골목에서 엊그제부터 시작된 21대 국회의원 선거운동 하시는 분들은 허리가 참 유연하다. 나 같은 시골 할매들은 선거철이나 되어야 저런 이들의 허리 굽히는 인사 받는다.
하늘을 향해 내 작은 목소리를 띄워 본다.
  “세상에는 선과 악이, 음과 양이 공존하듯, 옳고 그름이 어우러지겠지요. 그러려니 하고 살겠습니다. 그런데 높으신 분이 코끼리의 귀를 만지며 밧줄이라고 하면 어떻게 할까요? 그냥 모른 척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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