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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실 일기 겨울놀이
[1407호] 2018년 12월 20일 (목) 홍근옥 (회인해바라기작은도서관) webmaster@boeuni.com

 가을이 길다느니 단풍이 어디까지 왔느니 하던 것이 불과 얼마 전인데, 어느새 겨울이 깊다. 겨울이면 마냥 놀 것 같지만 귀촌 7년차 늪실 새댁에게는 소소한 일거리가 끊이지 않는다.
 우선해야 할 일은 난로를 꺼뜨리지 않고 관리하는 일. 기름 값 좀 아껴볼까 하고 무쇠 난로를 설치했는데 겨울이면 남편보다도 내 사랑을 더 받는 우리 집 보물 1호가 된다. 하루에 세 번, 서너 개의 장작만 넣으면 만져도 데일 것 같지도 않을 정도의 온기로 하루 종일 집을 데워주어 기름 값 걱정이 없는데다가, 가끔씩 펄럭펄럭 불꽃을 일으키는 모습이 마치 북극에서 볼 수 있다는 오로라처럼 보여 멋스럽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녀석에게 손이 좀 간다는 것. 시간 맞춰서 나무를 넣고 흘러나온 재를 닦고 가끔씩은 재받이도 비워야한다. 잘못해서 불이라도 꺼뜨리는 날이면 한 겨울에 문을 열어젖히고 온 집안이 너구리굴이 되는 엄청난 사태가 발생하니 힘들지는 않지만 신경 쓰이는 일이다.
 난로관리가 매일 하는 일이라면 눈을 치우는 일은 한 달에  두 세 번씩 맞이하는 특별 이벤트다. 동네 끝자락에서 우리 집까지는 대충 200m정도, 산그늘에 야트막한 경사가 져 있어서 안 치웠다가는 길이 얼어 발이 묶일 판이다. 해서 눈이 온 날 아침이면 만사 제치고 남편과 눈을 치운다. 두 개의 넉가래를 붙여서 먼저 길 가운데로 통로를 만들고 좌우로 눈을 밀어 찻길을 내는데, 겨울 아침 운동으로 이만한 게 없다.
 말 나온 김에 도시 사람들은 모르는 눈치우기의 재미를 조금 더 펼쳐 볼란다. 우선 눈이 하얗게 쌓인 아침이면 집과 산과 나무와 말라죽은 풀 하나까지도 마치 설탕 공예품처럼 변하는 마법이 펼쳐진다. 이렇게 온통 흰 세상으로 변해버린 풍경을 보는 것은 어릴 때나 지금이나 늘 새롭고도 놀랍다. 거기에 볼과 귀를 간질이는 차가운 공기의 감촉, 숫눈을 밟을 때의 사각거리는 소리와 보드라운 촉감, 적당한 노동과 피로감이 주는 행복감, 일이 끝나고 먹는 늦은 아침밥......
 물론 이런 겨울 재미가 그리 오래 가지는 않을 것이다. 봄이 되면 거름도 내고 밭도 갈고 씨도 뿌려야한다. 긴 긴 여름날 땀을 흘리며 끝도 없이 풀을 뽑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들도 순간순간 주어지는 새로운 놀이거리로 생각하면 그만이다. 지루할 때쯤이면 계절이 바뀌면서 새로운 재미가 다가온다는 뜻이니 오히려 감사한 일이다.    
 어디 계절만 그럴까, 따지고 보면 내 삶에도 다양한 놀잇감들이 그때그때 주어진다. 어느 시기엔 부모 형제가 또 어느 시기엔 남편 혹은 아이들이, 또는 질병과 고통들이 내게 다가오곤 한다. 그러나 나는 안다. 요걸 또 겨울 일거리 즐기듯이 놀다보면 어느새 해결돼 있으리란 걸. 그리곤 또 심심하지 않을 정도의 또 다른 재밋거리가 찾아올 거라는 것을.
 그런데 내가 자랑삼아 눈 치운 얘기라도 하면 듣는 도시 사람들은 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길이 얼어서 차가 못 올라가면 어쩌냐, 사고 나면 어쩌냐, 염화칼슘을 뿌려라, 눈 치우는 기계라도 사라...... 그러나 반대로 나는 눈치우고 난로 불 지필 일이 없는 도시 사람들이 걱정이다. 도대체 스위치 하나로 보일러 탁 켜놓고 로봇 청소기로 집안 청소하고 나면 심심해서 어찌 살까? 도저히 심심함을 견디지 못해 스키장으로 온천으로 나설라치면 길은 막힐 테고 방값에 밥값에, 돈은 또 얼마나 들까? 그 돈을 벌기위해서는 또 얼마나 부대끼며 경쟁하며 살아야할까? 그러나 남 걱정하느라 내 즐거움을 잊을 수야 없는 일, 또 난로에 나무 넣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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