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을 잊을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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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잊을수야
  • 보은신문
  • 승인 1998.04.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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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식(한국전례연구원 연구위원)
사람마다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곳을 그리워함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고향을 떠나 온 사람이 향수(鄕愁)에 잠기는 것은 어쩌면 고향에 묻혀사는 사람보다 더욱 간절할 지도 모른다. 루소는 일찌기「자연으로 돌아가라」고 갈파했다. 자연이란 깨끗한 물, 맑은 공기, 오염되지 않은 숲, 훼손되지 않은 바위 등을 일컬음이 그 하나요, 인간의 본래의 마음, 곧 티없이 맑고 깨끗한 착한마음, 고운마음으로 풀이 된다.

인간의 부도덕한 마음과 타락한 마음을 명경지수에 씻어내고 인간의 본성, 즉 이성을 가지고 착한행동이 충만한 사회가 『자연』의 본 뜻이리라. 고향을 가까이 두고 못가는 실향민(失鄕民)에 비유한다면 그렇게 간절하고 애절하지는 못하더라도 고향생각이 잠시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웬일일까? 그건 어쩌면 꿈 많던 개구장이 시절의 갖가지 추억이 되살아 나기 때문일게다. 봄이면 진달래 따서 먹고 칡뿌리 캐먹으며 버들가지 꺾어 피리불던 그때 그시절이 그립기도 하려니와 여름밤 모닥불 피워놓고 극성스런 모기를 쫓으며 밤하늘에 별들을 바라보면서 큰 꿈을 키우던 때가 엊그제만 같다.

복숭아꽃, 살구꽃이 한데 어우러져 마을이 꽃속에 파묻혀 한 폭의 풍경화를 연상케 한다. 봄의 미각을 돋우기 위하여 파릇파릇 움돋는 냉이와 씀바귀를 캐는 아가씨의 고운 손길아며,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흐르는 물방울을 연신 닦아내며 걷는 아낙네의 뒷모습도 도심지에서는 보기 힘든 장면들이다. 어미닭이 병아리를 데리고 노는 모습이며, 어미소가 일터에 나간사이 송아지의 안달하는 모습도 눈에 선하다. 여름에는 농촌 어디를 가나 원두막이 즐비하게 세워져 있어 행인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먹음직스러운 참외며 수박때문이리라.

으레 원두막 주인은 지나는 낯모으른 행인이라도 구슬땀의 결정으로 이루어진 이런 값진 열매를 맛보도록 하는 선심(善心)이 지나는 나그네를 놀라게 한다. 요즈음은 영농기술의 발달로 계절에 관계없이 참외, 수박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과일이 시장에 선보이고 언제나 맛을 볼 수 있어서 인지 계절의 감각이 무디어 가고 맛의 감각도 예전만 못하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뚝배기 보다 장맛』이라는 말도 사실은 농촌의 대명사가 아닐 수 없다. 투박스럽게 생긴 뚝배기 속에 거무스레한 된장찌개는 농촌식탁에서의 단골메뉴요, 유일한 영양공급원이다. 어쩌다 된장찌개에 색다른 동물성 식품이라도 들어 있으면 된장찌개는 인기 제일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꽁보리밥에 열무김치와 된장과 고추장을 넣어 바가지에 비빔밥을 만들어 먹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군침이 절로 난다.

농민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은 진주와 비교해서 다를 바 없다. 영광이나 보람은 노력하는 사람에게만 있는 값진 유산이요, 보물이다. 고향인 보은이 젊은 날의 나의 꿈을 키워준 마음의 안식처라는 생각을 가지고 보다 많은 고향의 농산물을 이용하기를 권하면서 신토불이(身土不二)의 참뜻을 되새겨 본다.

<정이품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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