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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사월에
[1423호] 2019년 04월 18일 (목) 박태린 (청주한음클라리넷오케스트라) webmaster@boeuni.com

“꽃잎 떨어지기에 바람인줄 알았더니 세월이더라” 라는, 작자 미상의 싯구절이 시도 때도 없이 생각나는 요즘이다. 수많은 꽃잎들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는데, 남쪽에서부터 지기 시작한 벚꽃은 어느덧 보은까지 꽃 바람으로 지고 있다. 꽃샘바람에 흐느끼던 이른 봄은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라는 가요처럼 제격으로 와 닿아 제대로 잘 익어 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지금은 4월 중순으로 들어서 최상으로 아름다운 봄날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세월은 눈치코치도 없이 우리들 곁을 소리없이 왔다가 지나가고 있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우는 4월은 잔인하게 아름다운 달이라고 미국의 시인 T.S 엘리엇은 표현했어. 그래, 이렇게 좋은 날엔 한가롭게 마시는 차(茶) 한 잔도 제격이지.
 오래 전 인도를 여행 할 적에 캘커타에서, 영국 식민지 시절 차를 운반하던 <토이열차>를 타고 <다르질링>을 간 적이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햇빛을 받아 붉게 빛나는 히말라야 칸켄중가가 보여주는 아름다움을 보려고 다르질링을 찾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나를 포함한 일부 여행자들은 그곳에서 생산되는 홍차에 대한 관심 때문이기도 했었다.
 인도의 모든 게스트 하우스에 비치되어 있는 '외로운 행성'이란 뜻의, 로운리플라넷(lonely planet)이란 여행 잡지는 인도의 북동부에 위치한 차 생산지 다르질링을 자세히 소개했다. 그 설명은, 하얀 본차이나 찻잔에 담겨진 붉은 홍차의 색깔을 사랑하던 나를 그곳으로 유인하기에 충분했었다. 놀라운 것은 타이거힐의 강렬한 일출과 홍차의 색깔이 너무나 닮았다는 것이었다. 일출에는 광채가 있었지만 홍차는 차분하게 가라앉은 노을빛으로, 다르질링에는 그렇게 보석처럼 빛나는 두 가지 붉은 빛이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르질링 사람들의 생김새나 언어는 인도의 여느 도시인들과 달랐는데, 다수의 네팔 노동자들이 차 재배 산업을 위해 유입되었고, 1950~1960년대에는 티베트를 탈출한 일부 난민들이 이 지역에 터를 잡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도인들이 아닌 셈이다. 또 하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은 세계적인 홍차 산지이면서도 그들의 생활은 거의 극빈(極貧)에 가까운 모습으로 비추어졌기 때문이었다. 그 후, 한국에 돌아와서 나는 홍차를 끊어 버렸다.
 이 이야기를 친구에게 했더니, “너 같은 사람만 있다면, 그 사람들의 생계가 끊어지는 거야~! 기왕 끊는 김에 불쌍한 커피생산지 노동자까지 생각해서 커피도 끊어라, 어쩌구 저쩌구...“ 경제논린지 뭔지 하는 어려운 잔소리를 한참 들어야했다. ”뭔 소리냐? 하루에 딱 한 잔 마시는 커피를 끊으라구? c~!“
 최근, 몇 몇 지인들과 함께 문인(文人) 임 모 선생님댁에 초대를 받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겉보기엔 얌전하고 수수했던 풍경이었는데 실내에 들어서니 펼쳐진 향기로운 모습들. 어? 이게 뭐지? 차향(茶香)보다 먼저 분위기에 취해 잠시 말문이 막혔다.
 비워지는 찻잔엔 따듯한 차가 계속 채워지고 손으로 느껴지는 부드러운 온기. 향기로운 차를후각으로 느끼고 눈으로는 맑고 고운 색을 감상한다. 한편으론 온정(溫情)이 깃든 이야기를 나누자니, 시간도 멈추어 선 듯 마음은 너무나 홀가분하고 평화로왔다. 마치 소란스러운 속세를 떠나 깊은 산 속에 은거한 듯......♡
 사람들은 각각의 취미를 가지고 있지만 그 취미생활을 자신의 일상속에 깊숙이 끌어들여, 온  마음과 생활로 즐기고 있다면 진정한 호사(好事)를 누리는 것이라고들 한다. 그 풍경이 바로 내 눈앞에 펼쳐져 있으니 그저 부러울 수밖에. 부러우면 지는 것이라지만...ㅋㅋ
 어느 날이었던가, <문학이란, 평생 마셔도 다 못 마실 술과 같다. 한 번에 다 마시고 싶지만 마실 수 없는...>. 이란 표현을 했던 임 모 선생은 그윽한 이 공간에서 자신만의 길을 내어 문학과 소통하고 있었나 보다.
 그리고 내 눈길을 머물게 한 차실(茶室)벽에 걸린 조그만 액자에 담긴 글 한 줄, <꽃잎 떨어지기에 바람인줄 알았더니 세월이더라>. 오늘도 사월의 바람은 쉬임없이 세월을 밀어 내고 있는데, 오래 전 아름다운 히말라야 지역 깊은 산 속에서 혼자만의 격한 감정에 빠졌었던 시간에 대한 회상에 젖어본다. 잔인하도록 아름다운 이 춘사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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