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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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여~!♡
  • 박태린
  • 승인 2018.05.10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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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것 좀 봐, 저것 좀 봐~!
20여 년 전, 카투만두에서 출발한 버스를 타고 밤새 네팔의 두 번째 도시 포카라로 가고 있는데, 한 달간 아프리카 연주 여행을 마치고 네팔여행을 왔다는 영국인 연인(戀人), 남자같이 씩씩한 사라와 여성처럼 섬세한 기타리스트 존이 나를 깨우면서 흥분한 소리로 외쳤다. 헉~! 포카라에서 북쪽으로 약 25㎞ 거리에 있는 6,993m의 <안나푸르나>하얀 산봉우리가 버스 앞 유리창을 스크린 삼아 맑고 푸른 하늘에 떠 있는데 아찔한 현깃증이 났다. 그토록 강렬한 감동으로 머리를 된통 얻어맞은 일은 난생 처음. 투르크 용병출신이라는 네팔 남자는 우리에게, <당신들은 행운아요!> 자랑스런 얼굴로 소리쳤다. 한 달에 한두 번쯤 구름이 없는 날 안나푸르나는, 도도하고도 찬란한 모습을 잠깐 보여 준다고 했다. 그러니 우린 당연히 행운아였다. 그래서 엄청난 위용에 압도당한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안나푸르나를 오르나보다. 지금도 그 때의 광경이 떠오를 때 마다 나는, 살면서 목숨 걸고 했던 일이 무엇 이었나 나 자신에게 물어보곤 했다.
 내게는 세 분의 잊지 못할 스승이 계셨는데, 첫 번째 스승은 지금 보은에 살고 계시는 초등학교 2학년 담임이셨던 <김순환 선생님>. 너무나 예쁘게 빚은 송편 같다는 이미지로 각인 되셨는데, 가난한 아이들을 언제나 먼저 배려하셨고 여름이면 동다리 냇가에 데려가 지저분한 머리도 감겨 주시고, 때 묻은 옷도 빨아서 돌 위에 널어 말려 주시던 자애로운 어머니 같은 분이셨다. 우리들은 다정하고 예쁜 선생님이 심부름이라도 한 번 시켜 주시면 얼마나 기뻐했던지 큰 상이라도 받은 것처럼 자랑스러워 했다. 두 번째 스승은 6학년 담임이셨던 <이돈갑 선생님>으로 중학교 입시를 마친 후 남은 약 두 달 정도, 졸업할 때 까지 수업시간에 독서를 하라고 책 을 칠판 아래 가득 쌓아 두고, 집에서도 읽으라고 빌려 주셨다. 중학교 입학후 3년 동안 국어책에 <유정><무정><흙><상록수><사반의 십자가><돈키호테>등등.. 칠판아래 있었던 책들 제목이 모두 나온걸 보고, 선생님께선 우리가 중학교 시절에 읽으면 좋을 책들만 선별해서 쌓아 두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학교 도서관에 둥지를 틀었다. 모윤숙님의 <렌의哀歌>를 읽었을 땐 가슴 설레이는 아름다운 문장을 달달 외웠는데 여고 시절, 친구들 러브레터 써주느라고 그 미사여구들을 동원하던 일이 종종 있었다.ㅋ 그 친구들 잘 살고 있을까? 그때 장학생으로 도서관 사서(司書)를 하던 얌전한 우등생 친구 <김응선>은 지금, 체육교사를 거쳐 현직 유도 심판인 남편과 함께 고향인 종곡리로 귀향, <언덕위에 하얀 집>을 짓고 사과밭을 가꾸며 살고 있다.
세 번째 스승은 치매를 앓고 계셔서 가슴이 아픈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독서 습관을 들여 주신 아버지는 읽고 나면 또 다른 책을 늘 빌려다 주셨다. 프랑스의 괴적 <아르세느 루팡> 전집, 우리나라 역사 소설 전집, 중국 무협지 전집 등등...♡.♡
한자가 없는 <서울신문>도 보았는데 아버지는 논설까지 빠짐없이 읽으라고 하셨다.
 지금까지 시각(視角)으로 받은 가장 큰 감동은, 인도 여행 중 국경에서 15일 간의 비자를 받고 입국한 네팔의 설산(雪山) 안나푸르나라는 엄청난 대자연을 마주했던 순간 이었다면, 나무의 나이테처럼 켜켜이 세월이 쌓여 해가 지날수록 더욱, 존경과 사랑이 되어 가슴속에 품게 되는 깊은 감동은 바로 스승의 은혜라는 것이다. 그 분들의 사랑과 정성이 없었다면 지금 내 정신세계는 손바닥만한 풍요로움이라도 가질 수 있었을까? 그 은혜를 생각하며 나 또한 사랑과 정성을 품은 따뜻한 옷을 지어 누군가에게 입혀 주겠다고 다짐하곤 했었다. 사부(師父)라는 뜻처럼 그 분들은 진정 내 영혼 속에 높아 솟아오른 감동의 산 <안나푸르나>란 것을, 어버이 날과 스승의 날이 함께 들어 있는 모란꽃 피는 아름다운 5월에 되짚어 본다.
내 남은 생에 바램이 있다면, 가까이 계신 스승님과 부모님의 은혜를 잊지 않을 것이며 행여 또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태양이 떠오르기 전의 맑고 푸른 아침 하늘 한가운데 우뚝 선 안나푸르나, 그 하얀 설산(雪山)을 다시 한 번 찾아가 바라 볼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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