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강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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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강물처럼
  • 보은신문
  • 승인 1998.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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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성(수한 동정, 한국화가)
오월은 회상의 달/ 이땅에 씨뿌려 꽃피어 놓고/ 멀리 가고 돌아오지 않는 아름다운 시인들을 그립게 한다/ 오늘도 푸른 하늘속으로/ 하이네의 장미빛 구름은 떠 가는데/ 고궁 울안뜰엔 옛대로의 모란/ 짙은 내음을 토하는데/ 이꽃 사랑턴 그들 찾아 볼 길 없구나(후략)
나는 오월이 되면 학창시절 낭송했던 어느 시인이 쓴 이 시를 애송한다. 오월이 아니라도 무든 누군가 몹시 그리울때도 이 시를 암송한다. 며칠전 중학동창이 보은에서 부친상을 당하여 친구 서너명이 같이 내려가게 되었는데 차창에 그려진 신록의 정겨운 풍경들이 어느 지방의 산수보다도 아름답게 다가왔다.

서울에서 내려 가는 동안 세 사람은 내내 고향보은의 미래에 대하여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시인이며 기업가인 친구는 보은을 산업화 보다는 전 군을 공원화 해서 전국 아니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청정 도시로 가꾸어 보은공원군이란 명칭까지 생각해야 한다고 역설 하였다. 이어 다른 친구는 이왕에 말이 나왔으니 서울에 가칭 '보은을 사랑하는 모임'을 발기 하자고 제안 했다. 일이야 금방 성사가 되던 안되던 간에 언제 어디서나 보은인은 각별한 애향심이 강한 것 같다. 나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며칠전 골드만환경상을 받은 남미 콜럼비아의 여성 베리타 쿠와루와(44세)가 자연을 파괴 하려는 문명인들과 온몸으로 싸우고 있는 장한 모습이 생각났다.

콜럼비아의 열대우림 지역에서 수백년을 문명세계와 단절된 채 살아가는 우와족의 대변인이기도 한 그녀는 95년 미국 석유회사가 우와족의 생활 터전인 밀림 지역에 석유 채굴권을 따내서 개발 하려하자 국제 환경단체와 인권단체를 찾아 다니며 석유 채취의 부당함과 우와족의 깨끗한 환경을 누릴 권리를 주장했다. 96년에는 미국의 석유회사(옥시덴탈사)를 직접 찾아가 개발 포기를 부탁 했으나 거절 당했다.

이렇게 되자 우와족은 5천명의 자살특공대를 조직했는데, 만약 석유회사가 채취를 강행할 경우 4백m의 절벽에서 모두 뛰어 내리겠다고 선언했다. 이런 상황에서 크와루와는 몇번의 죽을 고비도 넘겼다. 97년 괴한들이 그녀를 납치해 마구 때려 실시 시킨뒤 강에 던졌는데 극적으로 구조 되어 살아났다. 이와 같은 그녀의 노력으로 밀림지역 우와족의 보금자리는 아직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않고 있지만 모든 상황이 끝난것은 아니다. 미국 회사는 아직 개발권을 포기하지 않고 있으며 신성한 우와족의 땅을 지키기 위한 투쟁은 계속 되고 있는 것이다.

아메리칸 인디언의 이야기도 우리에게 많은 걸 생각케 한다. 미국 대통령이 인디언들이 살고 있는 그 땅을 개발하기 위해서 사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아무 불편없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게 해 주겠다고 덧붙었다. 그러나 그들(인디언)은 말했다. 어떻게 우리가 공기를 사고 판단 말인가, 따뜻한 대지를 어떻게 사고 판단말인가, 우리로선 상상하기 조차 힘든 일이다. 부드러운 공기와 재잘거리는 시냇물을 우리가 어떻게 소유할 수 있으며, 소유하지도 않은 것을 어떻게 우리가 판단 말인가. 햇살속에 반짝이는 소나무들, 모래사장, 검은 숲에 걸려있는 안개, 눈길 닿는 모든 곳은 우리 부족의 가슴속엔 신성한 것들이다. 대지는 우리의 일부분이며 들꽃은 우리의 오누이, 순록과 들짐승은 우리의 형제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이(그들 말로는 워싱턴의 백인추장)이런 제의를 한것은 신성한 대지와 우리를 물건 취급을 하여 사고 팔겠단 말이 아닌가. 바람은 나의 할아버지에게 첫숨과 마지막 숨을 주었다. 또한 우리 후손에게도 생명을 불어 넣어줄 것이다. 문명인들의 도시풍경은 우리들의 눈에는 고통이다. 구석구석이 사람냄새로 가득하고, 죽은지 며칠이 지난 사람처럼 악취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들짐승이 사라지면 사람도 병들어 사라지게 마련이다. 인간의 마음속에 흐르는 강물이 말라 실개천으로 변하고 실개천이 말라 황무지로 변할때 인간의 삶은 끝나고 "살아 남는 일"이 시작 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세계는 돈을 벌기 위해선 환경 파괴건 무엇인건 간에 개발을 앞다투어 하고 있다. 욕심을 채우기 위해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식량, 에너지, 영토, 해양, 자원 등 … 인간이 자연의 일부이고 자연이 인간의 일부라는 인디언들의 삶의 철학속에 우리가 잊은것이 있다면 두눈을 부릅뜨고 정신을 가다듬어야 할때라고 생각한다. 모든것은 흐르는 강물처럼 영원한 것은 없다.

잠깐의 무절제한 풍요가 지금의 난국을 초래하고 있는 것인가, 통계의 수치를 잘못 계산해서 오는 재앙인가, 이땅에 씨뿔려 꽃피어 놓고 가신 선조의 거룩한 뜻을 받들어 행복한 삶을 후손에게 물려 주어야함은 우리들의 당연한 의무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지금 삶 보다도 살아남기 위하여 도시에서 산간 벽지까지 IMF라는 낯선 외국어를 밥먹듯이 지껄이며 오늘도 가족을 위해서 장미빛 꿈을 사러 목숨을 걸고 뛰고 있다.

<정이품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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