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실은 봄의 전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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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실은 봄의 전령들
  • 보은신문
  • 승인 1998.03.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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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애(보은 삼산, 보은문학회)
냉기속에 움츠리고 있던 나른한 의식이 춘분이 지나자 여기 저기서 봄기운을 느껴본다. 창문틈으로 밀려오는 한줄기 바람도 상큼하고 온기를 품은 햇살은 더 없이 화사하다 봉긋한 목련꽃 봉우리는 힌 꽃망울을 터뜨려 겨우 내 암흑속에서 갇혀 있던 보드라운 꽃잎에 곧 숨통을 터줄 것 같다. 아직은 바람끝이 차지만 자연의 변화에 쉽게 이끌리어 아이들의 손을 잡고 둑길을 서성여본다.

동면이 풀린 냇물에 돌을 던지기도 하고 경사진 둑을 오르내리며 희희낙락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마른 풀위에 앉아 따스한 봄볕에 마음껏 취해본다. 어둡고 긴 겨울의 터널에서 벗어나 이제 막 움트는 대지의 용솟음이 내게로도 한줄기 전해지는 듯하다. 소생이라는 탄력있는 단어는 자연에게 더 관대함을 베푸나 보다. 흘려버린 시간을 되찾을 수 없는 우리들과는 달리 작은 나무 한그루라도 피고 지고 다시 피어나는 여유때문인지 자연의 품은 넓고 무한해서 다가서는 모든사람을 수용하며 보듬어준다.

그 넉넉한 포용력은 손상된 우리의 심성을 회복시켜주고 유지시켜주는 순화제이며 치유제이기도 한 셈이다. 나의 행동반경은 우물한 개구리를 면치 못해서 이제껏 시골을 벗어나본 적이 거의 없다. 이른 봄에는 호랑버들이 탐스럽고 뒤이어 키다리 앵초와 노랑 각시붓꽃이 피어나고 골짜기의 맑은 물에는 가재가 까만알을 꽁지에 감추고 기어다니던 그런 배경속에서 성장했다.

이제는 그곳을 조금 비껴나와 근 이십년의 세월동안 소원해 졌지만 그래도 그곳을 떠올리면 아름드리 둥구나무에선 부엉이가 떠나지 않고 소꼽동무들의 웃음도 뒷동산에 그대로 배어있고, 봇도랑에선 놓쳐버린 송사리가 지금도 헤엄을 치고 있다. 강하고 두르러지는 것만이 살아남는 요즈음 세태에 소바한 그리움과 순수한 정서를 때때로 일깨워주니 고향의 모든추억은 정신을 살찌우는 화수분이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자면 별다른 특색없이 민숭민숭한 곳일뿐 경관이 빼어나게 아름다운 곳도 아니다. 비롯 사소한 것이라도 따스한 시선으로 사물을 대하면 정감은 배가 되어 허술한 빈곳을 채워주기도 하니 다행한 일이다. 이제 산천초목은 찰라사이에 바뀌는 요지경의 화면처럼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빛으로 물들이기 위해 준비를 서두른다. 사람들의 발길에 닳지않아 적요한 곳을 찾아 온몸으로 거칠게 휘감겨오는 세월의 한자락즘 잠시 풀어 던지고 유유자적 술에 젖어보는 하루는 가져봄도 좋을 듯하다.

널브러진 코앞의 일에 급급하다 보면 그리 쉽지만은 않지만 무리하지 않는 틈을 내어 한쪽의 산수화에 생동감이 살아나는 서원계곡으로 행보를 옮기고 싶다. 순한 빛을 띤 꽃잎에 우아함이 돋보여 귀부인을 연상케하는 산 진달래는 드러나지 않아 은근한 멋을 풍기는데, 농염한 철쭉은 계곡의 곳곳에서 일시에 거침없이 붉은 정열을 꽃피워 뭇사람들을 현혹시키다 숲이 깊고 고요해서 그곳을 달려간 발자취 조차도 흔적없이 흡수되고 숲의 일부인 나만이 그곳에 존재한다.

도원경에서 넋을 빼앗겼던 어부의심정을 조금이라도 헤아려 볼 수 있진 않을까? 서원계곡을 거슬러 올라 묘막의 막바지에 다다를 때 쯤이면… 몇차례인가 꽃샘추위를 감수하고 뿌연 흙먼지를 삼켜야하는 봄은 올 듯 말 듯 더디오지만 희망을 실은 남쪽의 꽃소식은 멈추지 않으리라 여긴다. 따스한 이봄볕이 우리들 마음속에 새로운 에너지가 되어 접어두었던 꿈에도 싹이 트는 그런 계절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모두들 고갈되어 가는 에너지의 과다한 섭취로 인해 내일 기온이 급강하하는 이변은 없겠지!

<정이품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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