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약의 숲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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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약의 숲에서
  • 김종례 (시인)
  • 승인 2017.05.18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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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오랜만에 마을 뒷산에 올라갔다. 그리 험하지도 않고 평지를 걷는 듯이 완만하고 안락한 등산길로 우리 마을의 담장이라고도 불리운다. 산 아래로 펼쳐지는 생육의 본거지 오월의 들판과 보은 시가지를 내려다보며, 나뭇잎 새로 흐르는 소리 없는 바람 연주와 사그락대는 풀벌레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산나리 한 송이 흔들거리는 내 마음의 숲길을 따라서 고요히 걸었다. 아가의 물 살결마냥 부드러워진 떡갈나무 잎새 위로 바람의 심장이 팔딱거리며 숨바꼭질을 한다. 밤새 새순 나온 찔레꽃 넝쿨위로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오월의 햇살도 참으로 눈부시다. 찬물 세수한 아이의 콧잔등 위 몽글몽글 돋아나는 땀방울도 달 것만 같은 이 아침에, 바스락대는 추억의 내레이션 속에 심취해 본다. 그 옛날 어린이날 노랫소리도 꿈결인양 어렴풋이 들려온다.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어릴 적 이 노래를 부르노라면 웬지 이 세상이 모두 내게로 안겨올 것만 같은 설레임을 안고 꿈을 키우지 않았던가! 그러나 요즈음은 어린이날이 되어도 이 노래를 듣기가 참 어려운 시절이다. 갓 태어난 아기에게도 온갖 선물을 안겨주느라 야단이지만, 진작 정신적인 꿈을 키워주는 마음의 선물이 정녕 아쉬운 시대이다. 오늘 이렇게 생기롭고 찬란한 숲속에 들어와 앉으니, 정신적인 꿈을 먹고 자라야 할 우리 아이들의 기상이 점점 쇠약해져 가고 있는 게 아닌지 걱정이 된다.
정상에 오르니 오래된 등산길과 새로 생겨난 숲길 두 갈래가 눈앞에서 나의 발걸음과 판단력을 기다리고 있었다. 울창한 숲 속에다 새로운 등산길을 더 넓고 크게 내면 자연히 옛길은 수풀더미에 덮여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질 것이라는 우려심과 이미 사람들의 발자국으로 생겨난 옛 길이 그리 쉽게는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두 생각이 갈등을 일으켰다.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며 변화와 혁신을 꾀하는 일은 옛것을 기반으로 하여 새로운 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도약 정신이다. 아이에게 어제까지의 잘못된 인식이나 관습이 있다면, 오늘의 하루해를 그냥 무의식적으로 흘려보내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고정화 반복되는 아이의 일상에 새로운 스타일의 옷 한 벌을 선물하는 기분으로 바람직한 변화를 모색할 수 있도록, 미래에 대한 적당한 비전과 희망을 연출하며 창조의 길을 열어 갈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할 것이다. 잘못 형성된 습관을 과감히 고쳐 나가면 그 아이의 행동이 바뀌고 그 행동으로 성격이 변하면서 드디어 한 아이의 먼 훗날 운명도 바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홍유성죽(?有成竹), 아이가 이루고자 하는 자신의 미래의 모습을 그려보며, 자기의 마음밭에 창의적이고 바람직한 희망의 씨앗들을 뿌리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 오월의 숲에 새로 생겨난 이 등산길마냥 싱그러운 푸른 꿈을 꿀 수 있도록, 좋은 습관과 좋은 생각을 가지고 역동적인 삶을 엮어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이 어른들의 책무성일 것이다. 성취하고자 하는 동기부여에 밑거름을 듬뿍 주어 튼실하게 자라나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밥상머리 교육을 해야 할 것이다. 오월의 숲속에서 받는 이 초원의 빛처럼 자신을 신뢰하는 긍정적 마인드의 힘을 소유함으로써, 어떠한 역경도 극복할 수 있는 심리적 면역성과 자기치유의 능력을 길러야 할 것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이 들어있는 가정의 달 사랑의 달 은혜의 달 오월이 중순을 지나고 있다. 지금 오월의 숲은 점점 짙어가는 녹음으로 아찔하게 뻗어오는 열망의 손짓 가득하다. 숲의 주인이 된 바람도 분주하게 그네를 타며 이산 저산을 연신 넘나들고 있다. 산 아래 길가에서는 진록빛 치맛자락 사이로 붉은 날개짓 푸드덕거리며 모란 한송이 피어나고, 넝쿨장미 백만송이 꽃몽오리가 6월을 기다리며 여름을 재촉한다. 이렇게 온 산야가 푸르름의 향연에 잠시 취해있는 이 신록지절에, 우리 아이들은 5월의 문을 힘차게 열고 꿈을 꾸고 있습니까? 아니면 굳게 닫혀 있습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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