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같이 좋은 날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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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같이 좋은 날에는
  • 김정범 (내북면 노인회장)
  • 승인 2017.04.13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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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엔 봄이 오는 것을 미처 모르고 있었다. 지난해에 비해 매서운 꽃샘추위는 없었다 해도 탄핵 정국으로 春來不思春(춘래 불사춘)이라는 말이 한동안 오갔으니 이 말처럼 봄은 와 있어도 봄 같지를 않아 모르고 있었나 보다. 라는 생각도 해보지만 어쨌든 대통령 탄핵과 구속이라는 국가적 불운과 3년 전 꼭 이때 삼백 명이 넘는 꽃다운 생명들을 남쪽 바다에 잠기게 함으로 국가적 비극을 초래한 세월호 인양이라는 소용돌이 속에 봄이 왔으니 내가 미처 모르고 있었다 해도 내 잘못은 아닌 듯싶다. 거기에다 북한의 핵 위협은 끊이질 않고 중국의 사드 배치 보복이라는 북풍은 잠잘 기미가 없는데 대선이라는 거센 바람까지 불고 있으니 봄이 오는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 오히려 당연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 보면서 그래도 언젠가는 이런 바람들이 잦아들고 이 강산에 따뜻한 봄바람이 불겠지 하는 희망도 가져 본다. 그리고 이 간절한 희망은 나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것이기에 그 기다림이 오래지 않았으면 좋겠다. 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아직도 유해를 찾지 못한 유족에게는 지울 수 없는 한으로 남겠지만 그래도 어쩌랴? 이제는 세월호 문제도 이쯤에서 매듭을 짓고 새로운 꿈과 희망을 찾아가는 것이 현명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든다.
어느덧 4월이다. 무심한 사이 진달래 개나리가 피고 벚꽃이 한창이다. 이렇게 고운 빛깔로 계절을 수놓은 봄날의 햇살은 또 새로운 아침을 시작으로 하루를 내게 선물 해 주었다. 뜰을 지나는 바람소리도 오늘 하루를 보듬어 소중하게 엮어 보라는 속삭임 같이 들린다. 해가 뜨고 지는 것은 어제나 오늘이나 다르지 않지만 내게 주어지는 오늘의 시간은 또 새로운 것이니 오늘 하루를 보내고 저녁 잠자리에 들 때에는 감사 기도를 드릴 수 있도록 해야 할 터인데 그러면 어떻게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좋을까 궁리 해 본다. 날씨가 화창하니 어디 나들이를 나서 볼까 아니면 스트라우스의 왈츠라도 들으며 망중한을 즐겨 볼까 라는 등 잡다한 생각을 하면서도 손은 커튼을 젖히고 창문을 열고 있다. 조금은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감싸지만 그래도 상쾌한 느낌이다. 뜰 앞 잔디밭에서 먹이를 쪼던 까치가 놀라 깃털을 하나 남기고 푸드득 날아간다. 방마다 창문을 열어젖히니 TV를 보던 아내가 왜 창문을 여느냐며 청소를 하려는 것이냐고 묻기에 엉겁결에 그렇다고 대답을 하고 보니 조금 전의 황홀한 생각들이 까치처럼 창밖으로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노년의 시간들이 청춘의 날들처럼 연분홍빛은 아니더라도 그래도 창밖의 봄빛처럼 곱게 엮어 지던 생각들이 날아가 버리기는 했어도 내 남은 삶의 날에서 오늘도 좋은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날아간 것은 아니니 오늘은 먼저 아내에게 봉사하는 것으로 시작 하겠다 마음먹고 우선은 커피포트에 물을 끓이면서 아침 먹은 설거지부터 하였다. 설거지를 마치고 찻잔을 접시에 받혀서 아내 앞에 놓아주며 사모님 차 한 잔 드세요 했더니 아침 연속극에 열중하던 아내가 웃으며 왜 안하던 짓을 하느냐고 하며 살다보니 별일이란다. 설거지라야 밥그릇 국그릇 씻고 반찬을 냉장고에 넣는 정도지만 근래에는 개수대에 설거지 거리가 있으면 가끔은 내가 하고 세탁기를 돌려주기는 했었어도 오늘 같이 차를 끓여준 적은 없었기에 하는 말이다. 그래서 오늘 같이 좋은 날에는 연속극을 보아도 찻잔이 앞에 있어야 당신이 우아한 마님 같아 보이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마님은 그만 두고 고생이나 시키지 말란다. 내 말이 당신 고생이야 사서 하는 고생이지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냐고 했더니 지금까지 고생 시킨 사람이 누군데 그런 소리를 하느냐고 한다. 생각해 보면 사실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이다. 지금 노년 세대가 고생 않고 지낸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 고는 해도 시집 온지 오십년이 다 되도록 자신은 잊고 가정 밖에 모르고 살아 왔으니 어쩌면 그 세월이 한스러울 수도 있으련만 큰 불평 없이 견디어 준 것이 고마운 것이다. 이제는 아이들도 나름대로 잘 살고 있으니 내 몸 추스르며 자신을 위해 살아도 될 터인데 아직도 그 끈을 놓지 못하고 있기에 하는 소리다.
청소를 시작 하였다. 집안 청소도 아내의 전담이었지만 지금에는 내 몫이 되었는데 그것은 새로 집을 짓고 옮기면서 그 때 이제부터 청소는 내가 하겠다고 약속하였기 때문에 그 후로는 지금까지 그 약속을 충실히 이행 해 오고 있다. 청소기로 밀고 걸레질까지 하고나니 처음 생각과는 빗나간 결과는 되었어도 상쾌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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