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엔 까미노~!(Buen Cam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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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엔 까미노~!(Buen Camino)
  • 박태린
  • 승인 2019.11.07 09:3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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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아이구, 저 멍충이들~!

순례자들이 하룻밤 쉬어가는 알베르게는 새벽 6시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곤한 잠을 자는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전등을 켜지 않고 머리에 헤드랜턴을 쓰고서, 풀어 놓았던 짐들을 밖으로 끌고나가 정리를 한다. 우리 방에 묵었었던 6명중 3명의 기족 순례자가 떠나고 3명이 남았다. 나처럼 발에 문제가 생긴 깜찍한 인형같은 프랑스 처자 스테파니, 아침 잠이 너무 많아 못일어난다는 귀엽게 생긴 스페인 청년 알베르토. 그는 스테파니에게 관심이 있는지 말도 한마디 못 건네면서 주위를 맴돌며 떠나지 못하고 있다. 등산화 끈을 매만지고 있는게 지금 두시간째. 어이할꼬, 저 애달픈 마음을~~~@.@

발 상태가 좋지 않은 스테파니와 나는 하루 더 묵어 가기로 한다. 카톡이 온다. KBS방송국의 방송작가 <김진하>양, 입대하기 전 산티아고를 걷겠다고 온 서강대학교 학생인 <김한>군이 지금 내가 있는  호스텔로 오겠다기에 예약을 해놓았다. 그런데 진하가 <데이브 황>이라는 사람 예약까지 부탁한다. 다리가 불편하다고... 남친 생겼냐고 반색을 했더니 영국의 어떤 회사 부사장으로 55세 어르신이라나? 아이구, 이런 멍충아~!까미노 길에선 젊은 남녀 커플이 종종 만들어 지던데 그렇게 이쁜 얼굴로 짝꿍 하나 못 만들고 어르신까지 모시고 다니냐? 곁에 있으면 한 대 쥐어 박고 싶다고 바로 카톡 답장.

사흘전 사리아(Saria)에서 떠나 훼레이로스(ferreiros)로 오던 날  알베르게에서 만난 30초반<민지>도 그랬다. 여고생처럼 말간 얼굴로 혼자 다니고 있었다.

이틀을 같이 지내면서 같이 파스타도 만들고 스페인 라면에 한국 라면스프를 넣어 끓이니 진짜 한국 라면이 되었다. "저 파스타 2인분 먹을 거예요" "나두~!"파스타에 라면이라니 얼마나 이상한 조합인가. 그러나 상관 없었다. 목감기인지 요즘 목이 아픈 나와 바케트 빵에 질린 민지에게는 최고의 미식이었다. 우린 파스타도 잔뜩 먹고 라면도 남기지 않고 먹었다. 일정이 틀려서 헤어질적에 민지는 자신의 비상약 중 붓기를  빼주는 냉찜질팩을 한세트 꺼내 주었다. 본인은 평발이라서 다리 관련 비상약만 준비해 왔다고 한다.^^!

까미노길에서는 누구나 아픈 환자라고 하던 어떤 대학생의 말, 맞다. 오늘 멀쩡하던 사람도 내일 보면 다리를 절고 있다. 덴마크에서 튜바를 연주한다는 40대 후반 음악선생도 남자보다 더 튼튼하게 생긴 체격으로 씩씩하게 걷더니 라바날에서 만났을적엔 왼쪽 다리를 심하게 절고 있었다.

근심스럽게 바라보는 내게 그녀는, 문제 없다고 큰소리쳤다. 내가 보기엔 나보다 더 심각한데...ㅜㅜ 민지와 걷던 이틀동안  내내 비가 내렸다. 우비를 입었지만 얼굴까지 가리진 못해 우리 둘의 얼굴엔 쉬임없이 빗물이 흘러 내렸다. 힘들어서 울고 싶었었던  순간들을 대변해 주듯...... 울려고 내가 왔나?

그러나 민지는 불평 한마디 없이 빗물에 흠뻑 젖은 얼굴로 해바라기보다 더 밝게 웃었다.^^

그렇게 이쁘게 웃지만 말고 혼자 다니지 말고 남친 하나 만들어 봐라!  이규성 신부님도 말씀하지 않더냐? 이 길에서 만난 커플들은 정말 괜찮겠다는 ...

힘든 시간을 공유하다보니 너도 나도 서로의 마음을 안다. 빗속을 걸어 팔라스 <Palas de rai>에 도착한 어제 타이완에서 온 40초반의 루비<Ruby>를 호스텔에서 만났다.

까미노 중간인 <레온>에서부터 걷기 시작했다는 루비와 함께 2분 거리의 수퍼에 가서 저녁식사 재료를 사왔다. 한국에도 세번 갔었다고 한다. 광주, 부산, 서울 등등.

루비가 대만식 돼지고기 요리를 하고 밥을 짓는 동안, 나는 민지가 준 한국스프로 한국 라면을 끓였다. ㅎㅎ 열흘만에 쌀밥을 먹는다는 루비도 행복하다면서 식사를 즐겼고 나 또한 너무 즐거웠다. 오늘 아침 루비는 출발하려고 나가다가 나를보고 달려와 얼싸 안았다. "천천히 쉬었다 와, 기다릴께"."그래, 조심해서 먼저 가, 아프지 말고..."서로 인사를 하면서 눈물을 글썽인다.

우비를 입은 그녀가 빗 속으로 발을 내딛는다.

스테파니에게 3시간동안 한마디도 못하고 앉아 있던 알프레도가 체념했는지 오전 11시, 드디어 일어선다.

배낭을 맨 뒤, 스테파니에겐 눈길도 주지 않고 내게 인사를 남긴다. "부엔 까미노~!"

아이구, 이 멍충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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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한 2019-11-11 01:09:41
스테파니를 향한, 알프레도의 순애보를 듣자하니, 제 마음도 안타까워 집니다.ㅎ 용기를 내면.. 못할일도 없건마늘..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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