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오르며 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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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오르며 Ⅱ
  • 보은신문
  • 승인 2002.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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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자(수필가)
지난 휴일, 갖가지 색깔로 물들어 있는 나무와 산새들의 맑은 소리 그리고 산뜻한 공기를 만나기 위해 우리 가족은 가벼운 산행을 하게 되었다. 하늘은 회색 빛으로 금방이라도 내려앉을 듯 무거웠지만 이 가을이 가기 전에 가족이 함께 산을 오를 수 있다는 것이 즐거웠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우리 부부의 기분과는 달리 마지못해 따라 나서는 눈치이다. 그러나 차에 올라 차창을 스치는 밖의 정취를 바라보며 아이들의 마음은 전환되어 가는 것 같았다. 산에 닿으니 퇴색된 풀잎과 아직도 진한 향기를 내뿜는 들국화의 작고 노란 꽃잎이 가는 가을을 아쉬워하는 것 같았다.

산을 오를 때 가는 비가 내리더니, 산 중턱에 닿았을 때, 하얀 눈발이 하나 둘 날리며 차츰 함박눈으로 변해 갔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곱게 물도 들이지 못하고 고엽이 되어버린 나뭇잎 위에도, 푸른빛을 띤 대나무 잎과 소나무 위에도, 역사를 지닌 성곽 틈 사이에도, 아픔으로 뒤엉킨 내 마음에도 눈이 하얗게 쌓여갔다. 그 눈길을 걷는 많은 사람들의 얼굴도 우리가족의 얼굴도 산 속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하얗게 웃고 있었다.

특히 올 겨울 들어 내리는 첫눈을 가족과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자꾸만 내 얼굴을 하얗게 만들었다. 마음도 욕망의 끈은 사라지고 하얗게 변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지난 몇 달 전부터 남편에게는 좋은 일보다는 안 좋은 일의 연속이었다. 남편은 가슴을 앓다가 급기야는 몸으로 나타나 일주일 정도를 입원을 해야 했고 작은 교통사고도 나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생활리듬이 깨지면서 심적으로 힘이 부치다 보니 부수적으로 잘되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2년여 동안 이별 연습을 했지만 막상 떠나버린 언니가 그리워 사무치게 그리워 가슴을 아파해야 했었다. 그런 생활 속의 아픔이 마음을 비우면 자질구레한 것에 불과하다는 걸 잘 알면서도 쉽게 벗어 날 수가 없다.

그래도 난 언제부턴가 나의 삶에 감사하며 살게 되었다. 내게는 가진 것이 너무도 많아 겸손해야 한다는 걸 느끼며 살고 있다. 사회에 부정적인 부분을 마음에 담기보다는 긍정적으로 보는 습관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이해할 수 없었고 미워했던 사람들도 그들의 입장이 되어 다시 생각을 반복하며 내 마음을 평온하게 다스리곤 한다.

그러나 인간인지라 한편으로 많은 부분에 집착하게 되고 세속적인 욕망에 빠지기도 한다. 그런 속된 마음을 거짓 없는 자연과 만나면서 수시로 비우고 단조롭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산에 오르는 자체로 내 마음에 자리한 더러운 때와 병을 버릴 수 있었는데 흰 눈까지 내려 마음이 더욱 더 깨끗이 정화되었고 가을과 초겨울을 함께 만끽할 수 있었다.

바람이 너무 불어 우리들의 몸을 날릴 것 같았고 우리들의 겉옷위로 하얀 눈이 쌓여 다시 털고 또 털었지만 마음에 내리는 하얀 눈은 털어 내지 않고 하얗게 마냥 쌓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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