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내기를 하면 일 년은 순식간에 흘러 가 버린다. 푸른 들판이 누런 황금들판이 되면 또다시 일 년을 반성하게 된다. 그런 반성을 72번이나 했던 남북의 분단 현장을 가는 기회가 되었다. 뉴스와 책에서는 많이 보았지만 같은 동포이지만 만날 수 없고, 말 할 수 없고, 서로 감시해야 하는 슬픈 현장이다. 신원 확인을 세 번이나 하고, 견학 시 생기는 책임은 질 수 없다는 서약서도 쓰고, 철조망과 초소를 지나 도착 한 곳은 판문점이었다. 언젠가 ‘공동경비구역’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살벌하고 군인들의 어려움에 눈물을 흘렸던 곳을 지나 책상과 건물로 남북을 나누고, 군사정정위원회가 열렸던 곳을 막상 가보니 슬프고 화가 났다. 이런 보잘 것 없는 물건으로 슬픔을 72년이나 겪어야했던 우리들의 모습이 너무 초라 해 보이기도 했다. 보초를 서고 있는 남북한의 군인들 모습도 너무나 차이가 났다. 우리 대한민국의 헌병들은 연예인 뺨치는 멋진 외모와 당당하고 여유로운 모습과는 달리 북한의 군인들은 힘이 없어 보이며 군복도 참 세련되지 않았구나 하는 마음에 같은 국민이 되어 있어야 할 사람들이 총을 겨누고 있으니 얼마나 슬프고 마음 아픈 현상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향인 개성을 지척에 두고 한 번 쯤 가보고 싶어 하셨던 실향민들의 마음을 우리가 어찌 이해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가라앉기도 전에 두더지 마냥 굴을 팠다는 제3의 땅굴을 견학하게 되었다. 판문점 남쪽 4km지점에서 발견 된 제 3의 땅굴은 남자들이 서서 걸을 수 있을 정도의 높이로 정교하게 굴착 된 것으로 왕복 1.5km의 길이로 깊이 73m라 하니 얼마나 오랫동안 굴착 한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니 소름이 끼쳤다. 남방한계선에 철조망을 쳐 놓아 더 갈 수 는 없었지만 땅굴 속이 깊어 숨이 찼다. 이 굴을 통하여 북한군이 시간당 3만명이 이동 할 수 있다니.......
지금은 파주시에서 안보 관광으로 개발하여 많은 외국인들도 보였다. 그들은 땅굴을 보고 무엇을 느꼈으며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 북한 군인들이 이 땅굴을 파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생을 하며 죽어갔을까? 생각이 복잡해졌다. 이런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도착한 곳은 오두산 전망대였다. 안내자의 말에 따르면 바람도 없고 미세먼지도 없어 북한의 주민들을 관찰 할 수 있는 아주 좋은 날씨란다. 전망대를 들어서니 전국 13개의 아리랑 가사의 내용이 눈에 들어온다. 시아버님께서 술을 드시면 고향인 개성이 그리워 부르셨다는 모습을 상상 해 보면서 북한 땅이 궁금했다. 작은 키로 까치발을 뛰면서 본 북한 땅 임한리 모습은 우리 고향과 같이 모내기가 한창이었다. 단지 다른 모습은 기계화가 되어있는 우리 농촌과는 다르게 5-6명이 짝을 지어 붉은 기를 꽂아놓고 손모내기를 하며 한 사람씩 다니지 않고 무리지어 이동하는 모습에서 자유를 느낄 수 없음을 실감했다. 망원경을 통하여 본 북한의 모습은 바로 현재 한반도의 분단 된 모습이다. 날아다니는 새는 야생이며 흐르는 임진강과 한탄강은 자연의 흐름이라 생각 할 때 우리 국민들이 자유로이 왕래 할 수 있는 그 날을 상상해 본다.
세상은 긍정의 힘이 바꾼다. 북한과의 다름을 이해하고 희망의 풍선을 키운다면 임진강과 한탄강이 만나 서해로 흘러 바다 생명을 활기차게 하듯이 대한민국도 호랑이의 기상을 펼칠 그 날은 꼭 올 것이다. 희망의 풍선을 키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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