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국수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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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국수의 추억
  • 홍근옥 (회인해바라기작은도서관)
  • 승인 2019.05.09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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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충주에서는 콩가루를 많이 먹습니다. 냉이국에도 시래기국에도, 그리고 서리가 오기 전 짧은 기간만 먹을 수 있는 배틀한 맛의 여린 호박잎 국에도 생콩가루를 묻혀 끓입니다. 콩가루를 넣으면 원래 재료의 맛은 살리면서도 뭔가 부드럽고 구수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맛이 납니다. 아마도 고기는 귀하고 생선도 보기 힘든 내륙지방이라서 그랬겠지만 어쨌든 구수한 콩가루 음식은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추억의 맛입니다.
오늘은 그 추억의 콩가루 음식을 내 손으로 준비했습니다. 평소에 국수를 좋아하지 않던 남편이 갑자기 콩가루 손칼국수가 먹고 싶다고 해서요. 아침부터 뽕잎을 따서 삶고 저장하느라 분주한 와중에 하필 손 많이 가는 손칼국수라니, 간이 배 밖으로 나왔나 싶다가도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콩칼국수가 생각난다는 건 돌아가신 아버님과 어머님이 생각난다는 뜻일 것입니 다
아버님 연세 53세에 늦둥이로 나은 남편을 형이나 누나보다 무척이나 귀여워했고, 허약한 남편을 늘 안타까워해 비 오는 날이면 집에서 학교까지는 논길을 걸어 1시간 남짓 걸리니 아버님은 “ 섭아~ 학교 가지 마라”하셨고 그래도 간다고 하면 업고 등교를 시키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 막내 아들인 남편은 당시로서는 명문이라고 하는 모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어린나이에 대전으로 유학을 갔고, 시골도시의 과수원에서 맘 놓고 뛰놀던 남편이 낯선 도시에서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다고 한다.
난다 긴다 하는 녀석들이 모인 학교에서 성적도 잘 나오지 않았고 때 맞춰 아버님마저 위암으로 돌아 가신데다가 사춘기마저 찾아와 외롭고 힘든 사춘기를 보내야만 했단다.
어머니는 그런 막내아들의 양육을 책임지고 대전으로 오셨고, 돈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는 낯선 도시에서 어머님은 얼마간 돈 벌 곳을 찾아 헤매시다가 어느 날 고물장사를 하시겠다고 선언하시며 밑천도 필요 없고 돈벌이도 괜찮다 하시며 고물 장사를 시작하셨고 그런 어머님이 고생하실 것에 대한 걱정보다는 누가 알면 어쩌나하는 부끄러움이 앞섰다고 한다.
더위와 추위와 배고픔과 목마름과, 그보다도 더 큰 외로움을 가슴에 꼭꼭 눌러가며
고물 리어카를 끄시던 어머님. 저녁이 되면 피곤한 당신의 몸 걱정보다는
집에서 기다릴 막내아들을 위해 한달음에 달려오셔서 따뜻한 밥을 해주시고 온갖 정성을 쏟아주신 어머님. 그러나 남편은 그런 어머니의 고물리어카를 한 번도 밀어드린 적이 없고, 부끄럽고 창피해서 피해 다녔다 한다.
그런 남편이 결혼 30년에 평생 콩칼국수를 찾은 적이 없더니, 어머님 아버님이 생각을 하나 싶어 마음이 찡 합니다
칼국수를 좋아 하셨던 아버님은 사흘이 멀다 하고 ''국수 밀어라'' 하셨고 어머님은 바쁜 와중에도 꼭 콩가루를 넣고 손으로 밀어서 국수를 해 드렸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콩가루음식은 내게도 추억의 맛이니 못할 것도 없습니다. 친정엄마도 가끔씩 큰 암반과 홍두깨를 꺼내놓고 칼국수를 밀곤 했습니다. 할아버지에 아버지, 딸 넷에 늦둥이 막내아들까지 모두 여덟 식구이다 보니 국수 미는 일은 그야말로 대역사였습니다. 어린 나는 주변을 얼쩡거리다가 국수 꼬리를 얻어서 구워먹기도 했었구요. 어릴 때 엄마가 하시던 모습을 떠올리며 콩칼국수에 도전해봤습니다.
먼저 밀가루에 콩가루를 적당히, 그러니까 삼분의 일 정도를 넣고 잘 섞은 다음 물을 조금씩 부어가며 치댑니다. 너무 묽으면 손에도 들러붙고 면이 힘이 없어지니 적당한 농도조절이 필요합니다. 한참을 치댄 후에는 헝겊에 싸서 두세 시간 숙성을 시키고요. 숙성된 밀가루는 아기피부처럼 부드럽고도 매끈한 느낌입니다. 요걸 또 작은 홍두깨로 조금씩 밀고 밀가루를 묻혀가며 칼로 송송 썰면 손칼국수가 완성됩니다. 약간의 소금 간을 하거나 계란을 넣어서 쫄깃하게 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한편에서는 표고버섯과 다시마를 끓여서 육수를 내고 애호박과 버섯으로 고명을 준비합니다. 텃밭에서 금방 뽑은 파를 쫑쫑 썰어 넣고 만드는 양념장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손이 많이 가는 손칼국수입니다.
끓일 때는 육수에 직접 끓입니다. 쫄깃한 식감을 좋아하는 요즘 사람들 입맛에는 맞지 않겠지만 부드럽고 깊은 맛을 내기 때문입니다. 뚝뚝 끊어질 정도로 부드러운 면발에 걸쭉한 국물, 거기에 미리 준비한 양념장과 고명을 얹고 새콤한 김치까지 곁들여 먹습니다. 부드럽고 고소하고, 뭔가 나를 포근하게 안아주는 행복한 느낌. 바로 어릴 적 먹던 엄마의 손맛입니다. 남편도 맛있다는 소리를 계속해가며 큰 우동그릇에 그득한 콩칼국수를 후딱 비워냅니다.
내가 엄마를 떠올리며 먹는 동안 남편은 어머님과 아버님을 떠올렸을까요?
오늘도 추억 한 그릇을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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