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오르며
상태바
산을 오르며
  • 보은신문
  • 승인 2002.10.1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송원자(수필가)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등산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무척이나 부러웠다. 20여년 전에는 자주 산에 올랐지만 바쁘게 살아오는 동안 산에 오르지 못했고, 그러다 보니 오르막 길은 전혀 걸을 수 없을 정도가 되어 자신감이 없었다. 그러나 지난 5월, 산에 대한 그리움으로 집과 1시간 남짓한 산을 일주일에 두 세 번씩 오르게 되었다. 나만의 상념과 나무, 바람, 새소리에 귀기울이고 주변에 대한 감상을 깨고 싶지 않아 혼자 오른다.

산에 오르다 보면 많은 것을 만나게 된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향긋함이 묻어나는 푸르름이 있고, 퇴색되어 가는 나뭇잎, 맑은 새소리와 신비로움으로 가득찬 뻐꾸기와 고막을 찌르는 듯한 매미, 풀벌레소리가 들리는 숲길을 걸으면 많은 욕망과 갈등은 사라지고 마음이 정화되어 나를 잊을 때가 많다. 바람 부는 날이면 나무들이 바람과 섞여 수런거리고, 요즘은 도토리가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같은 길이라도 어제와는 다르고 산의 맑은 정기와 푸르름을 가슴에 담아 올 수가 있어서 너무도 좋다. 산을 오르면서 새삼스럽게 산길과 우리의 삶이 닮았다는 걸 느꼈다. 숨이 차서 힘겹게 올라야 하는 길 다음에는 숨을 고르라고 평탄한 길이 펼치고 또 그 다음에는 내리막길이 있다는 것을, 그렇게 상반되는 길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그러나 그 길이라는 것이 우리의 삶에서는 오르는 것이 더 어려운 것인지 내려오는 길이 더 어려운 것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어떠한 목표를 향해 열심히 올라 정상에 도달하여 자신이 추구했던 자리에 올랐다고 해도 우리에게는 영원한 것은 없기 때문에 언젠가는 내려와야 한다. 그 내림 길에 접어들었을 때 더 힘겨울 수도 있다.

내 기억으로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시간 좀 빨리 갔으면 하고 바라던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반대로 가는 세월을 잡고 싶은 나이에 접어들었다.  그 시절에는 지금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다. 정치판이나 주변을 보면 그 자리가 영원할 듯 오만과 독선적인 사람을 볼 수 있다. 그것이 그 사람의 그릇이 아닐까? 채워야 할 물은 많은데 그릇이 작으면 소중한 물은 넘치고 낭비되어 그것으로 인해 주변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없을까?

우리에게는 두 귀와 두 눈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의 소리도 함께 수용해야 하는데 한쪽으로만 쏠려 한 귀와 한 눈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된다면 훗날 아니 당장에도 그 사람의 그릇을 평가할 때 우린 포용력을 비롯하여 많은 부분에서 무능력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결코 오랫동안 인내하지 않을 것이다. 정상에 있을수록 겸허하게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에는 사이클이 있어서 상승이 있으면 하강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남 보다 우월하다는 어리석은 생각과 오만함을 갖고 있지는 않는지 오늘도 숲길을 오르내리며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져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