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의 향기를 이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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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의 향기를 이어가자
  • 보은신문
  • 승인 1999.10.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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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만(재부 보은군민회 회장)
요즈음 인적인 서류작성을 할 때 대다수의 서류에 본적 난을 없앤 것으로 안다. 아마 지역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행정기관에서 솔선하자는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가 자기가 태어난 고향이 있다. 그곳에서 적을 올리면 그것이 곧 본적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타지방으로 나와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많은 서류를 제출하면서 고향에까지 가야 하는 번거로움으로 본적을 자기가 사는 고장으로 바꾸는 예가 많아진 듯 하다.

그러나 나는 부산에서 50년을 살면서도 아직 본적을 옮기지 않고 그대로 가지고 있다. 아마 어려서 자란 고향에 대한 향수도 있겠으나 그보다는 본적을 바꾼다는 것은 바로 고향을 보리는 일이라고 생각이 되어 나로선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게 사실이다. 흔히 나를 보고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나는 서슴없이 "속리산자락 보은"이라고 대답한다 그럴 때마다 상대바으이 의례 껏 하는 말은 "그럼 양반이네요"하는 것이다. 이곳 경상도에선, 아니 다른 지방도 마찬가지지만 '충청도'라고 하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머리에 떠올리는 것이 '양반'이란 어휘다.

옛날 대원군이 팔도의 인성과 기질을 평한 것을 보면 경기도는 경중미인(鏡中美人)이라 하여 이지형이고 강원도는 암하노불(岩下老佛)로 침착하며, 전라도는 풍전세류(風前細柳)로 풍류를 즐기고, 경상도는 태산준령(泰山峻嶺)으로 의지가 강하다고 했다. 그런데 충청도는 청풍명월(淸風明月)로 이상형이라고 평했다. 어떻든 대체적으로 말소리 자체가 느릿느릿 한데다 심성이 순해 보이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일이지만 '양반'이란 구절은 없다. 그런데도 언제부터 이런 어휘가 쓰여지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와 같은 말을 듣는 것이 싫지는 않다.

그러나 나로서는 크게 돋보일만한 일도 없는 터에 남으로부터 '양반'이란 말을 들을 때면 내심 부끄럽고 쑥스러워 질 때가 많다. 그래서 근간에 와선 '양반'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하고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이래서 얻은 결론은 '양반'이란 어휘가 갖는 이런저런 가지는 다 잘라버리고 현대적인 가치와 의미로 정리된 것이 예와 효다. 사실 지금 세상에서 "충청도 양반이요" 한다고 해서 특별히 알아주거나 예우해주는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예로부터 전해오는 말이니 별다른 뜻이 없어 입에 올리는 것뿐이다.

그러나 그 양반이란 말은 분명 어떤 가치와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그것이 바로 조상으로부터 전수되어 내려오는 예와 효라고 믿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날로 타락해 가고 있다고 개탄한다. 정치에는 권모술수가 판을 치고 사회기강은 무너져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풍조에 젖어있고, 장유유서는 옛말이요, 어른 공경하는 정신은 땅에 떨어지고 자식들은 부모를 저버리는 세태가 되고 말았다. 이 모든 현상을 단순히 시대사조의 변천이라고만 밀어 부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주변의 무질서와 혼란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를 떠 받히고 있는 정신적 기둥이 무너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 기둥의 중심이 바로 예와 효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우리 충청인의 새로운 역할이 살아나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충청도 양반들은 그 양반정신을 되살려야 할 것이다. 양반을 살린다고 해서 옛날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다. 그 양반에서 현대사회의 정신적 기둥의 될 예와 효의 정신을 살려 내 가정부터 정화하고, 나아가서 사회를 정화하여, 건강하고 명랑한 사회가 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충청도 양반이 빈 껍데기 양반이 아니라 진짜로 살아 움직이는 양반이 되는 길일것이다.

<정이품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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