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원자(수필가)
지난달, 십 여명의 가까운 친구들이 소속해 있는 여성산악회에서 전라도 순천에 있는 조계산을 찾게 되었다. 해발 884m의 조계산을, 송광사에서 굴목재를 지나 선암사에 이르는 코스를 가게 되었다. 송광사를 한 번도 가보지 못해 짝사랑을 하고 있던 터라 기대가 많았다. 일주문을 지나 작은 아치형 다리를 건너 경내에 이르니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승보전과 지장전이 자리하고 있었고 우리나라의 삼보사찰답게 잘 정리가 되어 있었다.생각해 왔던 것보다 그리 크지 않아 한 눈에 들어오는 사찰을 전체적으로 둘러보고 산으로 향했다. 사방의 많은 나무들이 조잘거리며 다가오는 겨울이야기를 하다가, 우리를 보고 반갑게 인사를 하였고 오솔길처럼 정겨운 길 위에는 나뭇잎이 쌓여 촉촉한 흙과 어우러져 폭신함을 느꼈다. 그리고 올려다 본 산은 우리를 아늑하게 감싸며 미소지었고, 구불구불한 길이 나무 자체로 계단을 만들어 아래에서 위를 바라보니 동화 속에 나오는 하늘에 닿는 길로 보였다.
난 평소 친하게 지내는 연배인 한 분과 함께 오름 길이 완만하여 그리 힘들지는 않았으나 아주 천천히 올랐다. 산중턱을 지나 작은 산봉우리 정상이 보이는 곳까지 왔을 때, 우리 뒤에서 한 사람이 부지런히 오르더니 우리보고 일행 중 맨 뒤라며 우리의 길을 재촉하였다. 우리는 송광사 법당에 머물렀던 친구들이 오지 않은 것을 알고 있기에, 그리고 숨가쁘게 걷고 싶지 않아 천천히 갈 것이라고 했는데, 그는 우리를 지나쳐 오르더니 빨리 오라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사람마다 체력이 다른 것이라 똑 같이 출발을 했어도 앞서는 사람과 뒤서는 사람이 있는 것이고, 우리에게 맞는 속도로 비록 뒤에 쳐져도 정상까지만 가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그가 야속하기만 했다. 그러다가 내 아이에게 능력에 닿지 않는 것까지 꼭 앞에 서라고 강요하고 무리한 기대를 하지 않았나 반성을 하게 되었다. 각자의 한계는 있고 최선을 다하는 것을, 나의 큰 욕심으로 인해 내 아이들이 상처를 받고 돌아서서 나를 원망하며 고민하지는 않았을까? 궁극적인 자녀교육의 목표는 부모에게서 독립하는 것인데 부모의 입장에서는 언제나 간섭하고 1등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는지......
유년시절 집에서는 닭을 길렀다. 붉은 빛을 띤 암탉이 있었는데 봄이면 알을 품어 앙징스럽고 노란 병아리를 열 마리 정도 깨어나게 하였다. 병아리는 봄 햇살에 어미 닭을 졸졸 따라 다니곤 했고 어린 마음에 너무 귀여워 만져 보고 싶어 병아리를 잡으면 어미 닭은 소리를 지르며 무서운 기세로 달려들어 내 손을 쪼곤 했다.
그러나 병아리가 어느 정도 자라면 각자 돌아다니게 되고 어미의 먹이영역을 침범하면 자기새끼인 줄은 까맣게 잊고 그 닭을 향해 덤비곤 했다. 그러면 그 닭도 어미인줄 모르고 대항하곤 했었다. 어미 닭은 새끼를 자기가 보호해야 할 시기에는 끔찍한 모성애를 보이지만 새끼가 어느 정도 성장하면 자기에게서 독립을 철저히 시키고 있다는 것을 내 아이를 낳고 내 아이를 사랑하면서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부모와 자식의 연을 맺으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유지가 되고 그 틀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품안에 자식이란 말이 있다. 그 때,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과 좋은 기회를 많이 주고 자기의 인생은 자신이 책임져야 하며 개척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심어 주고 아이를 내 종속물이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해야 될 것 같다. 그리고 성장하여 자기 길을 가게 되면 자녀에 대한 집착은 버려야 된다.
병아리가 자라면 어미 닭의 그늘을 벗어나듯이 부모는 지켜보며 정신적인 지주로 존재해야 되는데 우리는 그렇게 정신적으로 독립시키기가 참 어렵다. 이번 산행으로 앞선 자와 뒤선 자를 생각하며 한참 공부를 하고 있을 시기에 있는 내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부담을 주고, 쓸데없는 것까지 지나치게 간섭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을 해 보았고, 나와 인연을 맺고 있는 모든 것에서 떠나 자연 속에서 자신을 객관화시킬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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