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엔 까미노~! (Beun Cam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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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엔 까미노~! (Beun Camino)
  • 박태린
  • 승인 2019.10.24 09:0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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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낙엽따라 가버린 사랑

 용서의 언덕에선 세찬 바람 앞에 서 있기 힘들었고, 철의 십자가 앞에선 비와 구름 속에 서 걸었다. 스페인은 겨울로 접어들면서 또한 우기가 시작 된다.
어제부터 하루에도 ㅤㅁㅕㅈ 번씩이나 오락가락 하던 비가 오늘은 이른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했다. 우비를 입고 워킹화에 물이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다리에는 스패츠를 착용하고 바람이 불면 휘어지는 모자의 챙을 똑바로 세우기 위해 단단한 챙모자를 하나 더 쓴다. 짐이 늘어나는것이 싫다고 하는 내게 비오면 유용할 것이라고 우기면서 친구 응선이 억지로 건네준 정말 고마운 챙모자다. 7시 30분 어두운 새벽, 헤드라이트를 밝히며 부산 아지매 순례자 안젤라, 현옥씨와 함께 가장 먼저 알베르게를 나섰다. 빗속에 약 20킬로를 걸어<프로미스타>에서<카리온>까지 가야 한다. 빵 한쪽과 샐러드를 먹고 나서면서도 신이 났다. 이깟 20킬로 쯤이야...^~^
어젠 28킬로를 <왈떼>와 걷고, 6킬로를 혼자서 걸어 프로미스타까지 도착했기 때문이다. 무려 34킬로. 도착해선 너무 피곤해서 침대위에 기대어 앉아 배낭속에 들어 있던 바케트 빵을 뜯어 먹으면서 졸았다. 그리고 저녁 식사도 못하고 그대로 잠이 들어 버렸었다.ㅠㅠ
40후반의 페루계 이탈리아인인 왈떼는 스페인어와 이탈리아어는 잘 하지만 영어는 젬병.  30초반의 이태리 여자 <사라>가 같이 걸었는데 사라는 왈떼와 나의 대화를 영어와 이태리어로 2시간쯤 걸으면서 통역해 주었다. 그것이 힘들었는지 어떤 바<bar>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슬쩍 도망?가 버리고 말았다.^^;;
이후 왈떼와 나의 대화는 그야말로 형편없이 되어버려, 실력도 대단치 않은 내 영어중 왈떼가 단어 하나를 알아내 대답하는게 고작이었다. 실은 나도 답답한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었는데 커다란 체구로 왼쪽 다리를 절면서 친구도 없이 걷는 그를 두고 달아나 버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한 번도 먹지 않은 진통소염제 약을 한달치 갖고 있어서 왈떼에게 한봉지 주고 싶은데 그럴 수도 없었다. 출국 하루 전 날 외사촌 동생의 병원에 가서
"두 달치 정도 처방해 줘" "왜?" "다리나 무릎 아픈 사람들 있음 나누어 주게.." "이게 무슨 성분인 줄 알고 아무에게나 나누어 줘?".ㅜㅜ
 드디어 왈떼가 머무는 지역에 당도해서야 그와 헤어질 수 있었는데 왈떼는 지도를 펴서 내가 더 걸어야하는 지역의 고도와 거리를 알아 듣지도 못하는 이태리어로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다음날 자신의 목적지까지 알려 주었는데  까맣게 잊고 말았다. 그런데 오늘 오후 같은 알베르게에서 만나게 되었다. 약국을 찾았는지 다리는 다행히 멀쩡해져 있었다. 어차피 800킬로를 걷자면 앞으로도 스무번 이상의 알베르게를 거쳐야하니 어디선가  부딪치게 되는것은 신기한 일도 아니다.
사흘전 헤어진 아름다운 호주여인 카민(carmin)과 귀여운 미국 처자 케이트와도 산티아고에 도착하기전 어디선가는 또 만나지게 될것이다.
빗속을 두시간쯤 걷다보니 부실하게 먹은 식사가 드디어 허기를 유발한다. 정확히 프로미스트와 카리온의  중간 지역인 작은 시골의 레스토랑에 들어갔더니 이미 여러명의 순례자들이 우비와 배낭을 벗어놓고 음식을 먹으며 쉬고 있었다. 우리 일행 세명도 각기 음식을 사들고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구석에 놓인 피아노가 보였다. 우와~~~! 피아노 표면의 칠이 거의 벗겨진것을 보면 나이가 150살도  넘어 보였다. 언젠가 필리핀의<헌드레드 아일랜드>에서 본 피아노보다 더 오랜 세월을 안고 있었다. 나는 피아노 앞에 앉았다. 몽파르나스 역에서 <쟝>과 버스킹 한 후 두 번째이다. 세계인들이 좋아하는 음악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를 중간쯤 치다 멈추었다. 7명의 호주 여자들과 우리 일행 둘 그리고 동네 사람들이 아쉬운 눈길을 보내온다. 너무 배가 고파서 손가락이 덜덜 떨려 더 건반을 짚을 수가 없었다. 자리에 앉아 빵과 올리브, 바나나와 밀크커피, 갈릭수프까지 빵빵하게 먹고나서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았다. 미국의 <엘비스프레슬리> 가 부른 곡을 번안해서 차중락이 부른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을 연주했다. 순례객들과 지역주민 몇 명의 박수를 받고 길을 나선다. 호주 여인 한명이 뒤돌아보며 인사를 한다."고마워, 나도 그 노래 좋아해~!".♡ 싸늘한 가을비를 얼굴에 맞으면서 우리 셋도 다시 순례길에 오른다. 스페인도 깊은 가을로 접어들어 나뭇잎이 노랗게 물들고 있다. 
 "찬 바람이 싸늘하게 얼굴을 스치면/ 사랑하는 이 마음을 어찌하오, 어찌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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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한 2019-10-24 11:24:19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이라는 곡이 궁금해서, 저도 유투브에서 찾아서 처음 들어봤는데.ㅋ 가을의 정취가 멀리 스페인에서부터 여기까지 느껴지는것 같습니다. 신문사에서 칼럼연재해 주실때 삽화같은것도 같이 싫어 주면, 훨씬 순례길 여정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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