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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을 한다는 것은 ~ ~
[1401호] 2018년 11월 08일 (목) 시인 김종례 webmaster@boeuni.com

 나뭇잎에 오색물감을 덧칠해 주던 가을여신도 떠나고, 풍물소리 울리며 떠들썩하니 풍요로웠던 시월의 들판도 한적하다. 산기슭에도, 들판에도, 작은 정원에도 옹골차게 여물어가는 바람소리만 채워지는 요즘이다. 우리네 삶도 덩달아서 동동거리며 분주했던 10월은 가고, 오래된 친구처럼 편안하게 다가오는 11월, 승리의 달을 맞이하였다. 진정한 채움과 승리는 모든 걸 비운 상태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리라.
 11월의 정원도 그러하다. 마냥 붉디붉었던 여름날의 자존감을 모두 내려놓고, 지금 핏기가신 마른 껍질까지 미련 없이 비우고는 깊은 수면에 빠지고 있다. 채우고 또 채워서 충만해진 만선의 밧줄을 슬그머니 풀어주더니, 검불때기까지 다 걷어내어 홀가분해진 빈 정원은 적요와 평안과 안식을 누리고 있다. 마치 방금 해산을 한 여인의 숨결처럼....
 지난 봄부터 가을까지 내 영혼이 흠뻑 빠져 있었던 빈 정원을 바라보며, 몰입의 언덕을 내려오며, 동분서주 달려오기만 하였던 무술년 한해를 돌아보는 시점이다. 서랍 구석에서 잠자고 있던 씨앗 봉지를 깨워 여기저기 소망의 언어를 뿌렸던 봄날, 폭염 속에서도 열정적이고 다채로운 꽃잎을 피우기 위하여 몸과 마음을 집중하였던 여름날, 그리고 주렁주렁 매달려 있던 결실의 씨앗까지 모두 받아내고서야, 빈 정원과 함께 평화를 맛보고 있는 요즘이다. 꽃에 대한 애착 내지는 몰입의 경지가 무슨 의미를 남겼는지를 곰곰이 생각하게 하는 요즘이다.
 계절을 따라 피어나던 꽃들이 저마다 특유의 몸짓으로 나를 불러내었기 때문일 것이다. 꽃의 세상이 진정한 영혼의 휴식을 제공함으로써, 자칫 침체되기 쉬웠던 내 성향에 단비를 내려 주었기 때문이다. 천태만상의 꽃들에게 푹 빠졌던 계절들이 스스로 살아있다는 자아 만족의 방편이 되기도 하였다. 이렇게 작은 꽃잎들과의 밀어로 흠뻑 생기롭게 피어나던 꽃다운 절기는 말씀의 생령수를 마시는 듯, 내 영혼에 영약이 되어 흡수되었다. 이 나이에 따라오는 우울한 마음의 감기도 이겨 낼 수 있는 적절한 방편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누구나 지나간 세월을 회상하다 보면 놀이에 빠져버렸던 어린 시절이 먼 추억으로 남아있게 마련이다. 동무들과 해지는 줄도 모르고 구슬치기, 땅뺏기, 공기놀이 등에 몰두하였던 순수했던 시절들이 있다. 땅거미가 찾아와 엄마가 애타게 찾는 소리조차 듣지 못할 정도로 노는 재미에 몰입하였던 시간들이다. 달님이 둥실 떠오를 때까지 놀이를 탐닉하였던 그 순간만은 이미 작은 중독의 경지였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학창시절에는 오로지 책만이 유일한 벗인 양, 공부와의 전쟁을 치르지 않은 사람 또 어디 있으랴. 누구나 나름대로 형설의 공을 쌓음으로 삶의 현주소까지 도달할 수 있었음이다. 오직 불철주야 면학에 집중하였던 절정의 순간도 역시 몰입의 피크였음이 분명하다.
 이처럼 삶의 여정에서 기다리고 있는 갖가지 매체들에게 누구나 한번쯤은 매료되기 마련이다. 열정과 낭만과 집중력을 쏟아 부을 수 있는 신선한 몰입거리를 만난다는 것은 정녕 행운이다. 자기 정체성을 확립해 주고 심약한 영혼을 윤택하게 붙잡아 주는 마술을 만나기 때문이다. 알맹이 단단한 성취감을 얻고자 몸부림치며 에너지를 쏟아 부을 때, 소중한 획을 그어 줄 것이 분명하다. 천태만상 삶의 길목마다 자신감을 선물하며, 때때로 살가운 미소도 던져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지금 삼라만상은 유유자적(悠悠自適), 비움의 궤도에 올라서서 겨울을 마중하는 중이다. 나도 마당 가족들을 다 떠나보내고 나니, 예외로 머리가 맑아지는 요즘이다. 몸도 가벼워지고 영혼까지도 참으로 편안한 요즘이다. 그래서 누구나 시인이 되며 명상가가 되지 않을 수 없는 이 11월에, 나는 빈 정원을 바라보며 다시 돌아올 봄날을 꿈꾸는지도 모른다. 허구한 겨울밤을 지새우며 글쓰기의 마법에 푹 빠져 보기를 스스로 갈구하는지도 모른다.
 혹여 서산에 노을이 물들어 가는 나이라 하더라도 늦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녕 메마른 일상의 건조함 속에서 탈피하기를 원한다면, 사막의 신기루 같은 삶의 오아시스를 찾아 나서길 권유하고 싶다. 인생의 소중한 자산으로 남아서 영혼의 쉼터를 제공해 줄 신선한 몰입거리를 만나봄이 참 좋을 것이다. 황혼의 연가를 아름답게 부르기 위해서라도 소소한 그 무엇 하나에 사로잡혀, 무아지경에 도달해 봄이 좋을 것이 아닌가! 꽃다운 자아를 확립할 수 있는 인생의 오아시스 샘물로 풍덩 잠수해 봄이 정녕 어떠할런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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